남북 대치·협상 과정에서 북한의 '공포' 확인… "문제는 디테일의 악마"

한중 정상회담에서 북핵 및 '북한 유사시 대책' 공조 가능성 보여줘야

미국 방문 때 창조적 북핵 해법 제시해야… 5·24 조치 해법은 신중하게

정옥임 고려대 초빙교수(전 국회의원)
[데일리한국= 정옥임 고려대 초빙교수 칼럼]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로 촉발된 준(準)위기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 북한이 무슨 주장을 하든, 김정은 정권은 확성기 방송 등 대북 심리전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스스로 보여주었다. 나아가 이 사태를 통해 B2, B52, F22 랩터, 핵추진 잠수함 등으로 뒷받침되는 한미 연합전력, 즉 미군의 전략 자산에 대해 북한이 어떠한 공포를 느끼고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뢰 도발에 따른 준위기 상황 정리… "문제는 디테일의 악마"

문제는 디테일의 악마다. 공동보도문 2항의 주어는 ‘북측’ 서술어는 ‘유감 표명’이다. 그런데 목적어가 지뢰 ‘도발’이 아니고, ‘폭발’인 탓에 해석상의 혼란과 비판이 촉발되었다. (흔히 일어나는 일이기는 하나) 북한 정권의 사후 ‘딴소리’와 ‘왜곡’이 기름에 불을 붙이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북한의 과거 협상 행태가 늘 그러했고, ‘비정상적인 사태’가 촉발될 경우 확성기 방송을 재개할 수 있어서 재발 방지의 효과는 어느 정도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가 가능하다. 그만큼 북한 정권은 협상 상대로서 참 불편하고 신뢰할 수 없는 존재다.

5·24 제재 조치 해제하면 대북 돈줄 풀려… 신중하게 접근해야

그런 점에서 5·24 조치가 중요하다. 우리 내부의 진보파들은 북한이 천안함 폭침에 대한 유감 표명과 재발 방지를 약속한다면 모처럼 남북 대화 분위기가 조성된 만큼 5·24를 해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것이 남북 민간 교류를 명시한 이번 합의 정신에도 부합한다는 논리다. 북한도 오랫동안 5·24를 풀라고 강력히 주장해 왔다. 목함지뢰에 대한 유감 표명도 받아들였으니, 그에 준하는 유감 표명으로써 천안함 문제를 털고 가자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무서운 ‘악마’다. 이 문제는 ‘북한으로부터 유감 표명과 재발 방지 약속을 받아 낼수 있는가’의 차원을 훨씬 넘어선다. 설령 목적어가 제대로 된 유감 표명을 받는다고 해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으니 문제다. 오히려 목함지뢰로써 5· 24를 풀고자 하는 김정은 정권을 위해 ‘핵·경제 병진 정책’을 우리가 도와주느냐, 아니면 차단하느냐의 심각한 사안이다. 5· 24가 풀릴 경우 당장 막혔던 대북 돈 줄이 풀린다는 점에서 그렇다. 5 ·24 전까지 우리는 대북 교역의 이름으로 북한으로부터 모래, 자갈, 바지락, 송이 등을 ‘비싼’ 값에 수입했었다. (물론 우리가 북에 수출하는 물품은 거의 없고, 엄밀한 의미에서 ‘민간 교류’도 아니었다.) 개성공단 사업으로 들어가는 현금의 4-5배로, 북한 총 수출액의 1/10이나 되는 금액이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경고하며 북한에 현금이 아닌 쌀 교환권 등을 공여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자고 제언한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한중 정상회담에서 '북한 유사시 대책' 공조 가능성 보여줘야

이러한 와중에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참석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시진핑 옆에서 김정은이 아닌 박 대통령이 나란히 열병식 사열에 참석하게 되어 김정은의 심사는 극도로 뒤틀렸을 것이다. 우리의 상당수 독자들은 중국이 박 대통령을 최고의 VIP로 대접하며 의전에 깍듯하다는 이유로도 전율한다. 그런가 하면 소위 한국의 중국 경사에 대한 미국의 심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적어도 표출되는 현상만 보면 그렇다.

문제는 그러한 외연을 압도하는 냉혹한 국제정치 현실의 내용이다. 역설적이지만 미국 정부는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 한반도 문제를 일차적 우선순위에 두지 않는다. 이란 핵 타결의 이행 등 현안이 산적한 이유에 더해 한반도 문제의 피로감을 그대로 표출할 정도다. 반면에 중국은 대국굴기(大國堀起ㆍ대국이 일어서다), 중국몽(中國夢)을 전 세계에 과시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서 한국을 활용하는 것 같다. 중국이 전승절 기념식에서 박 대통령을 투영하는 일에 더 적극적인 이유 중 하나일 수 있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과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 그리고 대한민국의 박근혜 대통령! 이들이 나란히 열병식에 참석하는 영상이 전 세계로 전파될 때, 국제사회는 동북아의 냉전 즉 러시아, 중국, 북한의 북방 삼각동맹 구도가 한국의 위상에 힘입어 드디어 와해되었다고 환호할 것인가? 아니면 한국이 미국과의 동맹은 물론이고, 미국, 일본과의 삼각협조 체제에서 스스로 일탈해 어정쩡한 외교 입지를 자초했다고 입방아를 찧을 것인가?

그래서 형식 이전에 내용의 디테일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우리가 중국으로부터 얻어낼 외교적 결실은 무엇인가?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긴밀한 공조의 구체화는 말할 것도 없고, 이제는 북한 유사시에 대비한 전략대화가 한중 간에 이루어질 수 있음을 보여줄 때다. 이를 위한 단초라도 마련된다면 박 대통령의 중국 방중은 성공으로 기록될 수 있다.

10월 한미정상회담 디테일도 중요… 북핵 창조적 해법 제시해야

나아가 한중 정상회담을 발판으로 10월에 있을 한미 정상회담에서 우리는 어떠한 전략적 동맹관계를 발전시켜 나아갈 것인가? 미국이 쿠바와의 관계 정상화, 이란 핵 문제 타결이라는 외교적 역사(役事)를 이루어냈듯이 북한 핵문제에 대한 창조적 대안을 과감하게 추진하자고 제언해야 한다. 여기에는 남북, 북미 간의 솔직한 대화뿐 아니라 북한의 모험을 압도할 ‘강력한’ 군사적 억지력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2015년 국제 정치사의 기로에서 보여줄 대한민국의 정상 외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엄중하다. 목함지뢰로 촉발된 남북 대치와 대화로의 귀결, 박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참석과 그 후 한반도와 주변강국의 국제정치 동학은 거세게 요동친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도전이지만, 우리가 어떻게 관리하고 주도하느냐에 따라 극적인 반전도 가능하다. 더욱이 우리가 지금은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새우등 처지도 아니다. 바로 그 성패의 관건이 디테일의 악마를 어떻게 제압해나가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정옥임 교수 프로필
성신여대부고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 고려대 국제정치학 석사·박사학위 -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동북아정책연구센터 연구위원 -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 선문대 국제학부 교수 - 제18대 국회의원 - 한나라당 북한이탈주민대책위원회 위원장 - 남북하나재단(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이사장- 고려대 초빙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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