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세력, '발전국가' 모델 대안 찾지 못해 실패… 보수도 새 모델 찾지 못해

저성장 극복 위한 '새로운 성장' 모델 필요… 아이디어 기반 서비스산업 중요

'필요한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 복지' 제공, 남북통일 준비도 주요 국정 과제

정하용 경희대 국제학과 교수
[데일리한국= 정하용 경희대 교수 칼럼] 내년부터 3년 동안 총선-대선-지방선거가 잇따라 치러진다. 이같은 선거의 골든 시즌을 관통하는 '시대 정신'과 '국가 과제'는 과연 무엇인가?

민주화를 열망하고 투쟁하던 시기였던 1987년 이전에는 많은 국민들이 민주주의가 실현되면 보다 살기 좋고 정의로운 사회가 도래할 것으로 기대하였다. 민주화를 위해 험난한 투쟁을 이어갔던 많은 이들 역시 그러한 기대와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으로 기꺼이 자신들의 삶을 희생할 수 있었다. 이제는 아무도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국가임을 부인하지 않고 민주화투쟁은 역사적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실제로 우리의 삶을 얼마나 향상시켰는지, 사회적 정의가 제대로 구현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선뜻 긍정적인 대답을 하기가 힘든 현실이다. 공교롭게도 한국 경제의 고(高)성장은 권위주의 정권의 몰락과 함께 막을 내렸고 민주주의는 단지 절차일 뿐이라는 점을 뒤늦게 우리는 깨달은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실망한 국민들은 김대중정권과 노무현정권 이후 진보 세력에게 등을 돌렸고, 이후 거의 모든 선거에서 산업화 세력을 대변하고 있는 보수 진영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보수·진보 진영 모두 발전국가 모델 대안 제시 못해

진보 세력 실패의 가장 큰 요인은 민주주의를 쟁취는 했으나, 산업화 세력이 제시하고 실천했던 '발전국가 모델'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경제적 모델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오히려 김대중정부 하에서 사회 전반에 걸친 신자유주의적 구조 개혁이 완성되었고, 노무현정부 역시 실질적인 정책은 신자유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보수 진영의 대안이 뚜렷한 성과를 가져온 것도 아니다. 발전과 성장을 다시 강조하면서 이명박정권이 탄생할 수 있었지만 이명박 정권의 성적표는 초라했다. 박근혜후보가 지난 대선에서 근소한 차이로 가까스로 당선된 것은 산업화 세력의 발전 모델 역시 더 이상 국민적 지지를 얻기 힘들게 되었음을 보여준 것이다.

민주화를 주도한 진보 진영이나 산업화를 주도한 보수 진영 양자 모두 새로운 성장과 번영을 위한 대안과 비전을 갖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내년부터 3년 연속 총선-대선-지방선거 등 중요한 선거들이 치러진다. 20년 만에 돌아온 '선거 골든 시즌'은 어떠한 방향으로 우리나라가 나아갈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기간에 발전국가 모델을 넘어서는 새로운 성장 모델을 찾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미래를 장담하기 힘들 수 있다. 새로운 성장 모델을 모색하고 규정하는 것은 매우 지난한 작업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당면한 중요한 과제들을 짚어 보면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저성장 늪에서 벗어나기 위한 '새로운 성장' 모델 필요

먼저 '저(低)성장'의 늪에 빠진 한국 경제를 되살릴 수 있는 모델이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박정희-전두환-노태우 권위주의 정권에서는 8~10%에 이르렀다. 하지만 김영삼정부-김대중정부-노무현정부 등에서는 평균 성장률이 각각 7%대, 5%전후, 4%대를 기록하면서 순차적으로 하락했다. 이어 이명박정부-박근혜정부에서는 평균 성장률이 3%전후를 기록했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하다면 우리의 경제성장률이 3% 미만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저성장은 저(低)투자와 저(低)고용으로 연결되고 있어서 더욱 문제이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양극화는 심화되고 있다.

경제를 되살리기 위한 정부의 정책으로는 중소기업의 육성이나 대기업에 대한 지원 강화 등이 되풀이되어 왔지만, 어느 것도 성장과 투자·고용으로 이어지는 경제적 선순환을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 세제 혜택과 각종 지원 사업, 규제 철폐 등으로는 더 이상의 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경제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즉 제조업 위주의 경제 성장은 한계에 이른 것이다.

미국의 경제전문지인 포브스가 지난 5월에 기업 가치를 기준으로 선정한 세계 100대 기업을 살펴보면 새로운 성장 동력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명확해진다. 그것은 아이디어에 기반한 서비스 산업이다. 미국의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이 1위부터 3위에 올라 있고, 페이스북과 디즈니는 각각 10위와 11위, 아마존은 13위에 올라 있다. 7위에 오른 삼성과 69위 현대차, 97위 기아차의 업적을 부인하자는 것이 아니다. 제조업만으로는 더 이상 성장을 견인해낼 수 없다는 것이다.

아이디어 기반 서비스산업 육성 위해 교육 개혁 필요

문제는 아이디어에 기반한 서비스 산업이 세계적인 추세이며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되어야 하지만, 정부의 경제적 지원 정책만으로는 결코 이루어낼 수 없다는 것이다. 새롭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우리의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해내기 위해서는 우선 창의적인 사고를 지닌 인재들이 양성되어야 한다. 또 그러한 인재들이 진취적인 사고를 실천에 옮길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격려하고 지원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새로운 성장 모델 창출을 위해 개혁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과제는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공교육 분야이다. 실상 발전국가 모델을 가장 충실하게 반영하였던 분야는 산업화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설계되었던 입시 위주의 공교육 제도였다. 그나마 권위주의 정권에서는 공교육의 장에서 거의 모든 교육이 이루어졌었다. 이제는 사실상 사교육이 선행 학습과 암기를 통해 입시 위주의 교육을 주도하고 있다. 지식의 전달과 기술 습득을 넘어서는 창의적 교육이 공교육의 장에서 이루어져야만 새로운 성장을 위한 새로운 인재의 육성이 가능하다.

아이디어에 기반한 서비스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창조적 발상을 지닌 두뇌들을 길러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자결제시스템 회사 '페이팔'의 공동 창업자인 피터 틸이 <제로 투 원>이란 책에서 던진 '창조'의 메시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피터 틸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일을 다시 해봤자 세상은 1에서 n이 될 뿐이다. 익숙한 것이 하나 더 늘어날 뿐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뭔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면 세상은 0에서 1이 된다"고 역설했다.

적정한 복지, 통일 준비도 주요 국정 과제

선거 골든 시즌에 논의해야 할 주요 국정 과제로는 새로운 성장 모델 찾기 외에도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적정 수준의 복지 확대,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 통일 준비 등이 있다. 앞으로는 복지를 확대하되 현실적으로 재정의 뒷받침이 될 수 있는 복지여야 한다. 이를 두고 " '필요한'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제공되는 복지여야 한다"고 말하는 전문가들이 있다. 이는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의 이분법을 뛰어넘는 것이다. 그리고 통일은 분단 체제뿐 아니라 한국 경제의 저성장 극복을 위해서도 필요한 과제이다. 결국 새로운 성장 모델과 적정한 복지, 통일 준비 등이 선거 골든 시즌의 최대 과제로 떠올랐다. 이같은 주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큰 틀의 모델 찾기가 바로 '시대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정하용 경희대 교수 프로필
서울대 정치학과- 아이오와대학 정치학박사- 경희대 국제학과 교수(정치학,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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