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법 개정에 대한 상식적 평가… "정부의 자치입법권은 당연히 인정"

국회 선진화법은 유래 없는 '후진화법'… 미국의 필리버스터 제도와 달라

야당, 지역 아니라 이념과 정책에 따라 분당해야… 여당도 분당 검토해야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
[데일리한국=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 칼럼] 지난번 국회가 공무원연금개혁법안 처리에서 아무 관계도 없는 세월호법 시행령의 검사 직책을 변호사로 바꿔야 한다는 단순 논리로 끼워넣은 국회법의 행정명령심사권 개정이 국정을 뜨겁게 달구었다. 청와대는 이는 정부의 행정입법권을 침해하는 것이라 하여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했다. 언론에서도 이는 '국회 독재'로 삼권분립에 위배된다고 하여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메르스가 창궐하고 있는 국가 위기 상황에서 국회와 정부가 싸우는 것이 국민의 눈에 거슬릴 것이라고 하여 정의화 국회의장이 타협안을 제시하여 거부권 행사만은 막겠다고 하니 여·야가 조정에 합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헌법이나 법률 문제는 국회의원이 잘 알고 있겠기에 이하에서는 상식적인 논평을 해보려고 한다.

국회가 입법권을 갖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부와 대법원, 헌법재판소, 선거관리위원회는 자치입법권을 가지고 있다. 국회가 법률의 대강을 정하고 상세한 것은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에서 정하게 하고 있다. 야당 원내대표는 "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하면 앞으로 입법 과정에선 시행령에 법률적 위임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과연 야당 원내대표 혼자 그런 입법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행정입법에는 위임명령만 있는 것이 아니고 직권명령도 있기 때문에 이것까지 못하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국회도 국회법 외에도 국회의사규칙 제정 등 많은 자치입법권을 가지고 있다. 대법원도 법률에 저촉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재판규칙이나 인사규칙 등을 제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헌법재판소도 헌법재판소의 심판절차, 내부규율과 사무처리에 관한 규칙을 제정할 수 있다. 선거관리위원회도 법령의 범위 안에서 선거관리ㆍ국민투표 또는 정당사무에 관한 규칙을 제정할 수 있으며, 법률에 저촉되지 아니하는 범위 안에서 내부규율에 관한 규칙을 제정할 수 있다. 국회의원들로서는 선거관리규칙이나 정당규칙 등이 마음에 들지 않은텐데, 이 경우에도 강제적 수정 요구권을 행사하여 국민의 지탄을 받고 싶은지 모르겠다.

"정부의 자치입법권은 삼권분립 원칙상 당연히 인정된다"

정부는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을 발할 수 있다. 대통령은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받은 사항과 법률을 집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에 관하여 대통령령을 발할 수 있다. 총리도 소관 사무에 관하여 법률이나 대통령령의 위임 또는 직권으로 총리령을 발할 수 있고, 행정 각 부 장관도 소관 사무에 관하여 법률이나 대통령령의 위임 또는 직권으로 부령을 발할 수 있다.

이러한 자치입법권은 삼권분립 원칙상 당연히 인정되는 것이다. 국회에 입법권이 있다고 하더라도 헌법 위배 여부가 논란이 되면 헌법재판소의 통제를 받게 된다. 위헌 결정이 나면 폐지가 되는 것이요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면 국회가 이 취지에 따라 법률을 개정해야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명령ㆍ규칙이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되는지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 경우에는 대법원이 이를 최종적으로 심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이 규정에 따른다면 국회는 예비적 심사는 할 수 있을지 모르나 최종적 심사는 할 수 없게 된다.

국회선진화법은 유래 없는 '후진화법'… 미국의 필리버스터와 달라

야당의 원내대표가 입법권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야당 법사위원장이 국회 일반 상임위원회와 법사위원회를 통과한 법률안을 본회의에 회부하는 것을 거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소위 '국회 선진화법' 때문이다. 이 법은 지난 18대 정기국회 마지막에 통과된 것이고 국회의원의 선의를 믿고 만든 것이다. 그러나 3년이 경과한 현실에서 볼 때 이는 '국회 후진화법'이다. '동물 국회'를 막겠다고 '식물 국회'를 만든 것이다. 언론에서는 이 법률이 '야당 결재법'이라는 얘기도 나오는데, 정곡을 찌른 작명이라고 하겠다.

민주주의란 다수결에 의한 의사결정을 전제로 하는데, 국회는 다수당이 책임을 지는 대의기관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선진화법은 5분의 3이상의 국회의원이 찬성하지 않으면 법률안 하나 제대로 통과시킬 수 없게 하고 있다. 미국의 법을 모방했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나 이는 곡해다. 미국에서는 필리버스터 제도에 따라 의원의 발언 시간 제한이 없어서 의사방해를 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하여 의원의 5분의 3이 찬성하면 필리버스터를 끝내게 할 수 있는 제도이지, 우리처럼 모든 법률을 5분의 3의 다수로 통과시키라는 법은 아니다. 이것은 세계에 유래가 없는 반민주화법이요 반책임정치법이다. 야당의 의사를 존중할 수 있으나 소수당에게 입법 결재권을 주는 나라는 없다.

여당은 이 법을 개정하려고 하지만 결재권자인 소수당이 찬성하지 않기 때문에 개정은 불가능하다. 이에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를 제기해 놓고 있으며 한 변호사 단체는 위헌 헌법소원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이의 판단을 꺼리고 있다. 극단적 방법으로는 국회의장이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법률을 직권상정하여 통과시키면 된다. 그러면 소수당이 벌떼처럼 일어나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소송을 제기할 것이고, 헌법재판소는 통과된 법률은 국회법 절차에 위반된다고 하더라도 다수결로 통과된 것이라고 하여 합헌 결정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회 선진화법의 5분의 3 다수 규정은 실효할 것이다. 그러나 무소속인 국회의장이 욕을 먹으면서까지 국회 정상화를 해줄 것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국회는 입법부가 아니라 '위법부'(違法府)라고 언론에서 명명하고 있고 일반인은 '국회=시궁창'이라고 하고 한자를 쓰는 사람은 '國害'(국해)라고 쓰고 있다. 여론조사에 의하면 국회의원에 대하여 신뢰하는 사람은 5% 밖에 안 된다고 한다. 국회의원들은 개별적으로는 훌륭할지라도 집단적으로는 최저의 평가를 받고 있으니 창피하다. "지방 의회가 있어서 지역을 대표하고 있는데 국회가 왜 필요한가" "지역구 쪽지예산만 늘리고, 당리당략에 따라 투표하고, 표를 의식해 포퓰리즘에 따라 움직이는데 국회의원이 왜 300명씩이나 필요하고 그 많은 특권을 줘야 하느냐" 등의 얘기가 나오는 등 국민들의 불평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일부에서는 국회 해산을 요구하는 신문 광고까지 내고 있다. 어떤 사람은 국회가 국론 분열을 일삼아 통일ㆍ외교ㆍ국방에 장애가 된다고 하여 국회 해산을 요구하는 국민투표 실시를 대통령에게 건의하기도 한다.

야당, 이념·정책으로 분당해야… 여당도 분당 검토해야

국회의원이 불신을 받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정당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당 대표가 공천권을 가지고 있으니 그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으며 당 대표는 당원들의 표를 생각하여 편파적 국회 운영을 일삼는다고 한다. 현재 한국의 정당들은 일반적인 정체성이 없다. 여당은 3당 합당의 결과 탄생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뿌리에서 나온 '잡탕'이어서 이념이나 정책에서 통합을 할 수 없으며 중구난방이다. 대부분이 기득권층이어서 '웰빙'(Wellbeing)만 찾고 당이나 정부를 위해 헌신할 생각은 않고 보신에 급급한 경향이 있다. 160명의 대정당이 130명의 소수당에 이끌려 북한인권법이나 애국법, 테러방지법 등 국가 안보에 관한 법이나 민생에 관한 법률은 통과시킬 생각도 않고 있다. 무기력한 집단이요 표를 얻기 위한 국민영합에만 연연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이번 기회에 여당도 '호헌파'와 '대중영합파'로 분당(分黨)하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야당은 더욱 한심하다. 70년 전통을 가진 한민당이나 한독당, 민주당의 전통은 팽개치고 친노, 비노의 계파 싸움에 여념이 없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메르스와 거부권 행사 문제 때문에 봉합이 되었으나 과연 내년 4월 총선까지 건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야당에는 온건중도보수파가 다수인 것 같은데 돌격대인 친노세력에 이끌려 숨을 죽이고 있는 것 같다. 지역정당으로 분당할 것이 아니라 이념과 정책으로 색깔을 분명히 하는 분당이 필요하다.

친노계는 사실상 과격진보에 가깝다. 이들은 오히려 진보정당과 합당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의당과 국민모임, 노동당, 노동정치연맹 등 진보 4당이 통합할 것이라고 하는데 이들과 친노세력이 합하면 충분히 대안세력 내지 제2당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의 새정치민주연합은 분당하지 않으면 다음 총선이나 대선에서는 이들과 선거연합을 할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책임정치의 원리를 좇아 합당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3~4개의 중간 크기 정당이 총선에서 경쟁한 뒤 연립정권을 만들어야 대한민국의 민주정치는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 프로필
서울대 법대, 뮌헨대 유학(헌법학), 서울대 법학박사- 서울대 법대 교수- 한국공법학회 회장, 한국헌법연구소장- 탐라대 총장- 국회 헌법개정자문위원장- 서울대 명예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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