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부상, 북한의 핵무기, 미국의 일본 편향으로 동아시아 소용돌이"

중국의 꿈(中國夢), 일본의 야심, 미국의 가치가 충돌하지 않도록 해야

미국·중국이 협력해야 동아시아 구할 수 있고, 북한의 비핵화·개방 가능

*편집자 주= 정몽준 전 새누리당 대표는 15일(현지 시간)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한국의 시각에서 바라본 동아시아의 지정학'을 주제로 특별강연을 했습니다. 정 전 대표는 특강에서 "중국의 부상, 북한의 핵무기, 미국의 일본 편향 등으로 동아시아가 소용돌이치고 있다"면서 "중국의 꿈(中國夢)과 일본의 야심, 미국의 가치가 충돌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정 전 대표는 "미국의 '아시아 회귀'는 일본 회귀로 변질되고 있다"면서 "미국과 중국이 협력해야 동아시아를 구할 수 있고, 북한의 비핵화·개방이 가능하다"고 역설했습니다. <데일리한국>은 정 전 대표 측의 동의를 받아 특강 내용 요지를 칼럼 형식으로 게재합니다.

[데일리한국= 정몽준 전 새누리당 대표 특강 요지] 먼저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해드릴까 합니다. 어느 날 멕시코 대통령이 “멕시코는 신으로부터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미국과는 너무 가깝게 있다. 이것이 바로 문제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후에 이스라엘 총리는 “이스라엘은 신과는 너무 가깝고, 미국과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이것이 바로 문제다.” 라고 얘기했다고 합니다.

한국은 어떨까요? 매우 종교적인 국가죠.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한국은 신과 가까이 있지만, 일본과 중국이 너무 가까이 있고, 미국과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이것이 바로 문제다.” 현실 세계에서 이 얘기는 웃고 지나갈 수 있는 얘기가 아닙니다.

소용돌이 치는 동아시아

중국이 부상하고 북한이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미국은 또다시 일본에 편향되고 있습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평화헌법”을 개정하려 애쓰고 있고, 일본의 집단 자위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한편,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불신(strategic mistrust)은 더 깊어지고 있습니다. 중국은 미국이 중국을 봉쇄하려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한국입니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압박감을 느낍니다. 미-중 간의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북한의 전략적 중요성 또한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 10년 간 북한은 세 번의 핵실험과 수 차례의 미사일 발사 실험을 감행하였습니다. 지난주에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실험을 감행했습니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의 초대 학장 그레이엄 앨리슨 교수는 <핵 테러리즘>이란 저서에서 “현재 상태가 지속된다면, 북한은 핵 무기를 개발하고 핵무기 생산 라인을 갖추게 될 것이며, 이것은 230년 미국 외교 정책사에서 가장 큰 실패로 남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현재는 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하기가 더욱 더 어려워진 상황입니다. 키신저 전 미국 국무부 장관이 얘기했듯이, 아시아는 그 어느 때보다도 19세기의 유럽과 같은 상황, 즉 군사적 충돌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중국의 부상

우리는 중국의 부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많은 국가들이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중국과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중국이 국제법과 국제규범을 준수하기보다는 힘으로 국제관계의 현상유지(status quo)를 바꾸려 할 것이라고 우려하는 국가도 많습니다.

한국은 중국과 배타적경제수역(EEZ)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2013년 중국은 한국의 방공식별구역과 중첩되는 구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자신들의 방공식별구역(Air Defense Identification Zone, ADIZ)을 선포했습니다.

우리는 또한 중국과 역사 분쟁을 겪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 산하의 연구소에서 시작한 동북공정 프로젝트는 고구려, 백제와 같은 우리의 삼국시대 국가들이 모두 중국의 지방정부였다고 주장합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드넓은 태평양은 중국과 미국이라는 두 개의 대국을 수용할 충분한 공간이 있다”고 얘기했을 때, 한국 사람들은 중국이 태평양 지역을 중국의 영향권에도 두려고 한다고 느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기를, 이는 중국식 먼로 독트린(Monroe Doctrine)으로 중국이 담당하는 태평양 구역은 침범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미국에 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중 관계

하지만, 오늘날 한중 관계를 볼 때 중국을 전략적 위협으로만 보기는 어렵습니다. 2014년 한국과 중국의 교역 규모는 2352억 달러로, 양국의 교역 규모는 한미, 한일 간 교역액을 합한 것보다도 많습니다.

오늘날 6만 명의 중국 학생들이 한국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공부하는 한국 학생들의 수도 6만 명에 달합니다. 2014년에 한국을 방문한 중국 관광객은 600만 명이며, 중국을 방문한 한국 관광객은 400만 명 이상입니다. 하루에 한국과 중국을 오가는 비행 편수는 300대가 넘습니다.

냉전 시기에 한국과 중국은 서로 철천지 원수였습니다. 한국인들은 중국이 한국전쟁에 개입해서 한반도가 여전히 분단된 상태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전쟁 당시 사망한 중국군은 최대 40만 명에 이릅니다.여기에는 마오쩌둥 주석의 장남인 마오안잉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올해는 한국이 중국과 수교한 지 23년이 되는 해입니다. 한중 관계가 이렇게 짧은 기간 급속도로 발전할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을 것입니다. 한국과 중국의 경제 및 문화 교류가 심화됨에 따라, 한국과 중국의 상호의존 관계도 확대되고 있습니다.

제가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과 만났을 때, 왕자루이 부장은 한국 드라마 <대장금> 54편 중 42편을 봤다고 저에게 얘기해줬습니다. 한국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는 중국에 '치맥 (치킨과 맥주) 열풍'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한중 관계가 발전하는 것에 대해 불신의 눈초리를 보냅니다. 한국이 중국으로 기울고 있다는 것이지요. 한중 간의 경제·문화 교류가 힘의 정치(power politics)의 측면에서만, 미중 간의 패권 경쟁의 측면에서만 평가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중국은 미국의 위협인가?

확실히 미국과 일본에서는 중국을 위협으로 보는 경향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중국의 부상을 미국의 위협으로 보는 대표적인 출판물 몇 개를 얘기해볼까 합니다. 먼저 영국 저널리스트 마틴 자크는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 패권국가 중국은 천하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책을 썼습니다.

2010년 이코노미스트지에서는 '부상하는 중국의 위험성' (The dangers of a rising China)을 스페셜 리포트로 다루기도 했습니다. 애런 프리드버그 프린스턴대 교수는 <패권경쟁: 중국과 미국 누가 아시아를 지배할까>라는 책을 썼습니다.

최근 미 외교협회(CFR)는 'Revising US Grand Strategy toward China'라는 보고서를 발간했는데, 보고서의 주요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미국은 중국을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포함시키려 노력해왔지만, 이제 이러한 노력으로 인해 아시아에서 차지하는 미국의 수월성 (primacy) 에 새로운 위협들이 등장했다...이것은 국제적으로 미국 패권에 중대한 도전을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워싱턴은 중국의 영향력 강화를 도울 것이 아니라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는 데 초점을 두는 새로운 대중국 전략이 필요하다.”

2014년 갤럽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중국을 미국의 가장 큰 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보통의 미국인들은 중국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데, 많은 전문가들과 미디어가 중국을 미국의 라이벌, 부상하는 패권국가로 묘사하기 때문에, 평범한 미국 국민들 역시 중국을 라이벌로, 위협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갤럽 조사에서 중국 (20%), 북한 (16%), 러시아 (9%)를 미국의 최대 적으로 대답한 비율을 모두 합치면 전체 응답자의 45%나 됩니다. 미국은 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일본을 악마화(demonizing) 했었습니다.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적과 싸워서 이기기 위해 필요한 전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일본은 미국의 동맹국입니다. 중국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을 상대로 함께 싸운 미국의 동맹국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중국은 미국의 라이벌이자 위협이 되었습니다.

동맹관계가 이렇게 계속해서 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중국과 일본에 이런 변화를 일으킨 원인은 무엇일까요? 공산주의 중국과 민주주의 일본의 차이점과 유사점은 무엇일까요?

2년 전 저는 한일의원연맹 회의 참석 차 일본을 방문했었습니다. 회의 중에 일본 외교 분과 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중국을 비판했습니다. “중국 공산당 체제는 언제까지 지속될지 불안하다. 구태의연한 강압적 자세를 가지고, 국내 통제를 위해 국민들에게 각종 규제를 가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아무리 단속하더라도 인민들의 행동을 막을 수는 없다. 페이스북이나 인터넷의 진전은 정보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개개의 연합체는 전체주의를 파괴시킨다.”

일본 정치인이 비판한 것처럼 중국은 전체주의 방식의 일당 독재 국가입니다. 그러나 그가 간과한 것은 페이스북과 인터넷, 그리고 세계화가 이미 중국과 일본의 차이점을 많이 허물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일본은 어떨까요? 로버트 스칼라피노 교수는 일본 정치를 '1.5 정당 체제'라고 규정했습니다. 일본 정치는 자민당이 압도하고 있고, 몇 안 되는 수의 야당들의 영향력은 '0.5 정당' 수준이라는 겁니다. 오늘날 일본의 야당은 과거보다 더 약해진 것 같습니다. 일본의 사회당, 그러니까 지금의 사민당의 경우 최근 선거에서의 득표율이 3%에 미치지 못합니다.

어떤 전문가들은 미국이 일본에서 진정한 의미의 야당 역할을 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오늘날은 미국마저도 집권당인 자민당과 연합해버린 것 같습니다. 역사와 안보와 같은 이슈에 있어서 일본은 일당 체제의 국가와 다를 바 없는 신세가 될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마틴 팩클러가 쓴 뉴욕 타임즈의 최근 기사, '일본의 뉴스미디어 억압 노력은 성공적' (Efforts by Japan to stifle news media is working)이라는 기사는 일본의 이런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중국과 일본의 진정한 차이점은 과연 무엇일까요? 일본의 주요 연구기관의 한 전문가는 “중국은 힘으로 국제관계의 현상유지(status quo) 상태를 변화시키려 한다” 고 얘기했는데요. 그러나 한국의 관점에서 보면 중국과 일본은 이 점에 있어서 그다지 다르지 않습니다. 한국이 보기에는 일본도 마찬가지로 동아시아에서의 현상유지(status que) 상태를 힘으로 바꿔보려고 애쓰는 것 같아 보입니다. 일본 정부는 2차 대전 중에 끌려간 20만 여명의 한국인 ‘위안부’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동해에 있는 한국 땅 독도를 일본 영토라고 계속 주장합니다.

중국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저는 미국의 전문가들이 동아시아의 상황을 너무 단순하게 보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중국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중국과 어떻게 대화하느냐 입니다.

“일본은 과거의 적이다. 중국은 새로운 적이다. 일본은 민주주의 국가이므로 동맹국이다.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이므로 위협이자 경쟁국이다.” 미국의 관점이 이런 것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지나치게 단순화된 이분법적 판단입니다. 중국은 여전히 스스로를 공산국가라고 칭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은 아주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사회의 개방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입니다. 한 사회가 얼마나 개방돼있는지를 알아보는 방법 중 하나는 사람들이 자기의 의견을 얼마나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빠른 세계화와 더불어 경제적 자유와 번영으로 인해 중국의 젊은 세대는 미국인들과 비슷한 가치관을 가지게 됐습니다. 작년에 중국에 갔을 때 한 중국 분이 본인이 처음 서울을 방문했을 때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서울에 있는 전쟁기념관에 가서 한국전쟁이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고 하더군요. 학교에서는 한국이 전쟁을 시작했다고 배웠다는 겁니다. 저는 한국전쟁이 한국인들 뿐 아니라 중국인들에게도 아주 비극적인 사건이었다는 말을 했습니다. 마오쩌둥 주석의 장남인 마오안잉을 포함해서 수많은 중국 군인들이 한국전쟁에서 목숨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분의 대답에 저는 몹시 놀랐습니다. 마오안잉이 한국전쟁에서 전사하지 않았다면 지금 중국은 북한보다 더 안 좋은 상황이었을 거라고 하더군요. 마오안잉이 전쟁에서 죽지 않았다면 북한의 권력 승계 같은 상황이 중국에서도 벌어졌을지 모른다는 말입니다. 그 분은 그게 미국이 중국에 가장 크게 기여한 점이라고 했습니다. 이건 중국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진 생각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중국의 젊은 세대가 얼마나 개방적인지 대단히 놀랐습니다. 공산주의가 인류의 엄청난 희생 위에 만들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는 ‘하부구조’인 경제구조가 ‘상부구조’인 사회적·정치적·지적 과정을 결정한다는 칼 마르크스의 이론이 틀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멀지 않은 미래에 중국의 개방성이 덜 권위주의적이고, 더 민주주의적인 정치구조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유럽 대 아시아

이제 동아시아와 유럽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유럽에서는 경제통합이 정치통합의 토대가 됐습니다. 1952년에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가 발족했습니다. 1958년에는 유럽경제공동체(EEC)로 발전했습니다. 1993년에는 마침내 유럽연합이 첫걸음을 뗐습니다.

반면 아시아에서는 경제발전과 통합에도 불구하고 영토 분쟁과 역사 수정주의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아시아 패러독스라고 하는데, 박근혜 대통령께서 처음 사용하신 표현입니다.

AIIB와 TPP

미국이 중국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제외시키고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거리를 두는 것은 참 실망스러운 일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미국은 경제통합을 제로섬(zero-sum) 게임이자 미중 간 패권 경쟁의 무기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워싱턴에 있는 제 지인이 말하기를, 미국 정부는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하는 민주당 의원들을 설득시키기 위해,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경제질서를 수립하지 않으면 중국이 주도권을 가져갈 거라고 으름장을 놓아야만 한다고 합니다.

의회가 TPP와 무역협상촉진권한(TPA) 법안을 통과시키게 하려고 미국 행정부는 중국을 악당으로 만들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중국은 TPP에 초청되지 않았고, 미국은 AIIB에 참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제가 듣기로는 TPP 법안이 통과되면 미국이 중국을 TPP에 초청할 것이고 미국도 AIIB에 참여한다고 합니다. 국내정치가 대외정책의 발목을 잡는 사례입니다. 이건 리더십이 아니라 자기 기만입니다. 미국은 과거의 실수를 계속 반복하는 것 같습니다.

1997년에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일본이 아시아통화기금(AMF) 창설을 제안했었습니다. 그러나 미국 재무부는 이런 기구가 IMF의 주도권에 위협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재빨리 묵살했습니다. 당시에 저는 IMF가 중앙소방당국이라면 AMF는 지역소방서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불이 났을 때는 소방서가 많은 게 더 좋겠지요. AIIB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은 중국을 TPP에서 제외시키고 AIIB에는 참여하지 않으면서 동아시아에 있어서 미중 관계에 불필요한 긴장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일본은 가능한 한 빨리 AIIB에 가입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능한 한 빨리 중국을 TPP에 초청해야 합니다.

한국은 중국 쪽으로 경도되고 있는가?

한국은 중국과 긴밀한 경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한국이 미국보다 중국과 더 가까워지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 무역과 통상은 공동의 이익을 기반으로 합니다.

한편 안보동맹은 공동의 가치를 기반으로 합니다. 한미 동맹이 바로 그런 동맹 관계에 있습니다.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의 엄청난 지정학적 무게를 생각해보면, 대륙의 동쪽 끄트머리에 위치한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남아있다는 사실은 기적입니다. 그리고 그 기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로버트 케이건이 말했듯이, “더 좋은 이념이 있다고 해서 단지 그 이유만으로 승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이념을 옹호해 줄 강력한 힘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가치를 미국이 기꺼이 옹호해온 것은 행운입니다.

중국과 일본 모두 힘을 사용해 현 상황을 변화시키거나 유지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수 있습니다. 중국을 어떻게 ‘견제할지’ 보다 중국을 어떻게 ‘이해할지’가 더 시급한 일입니다.

바람직한 미국의 아시아 정책 방향은?

미국이 어떤 아시아 정책을 펴야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발표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1. 중국의 꿈(中國夢)과 일본의 야심, 미국의 가치 간에 충돌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서로를 더 잘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할 때입니다.

2. 늘 그렇듯이 미국은 너무 바쁩니다. 미국은 여전히 유럽과 중동 문제에 몰두해 있습니다. '아시아로의 회귀'는 ‘일본으로의 회귀’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지난 100년 간 미국은 동아시아 안보를 일본에 ‘하청’ 주었는데, 편할지는 몰라도 근시안적인 정책입니다. 미국은 아시아로의 회귀 정책이 지역의 안정성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3. 미중 간에는 경제관계뿐 아니라 심지어 군사관계도 계속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동아시아에 진정한 평화를 원한다면, 민간 차원과 정부 차원에서 중국과 더 많은 대화를 해야 합니다. 1949년에 중국이 공산화됐을 때 사람들은 “중국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사회주의뿐”이라고 했습니다. 1979년에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정책을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중국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자본주의 뿐”이라고 했습니다. 1989년에 소련이 무너지고 있을 때는 “사회주의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중국 뿐”이라고 했습니다. 2009년에 세계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는 “자본주의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중국 뿐”이라고 했습니다. 2015년 현재, 미국과 중국이 함께 해야만 동아시아를 구할 수 있습니다. 북한의 비핵화와 개방도 미국과 중국이 협력할 때만이 가능할 것입니다.

4. 일본은 미국과 중국이 서로 가까워지는 것을 우려할 수도 있겠지만 미국은 일본을 설득해 중국과 대화하도록 해야 합니다. 일본 또한 열린 마음으로 중국과 대화해야 합니다.

5. 일본 정치인들의 역사 수정주의는 단호하게 규탄해야 합니다. 어떤 현자가 얘기한대로, 만일 총으로 역사를 쏘면, 역사는 거꾸로 대포를 쏠 것입니다.

6. 이제 미국은 해결책을 제시할 스스로의 능력에 대해 자신감을 회복해야 합니다. 미국의 힘은 전세계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해결책이 되어야 합니다.

■정몽준 전 대표 프로필
중앙고, 서울대 경제학과- MIT경영대학원 경영학석사, 존스홉킨스대 국제정치학박사-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대표, 7선 의원(13~19대), 울산대 이사장(현),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현)

저작권자 © 데일리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