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탠퍼드대 초청 강연
"2016 총선, 2017 대선, 2018 지방선거 등 3년 간 선거가 한국정치 분수령"
"대통령 5년 단임 문제와 무분별한 합종연횡으로 '성공한 대통령' 되지 못해"
아베의 왜곡된 역사관 비판하며 "일본 이중성 간파해야" 미 외교가에도 일침

김형오 전 국회의장
[데일리한국 김종민 기자] 김형오 전 국회의장(부산대 석좌교수)은 차기 대통령이 갖춰야 할 자질과 덕목에 대해 "도덕적 기반 위에 정치적 리더십을 갖춘 지도자라면 그가 말하는 공약은 비전이 되어 국민들은 그를 믿고 꿈을 공유할 것"이라며 도덕적 권위와 정치력를 꼽았다. 그러면서 김 전 의장은 "그런 지도자가 앞장서 지역 갈등을 해소하려고 뛰어든다면 (국민들은) 그에게 등 돌리지 않고 박수를 보낼 것이며, 복지와 세금·성장과 분배·노동과 임금 등 민감하고 미묘한 문제를 건드려도 그를 믿고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의장은 6일(현지 시간)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한국 정치와 차기 대통령 선거'라는 주제로 가진 초청 강연에서 "대통령 선거가 2년 반 남았다는 것은 우리에게 희망"이라면서 "공동체의 가치를 잊지 않으면서 착실하고도 분명하게 준비해 나간다면 2017년, 대한민국은 그런 희망적인 지도자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의장은 먼저 2017년 대선 의미를 설명하면서 "한국은 내년 봄 국회의원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6월 전국 동시 지방선거 등 3년 연속 전국 규모의 선거를 치른다"면서 "자칫 잘못하면 선거를 전후해 엄청난 갈등과 국론 분열로 국가 발전이 저해되고 정치·사회 양극화가 심화될 수 있으므로 차기 대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차기 지도자의 요건과 관련, "첫째 도덕적 권위가 있어야 한다"면서 "이것이 약하면 국민의 신뢰를 잃고, 추진 동력을 상실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도덕성의 흠결이 있는 지도자는 국민을 통합할 수 없고 정치 불신만 높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김 전 의장은 이어 "둘째 정치력이 있어야 한다"면서 "무엇보다 진정한 의미의 정치 복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통령과 입법부와의 갈등, 여야의 대립, 세대·지역·계층 간 갈등, 복지 논쟁, 남북 교류 등 우리 앞에는 무수한 이슈와 갈등 덩어리들이 놓여 있다"며 "이를 타협과 소통으로 아우르고 풀어내는 리더십의 출현을 국민은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 전 의장은 잠정적 대선 후보자들은 ▲통일 한국을 위한 외교 역량 강화 ▲건실한 시민사회의 성장 ▲부패와 비리가 없는 투명한 사회라는 세 가지 목표를 중심에 두고 각각의 실천 가능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미·중·일·러라는 강국 사이의 유일한 중강국(Middle powers)인 한국으로서는 기본 축 못지않은 보조 축·연계 축 역할이 요구된다"면서 "최근 이슈인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THAAD) 도입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 문제를 놓고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외교적 이니셔티브를 발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지난해 세월호 사건으로 국가 중심의 기존 시스템은 이제 한계가 분명해졌다"며 "강고한 기득권 옹호 세력과 집단 이기주의가 성숙한 시민 사회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시민사회의 미성숙으로 국가와 관료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시민 개개인의 공공성이나 시민성은 서구 시민사회에 비해 아직 초보 수준"이라면서 "이것을 해결하는 것이 국가 지도자의 시대적 임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요즘 한 기업인이 자살하면서 던진 리스트가 재임한 지 63일밖에 안된 총리를 사임으로 몰고갈 만큼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며 "이번 기회에 엄정하고 성역 없는 수사를 펼쳐 정치와 경제 사이에 가로놓인 부패의 연결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 전 의장은 한국 민주주의의 고질적 병폐를 여야의 극한 대립, 대통령과 입법부의 불균형 관계, 대권 지상주의 등 3가지로 압축했다. 그는 "여야가 합의에 실패하면 회의장은 야당 의원에게 점거 당하고, 표결을 강행하려는 여당과 이를 저지하려는 야당 간의 물리적 대결로 안건 표결 처리는 불가능해진다"며 "여야 대립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된다"고 말했다.

김 전 의장은 "한국의 대통령은 대개 국회의원 출신이지만 대통령에 당선되는 순간 국회를 잊어버리는 것 같다"며 "대통령은 입법부를 견제와 균형이라는 수평적 관점에서 보지 않고 대통령을 위해 일해야 하는 종속적 관계로 보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다만 김 전 의장은 "이른바 '국회 선진화법'을 통해 이 두가지의 병폐는 개선될 수 있는 희망이 보인다"면서 국회 선진화법에 대해 "다수결의 원칙 등 다소의 문제를 안고 있지만 민주주의의 진전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권 지상주의 폐해에 대해 "5년 단임 대통령제에서 제대로 활동할 수 있는 기간은 잘해야 3년"이라며 "취임 초에는 선거 후우증과 예산 문제로, 임기 후반에는 레임덕 현상으로 실질적 활동을 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대권 지상주의 치유법에 대해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시키는 것이 필요한데, 이를 위한 최선의 방법은 개헌"이라고 밝혔다. 그는 "사심 없는 대통령이니 마음만 먹으면 (개헌은)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라며 "(개헌 없이) 현행 헌법 하에서 운용의 묘를 살리면 가능한 방법도 있으므로 대통령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1987년 개헌 이후의 한국의 역대 대선 결과를 분석하면서 "한국의 대선은 미국 대선처럼 주로 난형난제의 시소 게임이었다"면서 "정당들과 후보들이 통합하면 승리하고 분열하면 패배한다는 경험적 사실이 입증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대선 당선이 곧 집권 후의 성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면서 "민주화 이후 모든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확실하게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5년 단임이란 구조적 문제와 더불어 당선 과정에서의 무분별한 합종연횡에서 기인한다"고 말했다.

김 전 의장은 이날 강연에서 한반도 통일과 북핵 문제를 짚어보고 국제 역학 관계 속에서 나아가야 할 한국의 역할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올해는 해방 70년·분단 70년이 되는데, 같은 민족이면서 이념적으로 갈라진 유일한 곳이 한반도"라면서 "남북 간의 긴장을 완화하고 한반도 안정을 유지하는 것은 남북 양 정권뿐 아니라 동북아 평화를 위해 매우 긴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그는 북핵 문제 해결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북한 정권에게 절체절명의 현안은 북한 체제의 보장일 것"이라며 "그들이 더 이상은 핵에 기대지 않아도 좋을 만큼 국제사회가 북한 체제를 확실하게 인정해주는 방식으로 접근한다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태우정부 당시에 논의됐던 남북한 '상호 불가침 조약'이나 김대중 정부 당시의 '휴전 협정의 평화 협정으로의 대체' 문제를 다시 협의한다면 북핵 문제 해결에 보다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 방안과 관련, 식민지배 및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던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왜곡된 역사관을 강도 높게 비판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일본 지도부의 정직하지 못한 태도가 한국인들에게 고통과 반감을 주고 있다"면서 "특히 어린 소녀들을 그들의 전쟁 막사로 끌고가 성적 학대를 한 데 대해 아직도 사과하지 않아 일본이 가해자란 사실을 진심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의구심을 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동북아 정치 지도자들이 과거사를 활용해 값싼 박수를 받으려 한다는 미국 일부 지도층(웬디 셔먼 미국 국무차관)의 인식이 우리를 곤혹스럽게 한다"며 "일본 식민지 지배의 혹독성과 일본의 이중성을 간파했다면 그런 양비론적 발언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워싱턴 외교가를 향한 일침도 잊지 않았다. 그는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한미동맹은 계속 유지돼야 한다"면서 "미국·일본·중국의 역할도 중요한 만큼 모두 공감하는 선에서 외교역량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의장은 스탠퍼드대 강연에 이어 8일에는 하버드대에서도 같은 주제로 강연한다. 마침 두 대학은 지난달 말 미국을 방문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강연했던 곳이어서 눈길을 끈다.

■ 김형오 전 국회의장 프로필
경남 고성 출생- 경남고, 서울대 외교학과, 정치학박사(경남대)- 14·15·16·17·18대 국회의원(부산 영도구)-한나라당 원내대표, 국회의장-부산대 석좌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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