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보수 개혁'으로 위기 극복 경험… "미래는 준비하는 자의 것이다"

한국 보수 진영은 도덕적 우위, 유능함, 중도층 포용 등 세 가지를 보여줘야

진보 진영도 수권 능력 제고, 포퓰리즘 극복, 중도 외연 확장 과제 실천해야

이동관 총장
*편집자 주= 이동관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총장은 13일 연세대 신학대학원 최고위과정에서 '뉴 라이트 어게인 : 보수 2005 vs 2015'를 주제로 특강을 했습니다.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이 총장은 특강을 통해 지난 10년 동안 한국 사회 이념 지형의 변화를 고찰하면서 최근 보수 진영이 '성완종 리스트 파문' 등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이 총장은 "어떻게든 보수가 이긴다는 전제는 허구"라면서 보수 진영이 재집권을 시도하려면 '뉴라이트 어게인' 정신으로 새로 시작해 보수 진영의 도덕성 우위, 국정운영 능력, 중도층을 포용하는 유연성 등 세 가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데일리한국은 이 총장 측의 동의를 받아 특강 내용 요지를 칼럼 형식으로 게재합니다.

[이동관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총장 특강 요지] "보수는 그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개혁해야 한다". 18세기 영국의 정치사상가로 보수주의의 원조 격인 에드먼드 버크의 말이다. 보수는 체제를 무너뜨리는 혁명을 반대하는 것이지 개혁과 쇄신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며, 쇄신만이 보수를 보수답게 만든다는 점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매우 대립되는 두 개념 같지만 혁신 없이는 보수의 지속성은 불가능하다. 보수는 혁신하지 않는다면 결국 퇴행해서 보수가 아니라 미래를 기약할 수조차 없는 반동이 된다.

"보수는 정체성 유지 위해 끊임없이 개혁해야"

보수든 진보든 사회운동세력이든 '미래는 준비하는 세력의 것'이란 점은 역사가 잘 보여준다. 역사의 진동추는 좌우로 진자운동을 해왔지만 결코 자동으로 움직인 일은 없다. 시대적 흐름에 방향성을 부여하고 철학적·가치적 담론을 만들고 조직화해서 이끌어나가는 세력이 항상 존재했다.

지난 1964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작은 정부'와 대소(對蘇) 강경 외교 노선을 내건 공화당의 배리 골드워터 후보는 '위대한 사회'라는 진보 구호를 앞세운 린든 존슨 민주당 후보에게 완패를 당했다. 전체 50개 주 가운데 44개 주에서 졌다. 1974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사임하자 "보수는 죽었다"는 자탄의 소리까지 나오며 미국의 보수는 절멸(絶滅)의 위기를 겪었다. 과거 '차떼기당' 파문 직후의 한나라당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미국 공화당의 위기와 '신보수 시대'의 전개

하지만 미국의 보수는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자기 혁신에 나섰다. 1964년 패배 이후 전 유엔 대사인 다니엘 모이니핸, '이데올로기의 종언' 의 저자인 다니엘 벨, 세이무어 마틴 립셋 등의 보수 이론가들이 '내셔널 리뷰' 잡지를 만들어 담론 투쟁을 벌이며 보수의 가치를 설파했다. 미국의 보수 진영은 1973년에는 보수 성향의 대표적인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을 설립했다.

남침례교파(Southern Baptist)를 중심으로 하는 기독교계와 교육계도 '도덕적 다수'(The Moral Majority) 운동 등을 펼쳤다. 이들은 기독교 방송 네트워크 등을 통해 '리무진 좌파'(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진보 엘리트들을 비판하는 말)의 위선을 비판하며 가족의 가치와 애국심을 강조했다. 미국의 남부가 이때부터 '공화당의 텃밭'으로 변모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의 보수 진영은 16년 간 각고의 노력 끝에 1980년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 후보를 대통령으로 당선시켰다. 레이건에 이어 공화당의 조지 부시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보수 진영이 장기 집권하는 '신(新)보수 시대'가 전개됐다. 지금도 미국의 보수 언론인 폭스 뉴스는 지속적으로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고, 티파티 운동 등 보수의 지평을 넓히려는 노력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역사의 진동추가 자동적으로 왔다갔다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러시아 사례를 살펴보더라도 알 수 있다. 1917년 2월 혁명(멘셰비키 혁명) 직후 '보수 반동'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더 조직화되고 급진적인 볼셰비키의 대두로 러시아 귀족 세력 등은 역사 속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 바 있다.

2004년 한국, 뉴라이트 운동의 태동

지난 2004년 10월 우리나라에서는 뉴라이트('신보수' 의미) 운동이 태동했다. 당시 시청 앞에서 '반핵반김' 보수 집회가 열렸는데 주최측 추산 30만명, 경찰 추산 10만명이 결집했다. 해방 직후 반탁 시위 이후 최대 규모의 보수 집회였다. 노무현정부의 좌편향에 대한 반발과 좌절감·위기감 또는 분노의 표출이었지만, 한편으론 '보수의 위기'라는 배경도 있었다. 당시 한나라당은 '차떼기 정당'이라는 오명이 붙어있었고, 탄핵 역풍으로 총선에서도 패배했다. 당시 여당의 사학법 개정과 국가보안법 철폐 시도 등으로 보수는 절멸의 위기를 겪고 있었다.

당시 신지호, 김영환, 홍진표, 김용호 등 전향한 '386 운동권'을 중심으로 출범한 자유주의연대는 '시대정신'이란 잡지를 본격적으로 만들면서 담론 투쟁을 벌였다. 2005년 가을 자유주의연대, 교과서포럼, 뉴라이트싱크넷,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 등 7, 8개 단체가 결집해 뉴라이트 네트워크를 결성했다. 이들은 또 1980년대 한국 근현대사 재조명을 위한 필독서로 불린 '해방 전후사의 인식'의 좌편향성을 지적하며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이라는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기독교계에서도 김진홍 목사를 중심으로 회원 10만명 확보라는 목표를 세우고 '뉴라이트 전국연합'이 출범했다.

당시 저는 동아일보에서 정치부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는데, 이런 일련의 사회적 흐름에 대해 '뉴라이트'라 명명하고 '침묵에서 행동으로'라는 뉴라이트 기획 기사를 선제적으로 게재했다. 이는 앞서 언급했던 단체들이 '뉴라이트'라는 명칭을 쓰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뉴라이트는 그 전까지만 해도 좌편향 시각 때문에 언급조차 하기 힘들었던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시장경제, 자유주의 가치를 인정하고 한미동맹 복원, 폐쇄적인 민족주의 극복을 위한 세계화, 북한 인권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또 기존의 '올드 라이트'와 거리를 두고 좌파와 결별하기 위해 사회 지도층이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운동도 벌였다.

하지만 뉴라이트는 미완에 그쳤다. 정치 세력화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길 한가운데에 서 있으면 치여 죽는다'는 말처럼 중도 담론 투쟁의 쓴맛을 봤다. 현실 정치에서 중도를 끌어안는 전투에서 이기지 못하면 승리하지 못하고, 힘이 담보되지 않으면 굉장히 험난하고 괴로운 투쟁을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줬다.

보수 진영의 움직임 2005 vs 2015

2007년 대선 흐름은 이미 2005년에 가닥이 잡혀 있었다. 진보 개혁에 대한 피로감이 누적돼 있었고, 좌편항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나 반감이 커졌다.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후보라는 유력 대선주자들이 부상했고, 여권은 노무현 대통령의 탈당 등으로 자중지란이 일어났다. 당시에 때마침 자신을 '중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1997년에 22%를 차지하던 중도층의 비중이 2002년에 32%, 2004년 33%를 거쳐 2006년 지방선거에선 41%까지 늘어난 것이다. 이는 이듬해인 2007년에 치러진 대선에서 중도개혁적 보수 성향의 이명박 후보가 530만 표 차이로 압도적 승리를 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다시 보수 피로감… '성완종 리스트' 파문도 악재

그렇다면 과연 2015년의 흐름에선 5060세대 유권자의 급증에 따라 어떻게든 보수가 이긴다는 '기울어진 운동장론'이 적용될까. 여론조사기관인 에이스리서치가 지난 3월 국민들의 정치 성향에 대해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중도 47.2%, 보수 30.2% 진보 22.5%로 나타났다. 1년 9개월 전인 지난 2013년 7월 조사에서 중도 29.4%, 보수 34.5%, 진보 31.6%에 비해 중도층 비율이 17.8%포인트 급상승했다. 특히 중도층의 비율은 30대에서 62.1%, 20대에서 59.4%, 40대에서 52.6%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전통적인 보수:중도:진보의 비율인 3:4:3이 깨진 것이다. 상당히 중대한 흐름의 변화라고 생각한다. 지난 2005년에 자신이 중도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진보에 대한 피로감을 표출한 것이지만, 요즘 중도층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보수에 대한 피로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해 세월호 사태로 보수 세력은 큰 타격을 받았고, 또 최근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불길한 전조가 더 커지고 있다. 보수에 대한 피로감 존재 자체는 인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 여권에서는 뚜렷한 차기 대선주자가 부각되지 않는 가운데 4명의 야권 주요 대선주자인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안철수 전 새정치연합 대표, 안희정 충남지사의 지지율을 모두 합치면 50%가 넘어간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흐름이다.

'무능한 진보 vs 부패한 보수 프레임' 재현 가능성

'성완종 리스트'의 파장에 대해 단정적으로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그 파장은 특검 실시 여부나 대선자금 연관성, 구속 여부 등의 논란이 계속 이어지면서 길게 가면 연말까지 갈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지난 2005년의 '무능한 진보 vs 부패한 보수 프레임'이 재현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번에는 게다가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인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는 치밀한 준비를 해왔다. 문 대표는 대선 패배 1년 뒤인 2013년 12월에 발간한 <1219 끝이 시작이다>라는 책에서 "지난 대선은 벼락치기"였다며 "일찍 후보로 확정되는 사람이 승리한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최근에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 참배와 북한의 천안함 폭침 발언, 소득 주도 성장론,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 대사 병문안, 노인회 방문, 영남 민심 끌어안기 차원인 홍준표 경남지사와의 무상급식 토론 등 우클릭 행보를 이어가는 모습도 심상찮다. 준비하는 세력이 이긴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보수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치는 과학이다. 보수 위기의 핵심은 '기울어진 운동장론'이라는 독약에 있다. '어떻게든 보수가 이긴다'는 전제는 큰 착각이고 허구이다. 지난 2005년 칼럼을 최근에 찾아 읽어보니 그 당시의 여권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당시 진보층이 50.5%였으며 보수층이 43.6%였기 때문에 이명박·박근혜 후보에 대항할 맞춤형 후보만 찾으면 이긴다고 생각했던 것이 진보층의 흐름이었지만, 결과는 530만 표 차이의 대패였다.

보수·진보 진영의 세 가지 과제… "미래는 준비하는 자의 것"

문제는 중원에서의 전투다. 위기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개혁하는 보수의 담론 개발이 필요하다. 지난 10년의 변화를 반영한다면 뉴라이트의 의제나 방향도 바뀌어져야 한다. 보수 진영에게는 비관적 시나리오의 전조가 나타나고 있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 외에도 외교적 돌파구 마련의 어려움, 경제 불황 기조 고착화 가능성 등은 보수 세력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고 있다.

보수 세력은 '뉴라이트 어게인' 정신으로 새로 시작해야 미래를 개척할 수 있다. 보수 진영이 위기를 극복하고 재집권을 하려고 한다면 세 가지 과제를 실천해야 한다. 우선 미국 공화당이 그랬던 것처럼 보수 세력이 도덕적 우위에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도덕성 회복 운동을 펼쳐야 한다. 두 번째로 '무능한 진보'와 대비시키기 위해서는 실제로 보수 세력이 유능하다는 점, 즉 국정운영 능력이 뛰어나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세 번째로 '꼴통 보수'라는 지적을 받지 않으면서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중도층을 끌어안는 유연성을 발휘하고 구체적인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보수에 미래가 있을 것이다.

진보 진영도 마찬가지다. '무능한 진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려면 우선 수권 능력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 구체적 정책 대안을 준비해야 한다. 중도로 외연을 확장하는 과제도 계속 추진해야 한다. 또 진보의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포퓰리즘 정책이나 이벤트성 움직임을 지양해야 한다.

2017년 대선에서 어떤 세력이 집권하느냐 하는 것은 역사의 순리대로 갈 것이지만, 어느 쪽이든 철저한 준비나 밑바닥 작업을 선행하지 않으면 결코 이뤄낼 수 없다. 결국 미래는 준비하는 자의 것이다.

■이동관 총장 프로필
서울대 정치학과 - 미국 하버드대 니만 펠로우 - 동아일보 도쿄 특파원·정치부장·논설위원 - 이명박 대통령후보 공보특보 -17대 대통령직인수위 대변인 - 청와대 대변인·홍보수석·언론특보 -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 총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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