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주년 기획-국가 혁신과 통일 준비 ⑦]

대한민국 민낯 드러낸 세월호… 거버넌스 현주소 점검해야

정부·대기업·언론·노동조합·종교단체 신뢰도 총체적 하락

세월호가 던진 질문에 답해야..선장·승객 신뢰 회복해야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 사무국장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 사무국장 칼럼] 지난해 4월16일은 대한민국을 큰 충격과 좌절에 빠뜨린 날이다. 인천을 떠나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고 있던 단원고 학생들을 비롯해 여러 사연을 가진 사람들을 태우고 진도 앞바다를 지나던 세월호의 침몰 과정을 전 국민이 지켜본 날이다. 승선자 476명 중 295명이 희생됐고 9명은 실종됐다. 500여명과 대형 화물을 실은 대형선박이 침몰한 것은 안전 대신 이윤을 택한 선박운항사의 탐욕, 당국의 허술한 안전 점검 및 예방관리 체제로 빚어진 결과였다.

세월호 참사 1주기… 대한민국 민낯 드러낸 세월호

충격적인 것은 사고 당일부터 11월까지 진행된 수색 과정을 통해 단 한명의 생명도 추가로 구조하는 데 실패했다는 점이다. 승객들에게는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을 내보내고 자신들은 구조선에 몸을 싣은 선장과 항해사, 선원들의 납득할 수 없는 대응, 대형 안전사고에 대한 체계적이고 전문성 갖춘 구조 체계를 구축하지 못해 우왕좌왕했던 정부 재난 대응의 안이함과 무능이 대형 참사로 키웠다. 사고 당일 오후 쯤이면 구조 소식을 들을 수 있겠지 기대했던 게 대부분 국민들의 일반적인 정서였다. 세계10위권 경제대국 진입, 국민소득 3만달러를 외치던 대한민국의 자부심에 큰 균열을 가져왔다.

대한민국 거버넌스의 현주소… '저신뢰 사회' 넘어 '불신 사회'로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 정부, 기업, 시민사회 등 한국사회 국정 거버넌스 전반에 대한 불신과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동아시아연구원이 글로브스캔과 매년 진행하는 한국사회 주요 거버넌스 행위자들에 대한 신뢰도 조사 결과를 보면 정부, 대기업, 언론, 시민단체 등이 하나같이 불신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저신뢰 사회'를 넘어 '불신 사회'로 접어드는 양상이다.

2013~15년 사이에 정부 신뢰도 48%→39%/대기업 신뢰도 38%→ 35%

무엇보다 정부의 신뢰도 하락이 두드러진다. 박근혜정부 취임 1년 차인 2013년만 해도 정부를 신뢰한다는 응답이 48%로 과반에 육박했지만, 세월호 참사 전인 2014년 2월 조사에서 44%로 떨어지고, 올 2월 조사에서는 39%로 급격한 하락세를 보여주었다.

한편 현정부 들어와 초기부터 각종 비자금 사건과 갑질 논란의 중심에 섰던 대기업에 대한 신뢰도는 2013년 당시 38%로 상대적으로 낮았고, 2015년 조사에서는 35%를 기록했다. 열 명 중 여섯 명 이상이 "대기업은 못 믿겠다"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언론매체 신뢰도 41% → 34%/시민단체 신뢰도 60% → 55%

정부와 대기업에 대한 견제 역할을 해야 할 언론매체 신뢰도도 2013년 41%에서 2013~15년 거치며 32~34%까지 떨어졌다. 세월호 사건 과정에서 보여준 언론 보도의 선정성, 당파성 논란 과정에서 ‘기레기’라는 불명예스런 신조어가 탄생하기도 하였다. 특히 기존 매체는 물론 온라인 매체 등장 이후 정보 독점 구조를 약화시켰다는 긍정적 영향과 함께 각종 음모론과 진영론적 사고의 확대재생산에 대한 우려도 동시에 커지고 있다.

한편, 정부와 시민사회를 매개하는 시민단체들은 상대적으로 사정이 낫기는 하지만, 마찬가지로 신뢰도 하락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정부와 대기업 신뢰도 하락이 시민단체에 대한 기대로 이어지지 못한 것이다. 시민단체(NGO)에 대한 신뢰도는 2013년 60%, 2014년 58%, 2015년 55%로 완만하지만 하향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약자 대변 노조 신뢰도 39% /종교단체 신뢰도 32%로 가장 낮아

과거 시민단체와 함께 한국사회에서 높은 신뢰를 받던 노동조합이나 종교단체에 대한 불신 수준도 주목해야 한다. 이들 기관에 대한 신뢰도 평가는 동아시아연구원의 2015년 신뢰도 조사에 처음 포함됐다. 우선, 기업 횡포에 맞서 노동자 권익을 대변한다는 노조에 대한 신뢰도는 39%로 불신의 대상으로 전락한 대기업(34%)과 큰 차이가 없는 집단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은 노조 입장에서 뼈아픈 대목이다.

정치·경제·사회적 갈등을 치유하고 사회 통합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종교단체에 대한 불신은 심각한 상황이다. 32%가 종교단체를 신뢰한다고 답한 반면,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64.2%로 나타났다. 교황 방문 이전까지 종교가 세월호 치유 과정에서 이렇다할 위로와 치유의 기능을 하지 못했던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세월호 치유와 해법을 두고 교단이 갈라지고, 분란을 겪었던 모습이 작용한 결과인 듯하다. 이번 조사 대상에 포함된 한국 사회의 영향력 있는 행위자들 중 가장 불신이 큰 집단으로 나타났다. 치유와 통합의 기능이 절실한 시기에 기대에 못 미친 것이 더 큰 냉소를 부른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가 던진 질문에 답할 때… 선장·항해사·승객 신뢰 기반 회복해야

지난해 4월 이후 세월호의 침몰은 대한민국의 침몰로 비쳤다. 참사를 겪은 후 사회 전체적으로 작게는 대한민국의 안전시스템 점검부터 크게는 성장 시대의 패러다임 전반에 대한 진단과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이러한 공감대가 얼마나 현실 개혁의 힘으로 전환되었는지 의문이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약속했던 문제 진단, 특단의 대책, 중장기 구조개혁 등의 조치 중 어느 것 하나 속시원하게 진행되는 게 없다. 아직까지 진상 규명, 책임자 문책, 보상 및 제도 개선, 중장기 구조개혁의 과제들이 뒤엉켜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불신이 사회 전반에 확산되고 고착되고 있다. 또 다른 비극을 막기 위해 대비해야 할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제2의 세월호는 없다'고 자신할 수 있겠는가. 극단적인 불신 사회에서 참사가 재현된다면, 그 때는 무책임한 선장과 선원, 무능한 구조 시스템에 대한 순응 때문이 아닌 극단적인 불신과 불복 때문에 발생할 것이다. 선장, 항해사, 선원, 승객이 힘을 모아야 하는데 누가 선장인지, 누가 항해사이고 선원인지 알 수 없다. 세월호 1주기를 더욱 무겁게 맞이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 사무국장 프로필
고려대 서어서문학과, 고려대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정치학박사(고려대)- 동아시아연구원(EAI) 사무국장·여론분석센터 수석연구원(현), 주한미군사령관 민간자문위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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