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총 앞서 전문가 태스크포스 검토 거친 뒤 의원들에게 소개하는 절차 선행돼야"

"결정 늦어지면 한미동맹뿐 아니라 한중 전략적 협력관계까지 모두 훼손"

"대미-대중 외교 간 딜레마 시각보다는 심각한 안보 문제로 접근해야"

전옥현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데일리한국 김종민 기자] 전옥현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는 16일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미국의 고(高)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의 한반도 배치 문제에 대해 "우리 정부가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야 하는 단계는 이미 벗어났다"며 "더 결정이 늦어지면 한미동맹뿐 아니라 한중 전략적 협력관계까지 양자 관계를 모두 훼손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국가정보원 1차장을 지낸 전 교수는 이날 데일리한국과 가진 인터뷰에서 "시간을 끌면 끌수록 우리 정부가 애매모호한 입장에서 벗어나 명확한 의사를 표명하라는 미·중 양측으로부터의 공격 수위가 높아질 것이 우려된다"며 이같이 밝혔다. 전 교수는 이어 "사드 도입 문제를 단순히 미·중 간의 게임에서 우리 정부가 딜레마에 빠져 있다는 시각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다"면서 "현존하는 북한의 핵 위협이 눈앞에 와 있다는 국가 안보 상의 심각한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최근 사드 도입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부상했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의 피습 사건과 맞물려 사드 도입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 야권 일부에서는 "미국 대사 피습 사건에 휘말려 판단하면 안된다"는 비판론도 있다.

"리퍼트 대사에 대한 공격은 테러 행위다. 테러 행위를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같은 현실적인 위협 요소를 제거하겠다는 안보 이슈와 직접적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최근 사드의 한반도 배치 문제와 관련해 중국 측이 우리 정부를 압박했다는 의혹이 있었다는 점이 논란의 한 배경이 되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의 안보를 위해 실질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동맹국인 미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이제는 묵과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현실적인 판단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 주한 미군이 사드를 배치할 부지를 조사했다는 점을 인정하는 등 미국 측이 사실상 공론화에 앞장서고 있는데.

"미국 측은 더 늦기 전에 사드의 한반도 배치와 관련된 공론화 과정을 거치는 것이 한반도 안보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듯하다. 우리 정부가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야 하는 단계는 이미 지났다. 주한 미군이 이번에 사드 부지 조사 사실을 인정했을 뿐 아니라 미국은 지난달에도 존 커비 국방부 대변인을 통해 '한국 측과 지속적으로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가 번복한 적이 있다. 이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미국도 사드 문제와 관련해 시간을 지연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 것이다. 최근 중국은 국방장관, 주한 중국대사, 시진핑 국가주석 등 다양한 채널로 "사드 배치는 한중 양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압박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은 자칫하면 한반도 동맹 차원에서의 이익 보호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판단하고, 한국 내에서의 공론화가 결과적으로 사드 배치에 득이 된다고 생각한 듯하다."

- 사드 도입에 대해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중국을 자극할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천문학적인 국방비 부담, 요격률 검증 어려움 등이 지적되고 있다. 그래서 대화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부터 하자는 목소리도 많은데.

"현재 모든 성격의 남북대화는 묶여 있다. 6자회담이 가동되지 않은 지 7년째로 접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제거하는 데 발벗고 나서지 않은 채 사드 도입 반대 주장만 하는 것은 잘못됐다. 요격 체제 도입에 반대 입장만 표명할 것이 아니라 중국이 앞장서서 북한에 압박을 가해야 한다. 미국의 사드는 완전무결한 체계가 아니다. 사드의 요격률은 현재 70~80%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사드가 가진 고층방어시스템과 우리 정부가 구축 중인 킬 체인(Kill-Chain)· 한국형 미사일방어체제(KAMD·Korea air and missile defense) 등 하층 방어시스템을 병행한다고 해도 요격률이 100%에 이르지 못한다. 더구나 국방 예산을 적시에 투입한다고 해도 킬 체인과 KAMD는 2020년대 중반에 구축되지만 북한 핵과 미사일의 실전 배치 시기는 2~3년 후로 예상되기 때문에 완벽한 KAMD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그 때까지는 최소 7~8년 이상의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에 미국은 서두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저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라는 실질적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미국의 전술핵무기를 한반도에 가져다 놓는 극약 처방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 수준과 김정은 정권의 호전성·예측불가성을 감안할 때 단순히 사드를 도입하느냐 마느냐 하는 차원의 논의에 그쳐선 안된다."

- 그렇다면 사드 도입 움직임으로 예상되는 중국과의 갈등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우리 정부가 단순히 미국과 중국 사이의 게임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생각할 게 아니라, 한반도에서의 북한의 핵 위협이 눈앞에 와 있다고 심각하게 인식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중국을 설득하는 노력은 우리 당국의 몫이기도 하지만 미국 정부도 중국 정부와 다양한 협의 채널을 통해 적극 움직여야 한다. 한중 교역관계를 감안할 때 중국과의 마찰 가능성을 현실적으로 우려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G2로 부상한 대국(大國)의 입장인 중국이 사드 배치 문제로 이익이 충돌되는 것처럼 보인다고 경제 보복을 한다는 것은 국제사회의 위상에 걸맞지 않다. 한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고 안보 핫라인까지 개설한 중국은 국제사회의 관습과 규율, 국제 상거래법을 준수하는 의무를 다해야 한다."

- 미국 국방장관과 국무장관이 내달 한국을 방문할 가능성이 거론되는데, 사드 배치 문제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애슈턴 카터 신임 미국 국방장관이 첫 방문 대상 지역을 동북아 지역으로 정하고 순방하면서 안보 당국과 상견례한다는 측면도 있지만, 사드 배치 문제가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될 가능성이 크다. 큰 틀에서는 대(對) 아시아 정책과 관련해 오바마 행정부의 숙제인 한미일 간의 대북 안보협력 3각 체제를 재확인하면서 한미동맹 관계에서 한치의 오차가 없도록 하는 차원에서 방문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 새누리당은 사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정책 의총을 개최키로 하는 등 공론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공론화를 통해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아니면 당국의 전략적 판단에 맡기는 것이 옳은가.

"사드 문제는 국제정치 및 군사기술 문제·남북관계 등 복합적이고 종합적인 측면에서 고찰해야 할 사안이다. 때문에 의총에 앞서서 전문가 집단으로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검토를 거친 다음에 의원들에게 소개하는 절차가 선행돼야 한다."

- 사드 문제와 관련해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 문제에 대해선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우리 정부는 중국과 미국의 입장을 고려해 경제 안보와 관련된 AIIB 가입과 군사 안보와 관련된 사드 도입 문제를 맞바꾸면서 절충점을 찾는 것도 외교적 전략의 하나로 생각해볼 수 있다. 미중 양국의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서로 간 오해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 사드의 경우 기술적으로 레이더 상의 미사일 탐지 거리를 북한까지만 제한하고 방향도 북한 쪽으로 고정해 놓는다면 중국이 계속 반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또 AIIB 문제에서는 미국이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 등을 통해 주도하는 세계 금융질서에 중국이 도전장을 내민 격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중국 지분이 높고 지배구조가 투명하지 못하다'고 주장하며 한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에 가입 거부를 요구하며 견제하고 있다. 중국이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이도록 하는 등 우리 정부가 막후에서 외교력을 발휘해 중국의 정책적 변화를 어느 정도 유도해내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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