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55%가 통일 대박론 동의하지만 통일 신중론 63%, 현상 유지론 17%
'코리아'의 국제적 존재감은 커지는데 주변국 국민의 한국 이미지는 악화
대외 인식의 양면성 고려해 이념을 뛰어넘어 실용적 외교안보관 정립해야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 사무국장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 사무국장 칼럼] 2015년은 종전 70년, 광복 및 분단 70년, 한일 수교 50주년 등 한국의 외교관계에서 기념할 만한 사건들이 유난히 많은 해이다. 종전과 냉전이라는 국제적 역할 변화 과정에서 탄생한 대한민국은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라는 세계 초강대국 틈에서 국가 생존을 도모해야 했고, 동족과 총을 겨눈 상태로 힘겹게 발전과 번영의 활로를 개척해야 했다. 70년 동안 한국은 가난에서 탈출했을 뿐 아니라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 공여국으로 갈아탔고, 오랜 독재 끝에 민주화도 이뤘다. 뜻 깊은 한 해를 맞이하여 한 번쯤 객관적 데이터를 통해 세계 속의 한국의 위상을 점검하고, 한국인이 국제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에 대해 정리해볼 시점이다.

세계 속의 코리아-국제적 긍정 평가 상승세, 무응답 감소
미국, 호주, 영국, 프랑스 등 서구 선진국에서 이미지 개선 뚜렷
아프리카·동남아 원조 효과도 톡톡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클럽에 가입하고, G20에 당당히 자리를 잡을 정도로 성장했지만 아직 국제사회에서 코리아의 위상은 중견국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연구원이 BBC월드서비스와 글로브스캔과 함께 매년 20여개 국가를 대상으로 조사하는 국가별 평판조사 2014년 결과에 따르면 조사에 응한 세계 21개국 국민의 38%가 한국이 국제적으로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국가라고 인식한 반면 부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응답은 34%였다.

이들 21개국에서 5년 전 2010년 조사에서는 한국의 국제적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이 32%였고, 부정적 역할을 한다는 응답은 29%였다. 긍정 평가가 늘어난 것은 고무적이지만, 부정적인 평가도 늘어 상쇄되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2010년 조사에서는 한국의 국제적 역할에 대해 모르겠다고 답하거나 응답 유보한 비율이 35%나 되지만, 2014년 조사에서는 28%로 감소했다. 한국의 국제적 인지도와 존재감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개별 국가별로 보면 한국이 대외원조를 강화하고 있는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국가들에서 긍정적 이미지가 강화되고 있다. 2014년 조사에서는 한국에 시큰둥했던 미국과 호주, 유럽의 영국, 프랑스 등에서 한국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가 강화되고 있음이 확인된다. 좋은 징조다. 국내 문제에서는 극단적인 대립이 있을지라도 진보 정권이건 보수 정권이건 '코리아'라는 이름이 국제사회에서 갖는 존재감을 키우려고 노력한 결과라고 격려해줄 만하다. 그 사이 북한에 대한 세계인의 평판은 추락하여 이스라엘, 이란 등과 함께 세계인의 눈총을 받는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림1] (자세한 내용은 EAI 여론브리핑 제139호, 제140호 참조).

엇박자의 한반도
허니문 한미관계: 한국인 미국 호감도 04년 58점→14년 69점, 미국인 한국 호감도 49점→55점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은 개선되고 있지만 문제는 한반도다. 동아시아연구원과 한국리서치, 미국의 시카고국제문제협회(CCGA), 일본의 겐론NPO 등의 싱크탱크가 조사한 각국 여론조사 자료를 비교해보자.

다행인 점은 2002년 여중생 사망 사건으로 세계적 주목을 받았던 한국의 반미정서는 북한 위협이 고조되면서 한미 양국의 상호인식이 꾸준하게 좋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미 양국의 상호 인식은 양호하다. 국제적 평판뿐 아니라 양국에서 100점 만점으로 측정한 호감도 점수를 보면 한국인의 미국 호감도 점수는 2004년 58점에서 2014년 69점으로 상승했다. 반면 미국인의 한국 호감도도 2004년에는 49점에 그쳤지만, 2014년도에는 55점으로 개선되고 있다. 2000년대 초 한미관계가 삐끗하고, 효순이-미선이 사건 등으로 악화되던 양국 국민들 간 국민 정서가 유례없는 허니문 관계로 바뀌고 있다. 북한의 핵개발과 천안함·연평도 사건 이후 한국인들의 한미동맹에 대한 지지가 크게 증가한 결과다. 한국의 경제적 성과와 민주화, 국제사회에서의 적극적인 역할 확대 노력은 서구 선진국들, 그 중에서도 미국 국민들의 대한국 인식을 우호적으로 바꿔놓고 있다.

한중관계 불협화음 심각: 한국인의 중국 호감도는 개선, 중국인의 한국 태도는 급랭

한중관계는 엇박자를 보이고 있다. 2004년 동북공정 이후 지속적으로 악화되던 한국인의 대중국 호감도가 2012년 시진핑 체제 등장과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개선되고 있다. 2004년 58점이었던 호감도가 2012년 46점까지 떨어졌지만 2014년에는 56점으로 뚜렷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중국 국민들의 한국에 대한 호감도 점수는 2004년 조사에서 73점이었으나 2010년에는 58점까지 급격하게 떨어졌다. 한국의 국제적 역할에 대해서도 긍정적이라는 응답이 2012년 조사에서는 52%로 과반이었으나 2014년 조사에서는 40%까지 급락했다.

국민 정서의 악화는 한국에서 먼저 시작되었으나 개선 국면으로 돌아선 반면, 중국에서의 한국에 대한 우호적 감정은 뒤늦게 혐한 감정으로 급변하고 있다. 2014년 동아시아연구원과 한국리서치가 6월에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한미관계가 개선되었다는 응답은 30%에 그쳤지만, 한중관계가 개선되었다는 응답이 40%나 되었다. 한일관계나 남북관계는 악화되었다는 응답이 70%에 달한 것과 대비된다([그림3]). 양국 관계 개선에 공들인 한중 정부의 노력이 일단 한국에서는 효과를 본 셈이다. 중국에서의 혐한 감정 대책이 시급한 상황임을 보여주는 결과이다.

동반 하락 한일관계
한국인의 일본 호감도 04년 45점→14년 38점, 일본인 한국 친근감 10년 62%→14년 32%

한일관계는 훨씬 심각하다. 세계적으로는 독일과 선두 타툼을 벌일 정도로 국제적 평판이 좋은 일본이지만, 아시아 주변국 평판 관리에 실패했던 일본이다. 그러나 아베정권 등장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도 일본에 대한 호감도가 완만하게 상승하고, 국제적 역할 평가에서는 상당한 개선이 있었다. 그러나 아베정부 등장 이후 역사 교과서 문제, 위안부, 군사 대국화 정책이 가시화되면서 한국인들의 대일 감정은 다시 악화되는 추세다. 2010년만 해도 한국인들의 대일본 호감도 점수는 50점까지 올랐지만 2014년 조사에서 38점까지 내려앉았다.

문제는 한류 등으로 매우 우호적이었던 일본인들의 대한국 친근감이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급락했다는 점이다. 일본 내각부가 매년 조사하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 평가에서 2010년에는 62%나 “친근감을 느낀다고 답했던 일본 국민들이지만, 2012년 독도 방문 이후 39%로 급락했고, 2014년 조사에서는 32%까지 추락했다. 한일 수교 50주년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양면적인 대북 인식, '통일 대박론'의 딜레마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남북대화와 통일 대박론의 재점화를 주장했다. 통일 대박론을 꺼내든 2014년 6월 동아시아연구원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 국민의 과반인 55%가 통일 대박론에 동의했다. 통일 대박론에 대한 지지는 단기적으로는 대통령 지지율 상승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북한과 통일 문제를 바라보는 한국 국민 여론의 양면성을 읽어야 한다.

대북 통일 인식의 양면성: 통일 대박론과 통일 신중론의 공존

통일 대박론에 손을 들어주면서도 통일에 대한 입장을 물어보면, 통일을 서둘러서는 안된다는 신중론이 63%, 굳이 통일할 필요가 없다는 현상 유지론이 17%이다. 통일을 서두르자는 입장은 16%에 그치고 있다. 이러한 신중론의 밑바닥에는 북한 체제에 대한 혐오와 적대감이 깔려 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이 한국과 국제사회의 노력에 따라 북한이 합리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인식을 다수 여론으로 만들었다면 북한의 핵개발과 천안함·연평도 사건은 북한은 역시 예측 불가능한 비이성적 행위자라는 인식을 확산시켰다. 2004년만 해도 통일 방식으로 양 체제가 공존하는 연방제 형식을 다수가 선호했지만, 2014년 조사에서는 10명 중 6명이 남한식 흡수통일을 선호했다. 정부가 아무리 통일 대박론을 강조해도 정부조차 선뜻 북한에 손을 내밀기 어려운 상태 아닌가. 통일 대박론이 직면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이다.

통일 대박론의 한계- 주목 효과(stopping power) 성공
관심 유지(holding power) 및 고착(sticking power)에는 한계

언제 천안함·연평도 사건이 재현될지 모르는 것이 불안한데, 북한 정권이 쉽게 붕괴할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것도 불안하다. 열 명 중 여덟 명이 북한 정권이 장기적으로 지속되거나 붕괴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조기에 붕괴될 것으로 보는 국민은 열명 중 두 명에도 미치지 못한다.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을 아젠다 파워의 차원에서 평가하자면 장기적인 통일편익을 강조함으로써 국민들의 시선을 즉각 멈춰 세운 주목 효과(attention power, stopping power)는 톡톡히 거두었다. 반면, 국민들의 관심을 유지시키는 홀딩 파워(holding power)나 어젠다에 대한 공감대와 지지를 공고화하는 고착 효과(sticking power)에서는 한계가 뚜렷하다. 이러한 한계를 뛰어넘으려면 국민들의 통일에 대한 기대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북한에 대한 불신과 적대감을 털어낼 수 있어야 한다. 북한의 변화가 필요한 대목이다.

실용적 안보관 절실, 이념의 경계를 넘어야 성공

코리아의 국제적 존재감은 커져가는 데 정작 한반도 이웃 나라에서의 한국 이미지는 나빠지고 있다. 북한의 위협이 커져서 불안한데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남북 간의 냉각 관계도 걱정이다. 진보와 보수, 어느 한쪽의 해법으로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도 않다. 그 결과 국민들의 선택은 안보 지렛대로서 한미동맹을 강조하는 전통적인 보수의 해법과 함께 햇볕정책으로 대표되는 진보의 대북 협력정책에 대한 지지가 공존한다. 우리 힘을 키워야 한다는 핵자위권에 대한 지지도 확인된다. 진보층에서 한미동맹을 강조하고, 보수층에서 대북 지원을 확대하라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국민들이 이념의 틀에서 벗어나 현실적인 선택을 하고 있는 만큼 정부와 정치권 역시 유연하고 솔루션 지향적인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때다.

레토릭 차원에서는 정부와 정치권도 이러한 변화에 부응하고 있다. 보수 성향 정부에서 통일 대박론이 나오고 야당에서 진보적 안보론이 나오는 역설적 상황이다. 그러나 지난 2년 동안 레토릭이 아닌 현실은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편으로는 통일 대박의 미래를 얘기하면서 서해 북방한계선(NLL) 진실 공방, 종북 대 반북의 해묵은 논란으로 2년을 허비했다. 과거와 낡은 이념 쟁점에 발목 잡혀 있는 한 한국 외교와 남북관계는 한 발자국도 전진하기 어려워 보인다. 국민들의 속내가 불편하고, 2015년 전망이 밝지 못한 이유다. 그러면서도 집권 3년 차로 접어드는 정부·여당의 심기일전과 달라진 제1야당의 변화에 대한 기대마저 버리지는 못하는 것이 광복 70년, 분단 70년을 맞이하는 민심의 현주소라고 생각된다. 정부와 정치권의 분발을 기대한다.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 사무국장 프로필
고려대 서어서문학과, 고려대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정치학박사(고려대)- 동아시아연구원(EAI) 사무국장·여론분석센터 수석연구원(현), 주한미군사령관 민간자문위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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