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광복·분단 70주년과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
광복 이후 분단됐으나 산업화·민주화 두 마리 토끼 잡아
아직도 갈 길 멀어… 수술해야 할 병과 제거해야 할 허들 많아
주요 과제는 통일 준비, 민주주의 질 높이기, 경제구조 개혁 등

이철순 부산대 교수
[이철순 부산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칼럼] 새해 첫날 영화 '국제시장'을 보면서 을미년의 의미를 생각해봤다. 올해는 광복 70주년이자 분단 70주년, 또한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런가 하면 을사늑약 110주년, 비극적인 을미사변 120주년이 되는 특별한 해이다.

120년 전 이 땅은 외세 이해관계의 각축장이었다. 그러나 나라의 지도자들이 일치단결하기보다는 극심한 내부 분열에 휩싸이다 보니 한 나라의 왕비가 일본에게 무참하게 도륙당하는 일을 겪고 말았다. 이어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절체절명의 귀중한 15년을 허비하다가 종국에는 나라마저 잃고 말았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35년은 우리 민족에게 그야말로 가시밭길이었다. 1919년에 거족적인 3·1운동이 있었으나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우리에게는 해당 사항이 아니었다. 3·1운동의 여파로 ‘민주공화국’을 표방하는 임시정부가 수립되었으나 임정은 2차대전 종전 이전에는 끝내 연합국의 승인을 받지 못했다. 우리 민족의 피로 직접 쟁취하지 못한 해방은 분단이라는 멍에를 우리에게 짊어지게 했다. 우리는 분단의 고통을 70년째 겪고 있는 중이다.

비록 분단된 국가였지만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대한민국의 수립과 생존은 하나의 기적이었다. 1948년 8월 시점에 아시아 대륙에는 공산주의의 붉은 그림자가 이미 짙게 드리워진 상태였다. 그 대륙의 끝자락에 세워진 여리고 여린 신생 대한민국이 공산주의 세력의 맹렬한 공세를 막아낼 수 있을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나라를 만든 지 불과 2년도 안 되어 일어난 공산주의자들의 6·25 전쟁 도발을 막아낼 수 있었다.

6·25전쟁 이후 대한민국은 조선 왕조 500년과는 완전히 딴 판의 길을 걸었다. 조선이 대륙세력인 중국의 보호 아래 '쇄국'의 틀 속에서 나라 발전을 도모했다면, 대한민국은 해양세력인 미국과 손잡고 대외 개방의 길로 매진했던 것이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2차대전 이후 독립한 신생국들이 부러워하는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었다. 2차 대전 직후 건국한 신생국들 가운데 두 가지 열매를 모두 거둔 나라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우리나라 외에는 종전 직후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도 되지 않았던 국가가 1인당 소득이 2만 달러 넘는 수준으로 발전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지난 60년 사이에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명목 GNI)은 394배 늘어났다. 지난 12월 한국은행은 '1953년 67달러에 불과했던 1인당 GNI가 2013년 2만6,205달러로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또 우리 정치의 가장 큰 질곡은 장기 독재였는데,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통해 장기 독재는 마감됐다. 이어 군사정권도 막을 내렸고, 선거에 의한 평화적 정권 교체가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아직도 우리 정치에는 끊임없는 여야의 대립 등 크고작은 병(病)들이 많지만 근본적인 체제의 문제는 해결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성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갈 길은 아직도 멀다.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서는 수술해야 할 병과 제거해야 할 허들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남북이 분단된 지 벌써 70년이 되었다. 우리 민족의 긴 역사에서 보면 분단의 시간은 작은 점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더 이상 방치하면 남과 북의 이질화가 고착화되고 분단이 영구화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지금부터 분단을 종식시키고 한반도 통일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 꾸준하면서도 치밀하게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 남북 관계 개선도 필요하다. 대화를 위한 대화, 보여주기식의 대화는 지양해야 하겠지만 언제 닥칠지 모르는 급변 사태 등 여러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남과 북 사이의 대화와 교류의 끈을 놓쳐서는 안된다. 올해는 광복·분단 70주년이기 때문에 이를 계기로 남북한 양측 모두 남북관계 개선 움직임들을 보일 것으로 보인다. 최근 남북한 당국이 남북 대화를 제의하는 것도 이같은 시대적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다. 올해는 남북 관계 진전을 위한 골든타임이 될 수 있다. 정부는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진지하게 노력해야 한다. 다만 대화 지상주의에 빠져 북핵 문제와 북한의 테러·인권 문제 등을 방치해서는 안된다.

두 번째로 민주주의의 질을 높여야 한다. 우리는 1987년 이후 민주화라는 과실을 누리고 있지만 이것이 만병통치가 아님은 이미 잘 알고 있다. 민주화 이후 개인과 각종 이익단체의 권리 주장이 난무하고 있지만 공동체를 위한 성숙한 시민 의식은 발견하기 어렵다. 평등을 강조하는 ‘민주’의 원리와 더불어 공동체에 대한 헌신을 강조하는 ‘공화’의 원리도 보강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법의 지배'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고 있는데, 법치주의를 정착시키는 일도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세 번째로 냉혹한 국제정세를 헤쳐 나가야 할 것이다. 특히 한일관계가 심상치 않다. 물론 근본적인 원인은 일본의 미온적인 과거사 문제 처리와 반성 없는 태도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정치권도 과도하게 감성적 민족주의를 자극해 민간 수준의 한일관계마저 악화시키지는 않았는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싫든 좋든 일본은 우리와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이웃국가이다. 한일관계 악화는 한미관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고 결과적으로는 우리의 국익을 손상시킬 수 있다. 특히 올해는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중대한 변화의 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아베 내각의 자세 전환을 견인해내면서도 막힌 한일 관계를 풀어갈 수 있도록 외교적 지혜와 능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네 번째로 갖가지 구조 개혁과 부정부패 척결의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집권 3년차로 접어든 박근혜정부에게는 올해가 개혁의 성과를 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이 기회를 놓치게 되면 개혁은 물건너가게 되고, 집권 말년에 닥치는 레임덕 현상이 앞당겨질 것이다. 공무원연금 개혁, 공공기관 개혁, 규제 혁파 등 산적한 난제를 어떻게든 올해 안에 풀어나가야 한다.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의 활로를 찾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단기적인 경기부양 정책 집행에만 그치지 말고 경제 구조와 노사 관계 등을 근본적으로 수술해야 한다. 또 국격을 높이기 위해서는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는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개혁에도 매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민통합을 이뤄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현재 보수와 진보, 중앙과 지방, 정규직과 비정규직, 기성세대와 청년세대, 동서 지역 간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같은 갈등 구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통령과 여야 정치권이 소통의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현장의 절실한 목소리를 듣고 민초들과 대화하며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청와대에만 갇혀 있는 인상을 줘온 대통령이 소통과 개방을 중시하는 새로운 리더십 스타일을 보여준다면 국민통합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국민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균형 인사도 필요하다. 나아가 사회적 양극화의 간극을 줄여가는 것도 국민통합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무상 복지'로 흐르지 않으면서도 다수의 서민들에게 필요한 복지 정책을 확대해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요즘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국제시장'을 통해서 실감할 수 있다. 그 영화의 주인공 윤덕수가 아버지 영정을 놓고 하는 독백 "이 정도면 잘 했지요. 그렇지만 많이 힘들었어요."를 연상하게 한다. 이제 광복·분단 70주년을 맞은 대한민국은 아버지 덕수 세대가 피와 땀·눈물의 범벅으로 이룬 업적을 바탕으로 더 빛나는 성취를 이어가야 한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한 단계 더 높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앞에 제시된 과제들을 순차적으로 해결해가야 한다.

■이철순 교수 프로필

서울대 정치학과, 서울대 정치학박사-부산대 정치외교학과 교수(현), 정치외교사학회 부회장(현), 21세기정치학회 이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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