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난 원인 분석 리포트]
극심한 경제난 초래한 결정적 원인은 경제정책 실패
'엔저' 때문 아니다… 고환율 정책이 경기 부진 가져와
이명박정부 사상 최악의 성장률은 고환율 정책 때문

최용식 정치경제평론가
[최용식 21세기경제학연구소장 칼럼] 현재의 극심한 경제난을 초래한 가장 결정적 원인은 경제정책 실패에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든 덮으려는 것이 정책당국의 속성이다. 이런 속성은 이명박정권과 박근혜정권에서 더욱 뚜렷해졌다. 경제전문가 사회도, 언론도, 심지어 야당조차도 경제난과 정책 실패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니, 책임져야 할 정책당국으로서야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정책 실패가 은폐되면 경제는 결코 살아날 수 없다. 실패를 성공으로 뒤바꿔 포장하기 위해서는 이미 잘못된 정책을 지속시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패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그 책임자에 대한 혹독한 문책이 있어야 비로소 경제를 살려낼 정책을 찾을 수 있다.

현재의 극심한 경제난 초래한 결정적 원인은 경제정책 실패

그런데 왜 정책 실패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이뤄지지 못하고 있을까? 경제난 극복은 국민의 최대 관심사임에도 불구하고 왜 야당과 언론은 물론이고 경제전문가 사회조차 정책 실패를 외면하고 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경제난의 원인을 호도하고 은폐했던 정책당국의 의도가 성공했기 때문이다. 경제난이 심각해질 때마다 적절한 핑계거리가 등장하곤 했거나, 정책당국이 그럴듯한 이유를 찾아냈던 것이다.

국내 경제연구소나 한국은행 등은 물론이고 해외의 저명한 경제연구기관마저 우리 경제의 내년 성장률을 3% 중반대로 전망하고 있으며, 날이 갈수록 그 전망치도 낮아지고 있다. 이것은 경제난이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하필 이때 등장한 것이 ‘엔 저(低)’이다. 해외시장에서 일본과 경쟁 관계에 있는 우리 수출이 ‘엔 저’ 때문에 부진하고, 그러니 경제난이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정책당국의 핑계이다. 재벌 계열의 경제연구소들은 ‘엔 저’에 대한 각종 보고서를 공표하고, 언론은 이것을 대대적으로 보도하여 정책당국의 핑계거리를 앞장서서 선전해주고 있으니, 국민은 그렇게 믿을 수밖에 더 있겠는가? 그런데 진짜로 ‘엔 저’가 우리 수출에 부정적일까? 과거에 이런 일이 벌어진 사례가 있을까? 아니다.

12월 현재 엔화에 대한 우리 환율은 9.3원 전후로 등락하고 있다. 2011년 말에는 엔화 환율이 14.9원이었으니, 불과 3년 사이에 35% 이상 떨어진 셈이다. 이런 사실만 보면 ‘엔 저’가 아주 심각하고, 이에 따라 우리나라 수출경쟁력이 경쟁국인 일본에 비해 심각하게 떨어진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것은 통계 조작이나 마찬가지이다. ‘엔 저’라는 주장에 유리한 통계만을 선택하고, 불리한 통계는 완벽하게 외면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6년의 엔화 환율은 7.8원에 불과했다. 현재의 9.3원대보다 16%나 더 낮았다. 그동안 너무 크게 떨어졌다는 지금의 엔화 환율은 2006년보다 19%나 높다. 2006년과 비교하면 지금은 ‘엔 저’에 끼지도 못한다. 한마디로 2000년대 중반에는 지금처럼 환율 방어를 지금처럼 치열하게 하지 않음으로써 엔화 환율이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것은 용인한 반면에 2014년인 지금은 ‘엔 저’를 저지하기 위해 환율 방어를 공격적으로 펼치고 있다. 그 바람에 올해 중반에 1,010원 아래로 떨어졌던 달러 환율은 12월 중에 1,100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달러 환율은 올해 하반기에만 10% 이상 상승한 셈이다. 참고로, 2006년에는 달러 환율이 한때 900원 아래로 떨어진 적이 있다. 지금의 달러 환율은 당시보다 20% 이상 높은 셈이다.

우리나라 수출은 달러 환율로 이뤄지는 것이 보통인데, 그렇다면 혹시 2006년에는 우리 수출이 심각한 타격을 받았고, 환율이 크게 상승한 2014년 하반기에는 수출이 비약적으로 증가했을까? 아니다. 우리 수출은 2006년에 15.4% 증가했다. 이 실적은 지난해 수출증가율 2.3%에 비해 월등히 높다. 2014년 하반기의 수출증가율도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에 불과하다. 특히 가장 최근 통계인 10월 수출실적은 겨우 2.2% 증가했을 뿐이다. 그럼 성장률은 어땠을까? 2006년 성장률은 5.2%를 기록했고, 연말에 가까울수록 더 높아졌다. 반면에 올해 성장률은 3%대에 불과하고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 왜 이런 이상한 일이 벌어질까?

환율 방어를 치열하게 하여 환율을 상승시키면 수출경쟁력이 높아져 수출 실적이 증가하고 경기는 호조를 보인다는 게 정책당국이나 경제전문가 사회의 일반적인 믿음인데, 왜 현실은 반대로 나타날까? 환율이 상승할 때는 그 이유가 비교적 간단하다. 환율이 오르면 해외 바이어가 수출 가격 인하를 요구하고 우리 수출업체들은 그것을 거의 수용한다. 그래서 환율이 오르더라도 전체 수출 실적은 증가하지 못하고 오히려 줄어들기까지 한다. 물론 수출 가격에 대한 지배력이 강한 삼성전자 등 세계적인 대기업의 수출 이익은 크게 증가하는 게 보통이다. 그래서 재벌 계열 경제연구소들은 고환율 정책의 당위성을 줄기차게 선전해댄다.

환율이 떨어질 때에 수출이 오히려 크게 증가하는 원인은 다소 복잡하다. 이해하기 쉽게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만약 환율이 계속 하락하면, 기업으로서는 당장 손실을 입는다. 예를 들어, 환율이 1,100원일 때 100달러짜리를 수출하면 11만원을 벌 수 있는데, 환율이 900원으로 떨어질 경우는 9만원을 겨우 벌어 수출기업은 손실을 입고 도산할 수도 있다. 그럼 수출기업은 어떻게 할까? 당장 150달러짜리 수출품을 새롭게 개발해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200달러짜리를 새롭게 개발해야 한다. 물론 이것은 수출기업의 피땀을 요구하지만, 이게 수출기업을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고 성장력 있는 기업으로 부상시킨다. 그래서 환율이 장기간 점진적으로 떨어질 때에 우리 수출은 더 크게 증가했던 것이다. 반면에, 정부가 고환율 유지를 위해 환율방어 정책을 펼치면 수출기업으로서는 당장에는 이익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100달러짜리를 수출할 경우 환율이 1,000원일 때는 10만원을 벌지만, 환율이 1,200원으로 올라가면 12만원을 벌 수 있다. 그러면 수출기업은 굳이 신제품 개발을 위해 기술개발을 하거나 위험부담이 큰 투자를 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래서 환율이 상승할 때는 수출이 좀처럼 증가하지 않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환율방어 정책 손실은 외평기금의 손실로 나타나는데, 이것이 점점 더 커지고 있으며, 앞으로는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아주 심각한 문제이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발생한 손실액 26조원의 거의 절반에 가까운 12.3조 원의 손실이 2012년 한 해에 발생했을 정도이다. 그 손실 중에서 환율 하락에 따른 평가손실이 6.5조 원이고, 환율방어를 위한 조달자금의 금리와 외화자산 운용수익의 차이로 인한 이차손실이 5.8조 원에 달했다. 2012년에 경상수지 흑자가 508억 달러를 기록했고, 환율도 연초의 1,150원대에서 연말에는 1,070원대로 80원이나 떨어졌기 때문에 손실이 그만큼 커졌다. 2013년에도 경상수지 흑자는 799억 달러에 달했고, 환율도 연중에 1,160원을 돌파했다가 연말에는 1,050원대로 하락했다. 이에 따라 환율방어 손실은 5조9천억 원에 달했다. 그 중에서 이차손실이 3조8천억원이고, 환차 손실은 약 2조원이었다. 2014년에는 경상수지 흑자가 무려 1천억 달러에 육박함으로써 그 손실액이 더욱 커질 것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참고로, 위의 손실액에는 역외 외환시장의 환율 방어를 위해 동원한 선물포지션의 손실은 물론이고 환율 방어를 위해 보유하게 된 금융자산의 평가 손실은 포함되지 않았다. 정부의 강력한 권유로 해외투자에 나선 금융회사와 기업 등의 평가손실 역시 마찬가지이다. 더욱이 환율 방어가 경기 하강을 초래하고 경기 부진을 장기화함으로써 나타난 국민경제적 피해는 숫자로 나타내기 어려울 정도로 커서 외평기금 손실을 왜소해 보이게 한다.

고환율 유지를 위한 환율방어 정책의 폐해는 위에서 언급한 것들만이 아니다. 내수시장에 끼치는 악영향은 더욱 심각하다. 정책당국이 환율 방어책을 펼쳐 환율이 상승하면 주요 원자재나 시설재 등의 가격이 올라 물가는 당연히 상승한다. 소득은 크게 증가하지 않는데 물가만 상승하면, 같은 소득으로 더 적게 소비할 수밖에 없어서 국내경기는 하강하는 것이다. 반면에, 환율이 하락하면 주요 원자재와 시설재 등의 수입가격이 하락하여 물가가 안정되고, 이에 따라 같은 소득으로 더 많은 소비를 하게 됨으로써 경기는 상승한다. 이런 경우에는 기업은 더 큰 이익을 남길 수 있게 되어, 생산을 늘리고 고용도 늘린다. 그러면 경기는 더 빠르게 상승한다.

고환율 유지를 위한 정부 경제정책이 극심한 경제난 초래

현실적으로 국내총생산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13%에 불과하고, 내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87%에 이른다. 더욱이 수출의 성장유발 효과는 9%에 불과하다. 그러니 정책당국이 환율 방어를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면 할수록 성장률은 떨어지고 국내 경기는 더욱 부진해질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고환율을 유지하기 위한 정부의 경제정책이 현재의 극심한 경제난을 초래한 셈이다.

왜 경제정책 당국은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은 국민경제적 손실과 재정적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고환율 정책'을 고집하는 것일까? 이미 실패했던 정책을 호도하고 은폐시키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그런 짓을 할 이유가 없다. 실패할 것이 뻔한, 그래서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경제난을 더욱 심각하게 할 것이 뻔한 경제정책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그 사연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특히 이명박정권은 연평균 2.9%라는 사상 최악의 성장률을 기록했는데, 여기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것이 ‘고환율’ 정책이다.

2008년 2월 이명박정권은 ‘성장률 7%,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경제대국’이라는 꿈같은 '747' 공약을 내세워 출범했고, 경제를 살리는 데 올인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연히 그 첫걸음은 성장률을 높이는 일이었다.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수출을 늘려야 하고, 수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환율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이명박 정권은 믿었다. 그래서 정책당국이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거둬들여 환율을 상승시켰다. 2월과 3월 두 달 동안에만 약 48억 달러를 외환시장에서 사들였다. 그 결과 1월 말 937원이던 달러 환율이 3월 말에는 992원을 기록하며 불과 그 사이에 5.9% 상승했다. 만약 이 추세가 지속되면 연간 상승률은 40%를 훌쩍 넘어설 정도로 달러 가치가 짧은 기간 동안에 아주 빠르게 상승한 셈이다. 다른 경제변수와 마찬가지로 환율 역시 관성을 갖기 마련이어서 이런 상승 추세는 흔히 상당 기간 지속되곤 한다. 실제로 달러 환율은 5월 말에 1,000원을, 9월에는 1,100원까지 돌파했으며 그 뒤로도 줄기차게 상승했다.

환율이 이처럼 급등한 탓에 수출은 비록 일시적이지만 증가했다. 1월에 15%였던 수출 증가율이 2월과 3월에는 각각 18%로 상승했고, 4월부터는 20%를 넘겼으며, 7월에는 35%를 훌쩍 넘어서기도 했다. 수출업체는 이익을 더 많이 남길 수 있게 됐으므로 더 열심히 수출했던 셈이다. 물론 국내경기가 부진하여 수출에 매진했던 것도 한 원인이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났을까? 수출이 크게 증가했으므로 경기는 살아나야 마땅했고, 성장률은 이명박정권의 공약처럼 7% 대로 올라가는 것이 당연하게 보였다. 실제로 1990년대까지는 수출이 10%만 넘어도 성장률은 8%를 넘었던 것이 역사적 경험이었다.

이명박정부 출범 직후인 2008년 경기 하강은 고환율 정책 때문

과연 경기가 살아났을까? 아니다. 경기는 오히려 하강으로 돌아섰다. 이명박정권이 출범하기 직전인 2007년 4/4분기의 성장률(연률)은 6.8%였는데, 2008년 1/4분기에 3.9%로 떨어졌고, 2/4분기에는 1.4%로 더 떨어졌다. 당시는 세계 경제가 전반적으로 나빴던 것도 아니다. 미국은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고는 있었지만 2008년 상반기 중의 성장률은 전년도 4/4분기보다 더 높았다. 일본이나 유럽도 2008년 초반까지는 성장률이 플러스를 기록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수출이 크게 늘어났다는 사실은 해외 경제 여건이 국내 경기에 끼친 영향은 제한적이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불행하게도 국내 경기의 하강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3/4분기에는 성장률이 0.7%로 떨어졌고, 4/4분기에는 바닥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추락하여 무려 -17.3%를 기록했다. 만약 이 추세가 1년 동안 지속됐더라면 국내총생산의 6분의 1이 사라질 판이었다. 외환위기 같은 경제파국이 닥쳤을 경우에나 일어날 법한 급속한 경기 하강이 이때 발생했다. 그럼 무엇이 국내 경기를 이처럼 빠르게 하강시켰을까?

경제전문가들은 흔히 세계 금융위기를 근본적 원인으로 꼽지만, 이건 틀렸다. 세계 금융위기가 본격적으로 진행한 것은 2008년 4/4분기부터인데, 국내경기는 이미 2008년 연초부터 줄기차게 하강했기 때문이다. 뒤에 나타난 변수가 원인으로 작용할 수는 없다. 세계 금융위기는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가 2008년 9월14일 파산신청을 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심각해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지 않은가. 그럼 국내 경기는 2008년 4/4분기부터 하강했어야 했지만, 그보다 훨씬 전부터 빠르게 하강했다. 따라서 국내 경기가 부진한 원인은 다른 데 있었다고 보는 게 옳다.

더욱이 세계 금융위기가 국내 경기에 영향을 끼치는 주요 경로는 수출인데, 특히 원화로 환산한 수출이 국내 경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데, 국내 경기가 추락하던 때의 원화 수출은 오히려 더 크게 증가했다. 성장률이 1.4%로 떨어졌던 2008년 2/4분기의 원화수출 증가율은 35%에 달했고, 성장률이 0.7%를 기록했던 3/4분기에는 원화수출 증가율이 45%에 달했다. 성장률이 -17.3%를 기록했던 4/4분기조차 원화수출은 33% 증가했다. 수출이 이처럼 크게 증가했다면 경기는 빠르게 상승하는 것이 정상인데, 왜 국내 경기는 오히려 하강했을까? 경기를 하강시키는 다른 변수의 힘이 훨씬 더 강력하게 작용하지 않으면 이런 일은 벌어질 수 없다. 그럼 무엇이 경기를 더 강력하게 하강시키는 힘으로 작용했을까?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은 그 뒤에도 벌어졌다. 원화수출 증가율이 0.5%로 뚝 떨어졌던 2009년 2/4분기에는 성장률이 오히려 크게 상승하여 10.4%에 달했고, 원화수출 증가율이 -3.1%를 기록했던 3/4분기에는 성장률이 무려 14.5%를 기록했다. 이런 사실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국내 경기에 끼친 영향은 거의 없었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한다. 국내 경기의 하강은 물론이고 상승조차 수출 혹은 해외경제 여건과는 상관관계가 크지 않았던 것이다. 그 이유는 내수의 비중이 수출의 비중보다는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앞에서 이미 언급했다.

우선, 2009년에 들어선 뒤에 국내 경기가 갑자기 상승으로 돌아선 원인부터 따져보자. 그것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대부분의 경제전문가는 재정 지출을 늘린 정책이 경기를 상승시켰다고 분석했지만, 이것 역시 틀렸다. 만약 재정 지출 확대가 경기를 상승시켰다면 2008년 하반기의 경기 하강은 일어나지 않았어야 했다. 재정 지출 증가율은 2008년 3/4분기에 23% 그리고 4/4분기에는 16%를 기록함으로써 예년의 두세 배에 달했다. 또한 2009년에는 재정 지출 증가율이 1/4분기의 46%에서 2/4분기에는 24%로 그리고 3/4분기에는 6.8%로 점점 더 작아졌는데 경기는 빠르게 상승했으며, 3/4분기 성장률은 놀랍게도 14.5%를 기록했다. 이런 사실은 재정 지출과 성장률 사이의 상관관계 역시 크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위와 같은 점은 국내 경기가 하강했다가 상승으로 돌아선 원인이 다른 데 있음을 의미한다. 그 원인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환율의 상승과 하락 때문이었다.

당시의 여러 경제 변수 중에서 가장 큰 변동을 보인 것은 환율이었으므로, 환율이 국내 경기의 급변에 가장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보는 게 옳다. 실제로 2008년 초부터 환율이 상승하자 수입 원자재의 국내 가격이 크게 올랐다. 우리 경제는 석유나 석탄 등 에너지 자원은 물론이고, 밀이나 옥수수 등의 식량과 사료, 원면이나 철광석 등의 공업용 원료도 거의 모두 수입에 의존하는데 그 가격이 크게 올랐으며, 그 영향으로 국내물가는 급등했다. 2008년 2월에 3.6%였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줄기차게 올라 7월에는 5.9%까지 상승했다. 물가가 이렇게 계속 오르면, 같은 소득으로 더 적게 소비할 수밖에 없으므로 경기는 더 부진해지기 마련이다.

더 심각한 것은 생산자물가 상승률이었다. 1월의 4.2%에서 수직으로 상승하기 시작하여 7월에는 12.5%를 기록했다. 이처럼 생산자물가 상승률이 훨씬 더 높아져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앞에서 이끌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당연히 기업의 경영수지가 악화된다. 경영수지가 악화되면 기업은 생산도 줄이고 고용과 투자도 줄이며, 그럼 소득이 줄어 소비도 줄어드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경기는 당연히 하강한다. 2008년에 국내경기가 빠르게 하강했던 배경에는 이런 경제원리가 작동했다.

당시에 대부분의 경제전문가는 국제 석유가격이 폭등하여 물가 상승이 일어났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석유가격은 1월의 평균 93 달러에서 3월에 100 달러를 넘어섰고, 6월 말에는 134 달러까지 치솟았다(텍사스 중질유 기준, 배럴당 가격). 그렇지만 그 영향은 제한적이었다. GDP 중에서 수출용을 제외한 석유 순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5%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환율 상승이 물가를 결정적으로 상승시켰다고 보는 것이 옳다. 전체 수입은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47%에 이르므로 이것이 물가를 결정적으로 상승시켰던 것이다. 환율 상승이 수입 원자재는 물론이고 각종 시설재와 소비재 등 전체 수입품의 가격을 상승시켰고, 이것이 물가상승률을 높였다. 이처럼 물가가 크게 오르자, 소비자의 구매력은 위축되고 기업의 경영수지도 악화되어 경기는 하강으로 돌아서고 말았다.

더 심각한 사태는 금융시장에서 벌어졌다. 환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하자 미래에 나타날 외환 수요가 당시로 시간 이동을 했고, 그러자 환율은 더 빠르게 상승하면서 외환위기가 또 터질지도 모른다는 불안 심리가 외환시장에 확산되기 시작했다. 때마침 그해 여름부터 ‘9월 외환위기설’이 떠돌았다. 이런 분위기를 틈타 외국계 금융회사들이 국내 일부 불순세력과 결탁하여 환투기를 감행했고, 환율은 더 급등했다. 10월에는 1,200원을 넘어섰으며, 그 후로도 환율은 거침없이 오르며 11월에는 한때 1,500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환율이 이렇게 크게 오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금융시장에 더 큰 타격을 입힌다. 환율이 크게 상승하면 외국에서 돈을 빌려온 국내 금융회사와 기업은 그만큼 환차손을 입는다. 예를 들어 환율이 1,000원일 때 1억 달러를 들여왔다면 1,000억원을 빌린 셈이지만, 환율이 1,500원으로 상승하면 이자를 제외하고도 1,500억원을 갚아야 한다. 환차손만 따져도 500억원을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셈이다. 2007년 말까지 국내 은행과 기업이 빌려온 외채는 각각 약 1천억 달러로서 총 2천억 달러에 달했으므로, 가만히 앉아서 우리 돈으로 1백조 원 이상을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기업은 돈을 쉽게 구하지 못해 외채를 당장 갚지 못했으므로 사정이 조금이나마 더 나았다. 반면에, 국내 은행은 돈을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어서 서둘러 외채를 갚았다. 환율이 본격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했던 2008년 3/4분기에는 38억 달러의 외채를 순상환했고, 폭등으로 바뀐 4/4분기에는 241억 달러를 순상환했다. 그 합계는 우리 돈으로 약 33조 원이었다. 그 결과 국내 금융시장은 극심한 신용경색에 시달렸다. 당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책임을 묻지 않을 테니 은행은 기업에 대출하라’고 권고할 정도였다. 금융시장이 이렇게 신용경색을 일으키면 경기도 빠르게 하강한다. 그래서 2008년 4/4분기 성장률이 무려 -17.3%를 기록했던 것이다.

금융기관은 우리 몸의 혈관계와 비슷하다. 화폐를 발행하여 유통시키는 중앙은행은 우리 몸에서 피를 생산하는 등뼈이자 심장이고, 은행 등의 금융기관은 우리 몸의 정맥과 동맥으로 이뤄진 핏줄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금융시장에서 유통되는 통화는 경제에서 우리 몸의 혈액과 같은 역할을 한다. 만약 우리 몸을 순환하는 혈액이 크게 줄어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손발과 내장을 비롯한 여러 신체조직은 필요한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함에 따라 활동력이 떨어지고, 자칫 신체의 모든 기능이 약화되어 목숨을 잃는 일까지 발생할 수도 있다. 실제로 2008년 말에 이런 일이 우리 경제에서 벌어졌다.

2009년에 국내 경기가 빠른 속도로 상승한 원인은 환율 하락

2008년에는 추락하기만 했던 국내 경기가 2009년에 들어선 뒤부터 빠른 속도로 상승했는데, 그 원인은 또 무엇일까? 이것 역시 환율 때문이었다. 환율이 하락으로 돌아서자 외국자본은 환차익을 누릴 수 있게 됐고, 이에 따라 외국자본이 대거 국내에 유입되었다. 외국자본의 유입은 해외 소득의 국내 이전을 의미했다. 이처럼 해외소득이 국내에 이전됨으로써 국내소득을 더 키웠고, 이것이 구매력을 키움으로써 국내 경기를 급상승시켰다. 실제로 2/4분기와 3/4분기에는 자본수지가 각각 87억 달러와 144억 달러의 대규모 흑자를 기록하였으며, 이에 따라 성장률도 일시적으로 높아져 각각 10.3%와 14.5%라는 놀라운 실적을 기록했다.

사실 2010년에 우리나라가 기록한 성장률 6.3%는 2009년 성장률 0.3%를 기준으로 계산한 결과였다. 연평균으로는 고작 3.3%에 불과했다. 그래서 2011년의 성장률은 3.6%로 떨어졌고, 2012년에는 2.0%까지 더 추락했다. 이것이 어찌 성공이란 말인가?! 더욱이 경제정책이 실패하지 않은 다른 나라들의 2010년 성장률을 보면, 정책당국의 주장을 전혀 신뢰할 수 없다. 싱가포르와 파라과이는 각각 14.5%, 필리핀 12.2%, 대만 10.9%, 중국 10.4%, 아르헨티나 9.2%, 터키 8.9%, 페루 8.8%, 우루과이 8.5%, 인도 8.5% 등 알만한 나라는 모두 우리나라보다 월등하게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래도 우리나라 경제정책이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것은 진실과 거리가 멀 뿐 아니라, 실패를 성공으로 둔갑시켜 실패할 것이 뻔한 경제정책을 박근혜정권에서 또 펼치도록 했다. 실패를 철저하게 분석하고 반성하는 일은 이래서 중요하다. 실패에 대해 누군가 책임을 지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그래야 실패하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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