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조하현 연세대 교수]

세수 확보 없이 복지예산 증액하면 재정 위기 발생

무분별한 복지예산 증액은 정치적 포퓰리즘에 불과

누리 과정과 담뱃세 '주고받기'는 야당 정체성 흔든다

조하현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조하현 교수 칼럼] 지난 2일 여야는 주요 쟁점 사안에 합의하며 내년도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예산안이 법정 처리 시한을 준수하여 통과된 것은 2002년 이후 12년 만이다. 외관상으로는 법을 준수한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법외 심사, 쪽지예산 등 국회의 퇴행적 관행은 여전했다. 또 담뱃세와 누리과정 예산을 비롯해 논란이 많았던 쟁점들이 졸속 처리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누리 과정과 담뱃세 '주고받기'는 야당 정체성 흔드는 것

담뱃세에 관해서 야당은 막판에 ‘주고받기식’ 협상을 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야당은 원래 담뱃세가 서민 증세라며 반대하며 법인세 인상과 같은 부자 증세를 세수 확보 방안으로 강조해왔다. 그러나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담뱃세 2,000원 인상을 용인하여 협상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때 야당이 얻어낸 것은 중앙정부 차원의 누리과정 예산 지원이다. 교육부가 추산한 예산 순증액에는 조금 못 미치지만 5,000억원 안팎으로 지원한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하지만 서민을 대변한다는 야당이 누리과정 예산은 얻고 담뱃세를 포기하였다는 사실 자체는 당의 정체성을 흔드는 결정이다. 담뱃세 인상분의 일부를 소방안전세에 지원하기로 하면서 담뱃세 인상의 목표가 증세임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지역구 '쪽지예산', 밀실야합 등 구태 계속

‘퍼주기식’ 예산 편성에 대한 안이한 태도도 문제다. 여야의 실세·중진 의원들을 중심으로 자신의 지역구 예산을 늘린 경우가 많았다. 어떤 의원은 자신의 지역 관련 예산을 무려 1,100억 원이나 끌어온 것으로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재원 마련 방안에 대해 소홀한 채 복지 예산을 과도하게 늘리는 행태도 보이고 있다. 내년도 예산안 중 복지 관련 예산이 무려 30%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고 올해 예산안 대비 증가율도 8.7%로 가장 높았다. 이웃나라 일본의 국가 신용등급 강등 소식을 정치권은 알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최근 일본의 국가 신용등급 강등은 적자재정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전망에서 비롯되었다. 일본의 국가부채는 GDP(국내총생산) 대비 200%가 넘어 선진국 중 최고 수준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일촉즉발의 위기가 아닌 이유는 일본 국채 대부분을 일본 국민이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용등급 하락으로 국채 신용도가 흔들려도 일본 국민이 국채를 채권시장에서 투매할 확률은 매우 낮다.

세수 확보 없이 복지예산 증액하면 자칫 재정 위기

하지만 한국 상황은 전혀 다르다. 일본과 달리 한국 국채는 중국 등 해외에서 많이 보유하고 있어서 국채 금리의 불안정성이 크다. 과도한 복지 예산 증대로 재정건전성에 문제가 생기면 외국인들이 채권시장에서 한국 국채를 투매할 확률은 상대적으로 높다. 게다가 최근 경기둔화로 인해 세수는 오히려 감소하고 있는 상태이다. 저물가 기조가 계속되면서 경제는 활력을 잃었고 1인당 국민총소득(GNI) 증가율은 이번 3분기 0.3%에 그쳐 2년 6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특별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현재 상황에서 세수 확보 방안 없이 복지 예산만 증액하면 자칫 제2의 PIGS 재정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PIGS사태란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을 줄인 말로 2011년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적자가 유로존 전체의 존립을 위협했던 사건을 일컫는다.

물론 헌법이 정한 법정처리시한을 지켰다는 측면은 이번 예산안 합의에서 긍정적이다. 시한 준수가 가능했던 데에는 올해부터 적용된 국회 선진화법의 영향이 컸다. 국회 선진화법은 여야가 예산심사를 기일 내에 끝내지 못할 경우 예산안이 국회 본회의에 자동으로 부의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예산 처리 과정의 속을 들여다보면 이전과 다를 바가 거의 없었다.

특정 지역구에 예산 몰아주기나 쪽지예산, 밀실야합 등 국회의 후진성을 드러내는 모습들은 여전히 개선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특히 야당은 담뱃세에 대한 초기 입장을 번복함으로써 예산안 처리에 정치적 협상을 경제논리보다 우선시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또한 복지 예산 증가가 세수 부족을 외면한 채 과속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살펴봐야 한다. 일본의 신용등급 강등 사례와 남유럽의 재정위기 사태를 보고도 무분별하게 복지 예산을 늘리는 것은 정치적 포퓰리즘에 불과하다.

무분별한 복지 예산 증액은 포퓰리즘에 불과

포퓰리즘이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는 것은 정치권도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수많은 역사적 사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반면교사로 삼지 못한다면 한국은 불행한 역사를 뻔히 알고도 똑같은 꼴을 맞이하는 부끄러운 나라로 남게될 것이다. 부디 정치권은 눈앞의 선거가 아닌 국가의 백년대계를 보기 바란다. 아울러 국민들도 포퓰리즘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 지혜를 발휘하길 기대한다.

■조하현 교수 프로필
연세대 경제학과, 연세대 대학원 경제학과(석사)- 시카고대 경제학박사- 연세대 상경대학 경제학부 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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