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부 국책연구원 문제 많다… 정치화, 관료 심부름꾼

방만한 국회 지원기구 재정비, 국책연구원 통폐합 이뤄져야

임도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편집자 주= 국회 사무처는 지난 3일 국가의 중장기 미래전략 과제를 초당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국회 미래연구원'이라는 싱크탱크를 설립하는 법안을 제출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찬성과 반대 양론이 있습니다. 국회와 정치권의 정책 연구 능력을 제고한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는 견해도 있으나 기존의 국회 지원기관 기능과 중첩된다는 이유로 '옥상옥'이란 비판도 있습니다. 이에 한국행정학회 회장인 임도빈 서울대 교수가 미래연구원 설립에 반대하는 입장을 담은 칼럼을 보내왔습니다. 데일리한국은 토론 문화를 활성화한다는 차원에서 이에 대한 반론을 보내주시면 게재할 예정입니다.

[임도빈 서울대 교수 칼럼] 국회가 자체 싱크탱크로서 미래연구원을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공무원연금 개혁과 같은 여러 가지 복잡한 사회적 이슈가 등장하면서 국회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장기적 과제를 연구하기 위한 박사들을 고용한 연구기관이 절실히 필요함을 느낀 것 같다.

그러나 과연 국회에 별도로 이런 기관을 설립할 필요가 있는지 깊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자신들이 특정 분야의 전문가이고 국민을 대표할 만큼 사회 문제를 해결할 실력이 있다고 주장하여 당선된 사람들이다. 또 우리 국민들은 그와 같이 국가적 비전도 없고, 전문성과 경험도 없는 의원 후보들을 뽑지는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국민들은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면 밤새워 공부하는 국회의원을 원한다.

물론 국회의원이 반드시 전문가일 수는 없다. 그래서 의정 활동을 지원하는 방대한 지원 조직들이 있다. 우선 국회 도서관이 있다. 국회도서관 직원에게는 국민 전체가 고객이지만, 특히 모든 의원들을 VIP 고객처럼 도와주는 각 의원 담당 사서도 있다. 이에 더하여 예산정책처, 입법지원처가 신설되어 각 분야의 박사들이 전문적인 연구를 통해 의원들을 지원하고 있다. 이제 국회 지원 조직도 이미 공룡화되어 있다.

그 뿐인가? 국회 내 각 상임위원회에는 수준 높은 전문위원들이 있고, 국회의원 개인들에게는 전문 보좌관들이 있다. 최근 늘어난 대학생인 인턴들도 각 의원들을 실질적으로 지원해주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각자 연구회를 만들어 학계 전문가들과 정책 연구도 하고 있다. 총 국회운영 예산을 고려할 때, 국회의원 1인당 매년 약 5억원이 소요되는 셈이다. 한국 국회의 현주소를 보면 5억원을 차라리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행정부 국책연구원의 문제… 관료들은 '종' 같이 부려먹기도

미래연구원 설립이 더욱 걱정되는 이유는 행정부의 국책연구원 실태를 보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행정부에는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국가 정책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기 위한 각종 전문 연구원들이 이미 많이 설립돼 있다.

그런데 이들 연구원들 원장 자리가 빌 때마다 청와대의 입김이 좌우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정치가 수많은 폴리페서들을 만들어 내는데, 좋은 자리에 가지 못한 사람들이 가는 자리가 국책연구원장 자리이다. 대표적인 '정피아'이다. 원장이 정치화되어 있으니, 분야별 장기적인 과제보다는 정권이 필요한 연구를 정권이 구미에 맞게 연구하는데 급급한 경우가 많다. 원장들이 국회의원들에게 굽신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들 연구원에 갓 들어간 박사들은 교수와는 달리 강의 부담도 없고 연구에만 전념하리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국책연구원의 환경에 질식하고 만다. 갑에 해당하는 해당 부처 관료들의 등살에 전문 분야에 대한 심오한 연구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된다. 관련 부처 관료들이 무슨 사안만 있으면 자료조사는 물론이고 정책 대안을 만들어 내라고 시도 때도 없이 주문해대고 시간도 넉넉히 주지 않는다. 박사들을 마치 자신의 ‘종’같이 부려 먹는다. 과거에는 외국 출장시 박사연구원이 담당 부처 사무관의 가방을 들고 다녔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거꾸로 관료들의 무능화와 철밥통에도 기여한다. 관료들은 머리를 싸매고 정책 연구를 하기보다는 박사연구원들을 시키면 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관료 자신들의 정책연구 능력은 저하된다. 그러니 박사들을 더 부려먹어야 한다. 일종의 악순환이 일어나게 된다.

국책연구원들이 이렇게 행정부의 눈치만 보는 현상이 자신의 밑에 연구원을 두고 싶어 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힘센 국회의원과 보좌관들이 미래연구원에게 할 횡포는 불을 보는 것과 같다. 연구원 자체가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예컨대 각 당이 합의하는 연구 주제를 한다고 원칙을 정했다고 과연 진정한 미래 연구를 할 것인가? 아마 국책연구원의 문제가 미래연구원에도 그대로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국회, 방만한 자체 지원기구 재정비하고 행정부 국책연구원 통폐합해야

오히려 차제에 국회는 비정상이 일상화된 국책연구원들을 정상화하는 개혁을 주도했으면 한다. 부처이기주의에 빠져 있는 행정부는 자체 정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국책연구원은 문자 그대로 국가 전체의 정책을 연구하는 기관이어야 하지, 행정부의 도구가 돼서는 안된다. 프랑스에는 각 분야를 맡은 거대한 연구 조직인 국립연구소(CNRS)가 있다. 이 곳의 연구원들은 대학교수보다 자부심도 강하고 안정된 연구 환경도 누린다. 한국에도 수많은 대학교수들과 민간연구원들도 있으니 이들에게 연구를 의뢰해도 된다.

국회 소속의 미래연구원 설립 계획 자체는 국회가 아직도 특권을 내려놓기에는 요원함을 나타낸다. 문제가 있으니 자체 조직을 신설하는 문어발식 경영을 하려 하기 때문이다. 말로만 국민 혈세를 지킨다고 하고, 실제로는 돈쓰기에 바쁜 집단이다. 일단 연구원 40명에, 연간 예산 60억원이라고 하지만, 일단 설립되면 규모가 커지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미래에 대한 이슈가 얼마나 많은데, 이 적은 인력으로 가능하겠는가? 매년 60억원이 누적되면 천문학적인 숫자가 된다.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긴 국민들은 허탈할 뿐이다.

'국회 무용론', '국회 폐지론'까지 나올 정도로 국민들에세 신뢰받지 못하는 국회가 살아남을 수 있는 묘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국회의 방만한 지원 기구를 정비하는 살을 깎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나아가 중첩되는 행정부의 국책연구원을 통폐합하고, 필요한 조직과 인력을 강화하는데 국회가 앞장서면 국민들의 박수가 나올 것이다. 연구원에서 근무하는 많은 박사들도 연구다운 연구를 할 수 있는 날을 고대하고 있다. 이를 위해 국책연구원에 대한 정치적·관료적 입김을 차단해야 한다. 악순환 고리를 끊어 관료들의 정책 능력도 기르도록 해야 한다.

■임도빈 서울대 교수 프로필
서울대 사회교육과, 서울대 행정대학원, 파리정치대학 사회학박사- 충남대 자치행정학과 교수-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현)- 한국 행정학회 회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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