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론' 군불 때지만 실제 창당은 어려워… 전당대회 득표 전략에 그칠 수도
간판만 바꾸면 손님 못끌어… '민주당'으로 바꾸고 합리적 개혁 노선으로 가야

요즘 새정치민주연합 주변에서 갖가지 색깔의 신당 창당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데일리한국 이선아 기자] "저 사람들과 어떻게 한 지붕 밑에서 살 수 있겠는가. 그렇게 하면 집권은 불가능하다. 차라리 우리끼리 새 집을 지어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 대비하는 게 낫다."

요즘 새정치민주연합 주변에서 이같은 얘기를 종종 들을 수 있다. 늦가을 단풍처럼 갖가지 색깔의 신당 창당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내년 2월 치러지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대표 경선 구도가 친노그룹과 비노그룹 대결로 굳어지는 상황에서 당권을 놓칠 경우를 대비한 시나리오들이 나돌고 있는 것이다. 새정치연합의 한 당직자는 "친노와 비노 사이에 알력 싸움이 심해 더 이상 함께 갈 수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며 "서로 뜻이 맞지 않으면 각자 살 길을 모색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에따라 야당 주변에서는 '호남 신당설' '영남 신당설' '중도 신당설'까지 나오고 있다. 전당대회에서 특정 계파가 당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를 차지하게 될 경우 다른 세력의 신당 창당론에 불이 붙게 될 것이란 얘기다.

이미 당내의 물밑 움직임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친노 패권주의 배격'을 내걸고 '구당구국' 모임을 이끌고 있는 정대철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과 정동영 상임고문 등은 "특정 계파(친노)가 당을 장악하면 신당이 불가피하다"고 공공연하게 말해 왔다. 천정배 전 의원은 지난달 정치연구소인 '호남의 희망'을 개설하고 주변 인사들에게 "호남에서는 이미 신당을 요구하는 민심이 많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영남 신당론'도 거론된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노무현 정부에서 일했던 젊은 인사들이 '영남 신당론'을 내세워 여러 인사들과 접촉하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안철수 현상'에 기대를 걸었다가 실망한 인사들도 신당을 모색한다는 얘기도 있다.

이렇듯 당 주변에서는 '신당 창당론' 군불을 때는 인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신당 창당론이 확산되는 근본적 요인은 새정치연합의 지지율이 새누리당의 절반쯤인 20% 전후로 바닥을 헤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호남 지역의 새정치연합 지지율도 40% 미만에서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신당 창당이 실제 성공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왜냐하면 과거 야권에서 수차례 신당을 시도했지만 진짜 새 바람을 일으키면서 유권자들에게 감동을 준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기존 야당에 대한 불만을 덮기 위해 새 옷으로 갈아 입거나 야권 내 권력투쟁 차원에서 분당을 시도하기 위해 신당을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니 유권자들에게 신당은 새롭게 다가오지 않는다. 지난 3월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이 합당해 '새정치민주연합'이란 신당을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권력과 자리, 노선을 둘러싼 파열음에 크게 실망했을 뿐이었다.

또 내년 초쯤에 실제 신당 창당을 시도할 정도의 동력이나 모멘텀을 찾기가 쉽지 않다. 2016년 4월 총선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는 공천 갈등 등으로 신당 창당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으나 내년 상반기에 새로운 당을 만들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결정적인 이유가 또 하나 있다. 신당 창당을 이끌 만한 리더십을 가진 큰 인물이 없다는 사실이다. 가령 비노세력 신당을 만들려면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대선주자급 인사가 결심해야 하는데, 그런 거물급 정치인이 없다. 안철수 의원의 영향력은 퇴조하고 있고,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금 정치적 결단을 할 시점에 있지 않다.

신당 창당설은 결국 전당대회 득표율을 제고하기 위한 카드, 즉 전략전술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비노그룹이나 제3의 세력, 친노그룹 어느 쪽이든 신당 창당 카드를 일찌감치 접는 게 바람직하다. 정당 간판을 바꾸거나 새 집을 짓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당의 체질 개선과 노선 전환이다. 우리 정당들은 자꾸 간판을 바꾸려 하지 말고 영국의 보수당·노동당, 미국의 공화당·민주당처럼 100년, 200백년 이상 가는 뿌리 깊은 국민정당을 만들어야 한다.

당의 뿌리와 문패는 그대로 놔둔채 노선을 확 바꾸는 게 진정한 개혁이고 혁신이다. 미국 민주당 소속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공화당의 정책을 벤치마킹해 당의 노선을 크게 전환함으로써 1992년과 1996년 대선에서 잇따라 승리할 수 있었다. 영국 노동당 소속의 토니 블레어 전 총리 역시 1990년대에 노동자 계층의 반발을 무릅쓰고 중산층을 끌어안는 '제3의 길'을 채택함으로써 10년 이상 집권하는 길을 열었다.

상품의 품질과 서비스를 개선하지 않을 상황에서 상점 간판만 바꾸면 전혀 손님을 끌 수 없다. 피와 땀을 흘리고 뼈를 깎는 노력을 하면서 당의 체질과 노선을 바꿔야만 유권자들의 시선을 끌 수 있다. 따라서 신당에 관심이 있는 야권 정치인들은 그런 열정을 당의 개조에 쏟는 게 좋을 것이다. 연구와 토론과 통해 비전을 새로 정립하고 노선 투쟁을 통해 합리적 개혁 노선을 정립할 수 있도록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다만 민주·개혁 노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기 위해 내년 전당대회에서는 본래의 '민주당'으로 당명을 변경하되, 앞으로는 이름은 그대로 놔둔 채 체질만 계속 바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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