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노무현·이명박·문재인·안철수 등은 정권 후반부에 급부상
최근 대선 과열 보도의 문제는 다크호스 변수 과소평가
대선에 관한 조기 과열 보도는 유권자 관심 사이클과 괴리

정한울 정치학박사
[정한울 정치학박사 칼럼] 요즘 각종 신문의 정치면을 들여다보면 때 이른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 결과가 많이 보도되고 있다. 차기 대권을 꿈꾸는 소위 잠룡과 그의 캠프, 정치적 역학관계 변화 속에서 자신의 생존을 꾀해야 하는 정치인, 화끈한 정치 기사를 뽑아내야 하는 정치부 기자들과 정치 호사가들에게는 이보다 더 큰 주제가 어디 있으랴. 대선이 열리는 해라도 되는 양 여러 정치인들을 나열하고 '내일 대선이 열리면 누굴 뽑겠느냐'는 조사 결과가 지면을 달구고 있다. 급기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스스로 나서 대선 여론조사에서 제외해 달라는 공식 발표를 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대선에 관한 조기 과열 보도는 유권자 관심 사이클과 괴리

차기 대선 문제가 조기 과열되는 것은 수요자인 유권자들의 관심이나 요구와는 무관한 공급자 중심의 의제 설정이다. 정작 표를 행사할 유권자의 입장에서는 뜬금없다. 대선은 5년 주기로 열린다. 정치권은 자신들의 입장에서 한시 한시가 중요하겠지만, 선거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과 참여는 주기적인 사이클에 따라 움직이는 경향을 보인다. 우선 새 대통령 취임 1~2년 차는 새 정부와 여당에 기대를 하며 권력을 위임하는 단계다. 정치에 불만이 있어도 새 정부에 책임을 묻지 않는다. 그러나 임기 반환점(임기 2~3년 차)을 돌면서 현실정치와 국정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고, 그 책임을 정부·여당에 묻기 시작한다. 그 만큼 국정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과 발언이 강화된다. 임기 4년 차에 접어들면서 현직 대통령과 집권여당의 성적표가 나온다. 민주화 이후 대부분의 정권에서는 이 시기에 유권자들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면서 여권 내부 균열이 심화되고, 야권이 제기하는 정권 심판론이 힘을 얻는다. 레임덕 단계다. 임기 5년 차에는 여야 대선주자들의 각축 속에 격렬한 권력 투쟁이 펼쳐지고 유권자들의 정치 참여 수위도 최고조에 달한다.

현재는 어떤 시점인가? 박근혜 대통령의 집권 2년 차가 저물어가는 시점이다. 아직 반환점에도 이르지 않았다. 현정부 성적표가 나오지 않은 상태여서 정권 심판론에 힘을 실을지, 미래 비전 중심의 선거를 치러야 할지 정할 수도 없다. 유권자들의 관심과 참여가 비활성화된 시기이다. 그나마 총선, 지방선거 등 중간선거 성격의 선거가 있으면 사이클이 앞당겨지기도 하는 데 앞으로 2016년 4월 총선까지큰 선거는 없다. 때문에 유권자 사이클을 고려하지 않은 정치권의 아전인수식 의제 설정은 실패하기 십상이다. 2014년 6월 지방선거에서 야당이 유리한 조건을 살리지 못한 이유 중의 하나는 유권자의 정치 사이클은 심판론 단계에 접어들지 않았음에도 주관적으로 중간심판론 구도에 집착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명박정부 4년 차 레임덕 단계로 접어들고 있는 시점에 여권은 4대강 사업을 강행하고, 무상급식 반대 서명을 밀어붙이다가 2011년 10월 보궐선거에서 패배하고 위기를 자초했다.

정권 반환점 이후 다크호스 부상… 노무현, 이명박, 문재인, 안철수 등

현 시점의 대선주자 경쟁에 대한 조기 과열 보도가 우려되는 이유 중 하나는 다크호스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박성민 민컨설팅 대표의 진단처럼 한국의 민주화 이후 선거과정은 주류에서 비주류로의 정치적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87년 대선의 승자는 다수당의 주류인 노태우 후보였고, 1992년 대선의 승자는 다수당의 비주류인 김영삼 후보였다. 그러나 1997년 대선에선 소수당의 주류인 김대중 후보, 2002년 대선에선 소수당의 비주류인 노무현 후보의 당선으로 이어졌다. 2007년 대선에서 당선된 이명박 후보는 야당의 비주류 출신이었다. 2012년 대선에서는 다시 다수당의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기는 했지만, 소수당도 아닌 장외의 비주류 출신인 안철수 후보가 '안철수 현상'을 만들면서 선거를 주도했다.

주목할 점은 비주류 다크호스가 부상하는 시점이다. 이들은 현직 대통령 임기의 반환점을 지나 레임덕 현상이 본격화되는 시점에 부상했다. 2002년 당선된 노무현 후보는 김대중 대통령 임기 4년 차까지 야당의 '이회창 대세론'과 여당의 '이인제 대세론'에 밀려 있었지만, 2002년 국민경선을 거치면서 한걸음에 선두주자로 발돋움했다. 2007년도 대선에서도 이명박 후보는 노 대통령 임기 중반까지 '고건 대세론'과 한나라당의 박근혜 후보에 밀렸지만, 청계천 사업의 성공과 2006년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선두권으로 치고 나갔다. 특히 2012년 대선의 경우 2011년 중반까지만 해도 누가 박근혜 후보의 본선 상대로 안철수, 문재인 후보를 떠올릴 수 있었나?

비주류 정치인의 부상은 주류 정치에 대한 불신의 결과이다. 여야의 주류 정치인 내에서 대안을 물색하는 단계를 거치고, 뚜렷한 대안이 보이지 않을 경우 비주류와 장외 인사로 눈길을 돌린다. 비주류의 부상 시점이 임기 4-5년 차에 집중되는 것은 기존 주류 정치에 대한 최종 성적표 결산이 이루어지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임기 2~3년 차의 대선주자 지지도 여론조사에서는 당내 주류에 소속돼 있거나 주요 공직을 맡고 있는 차기 주자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높은 지지를 받기 쉽다. 당장 눈에 띄는 후보들을 나열하고 대선 지지도를 측정하는 조사 방식은 주류 정치인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같은 방식은 다크호스를 예측하는 데는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대선은 100미터 달리기 아닌 마라톤… 긴 호흡의 관전법 필요

대통령선거는 한 호흡에 끝나는 100미터 달리기가 아니다. 오히려 기승전결을 갖춘 장거리 마라톤에 가깝다. 최근 언론의 차기 대선 관련 보도는 마라톤 경기를 100미터 달리기 중계방식으로 진행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초반 선두 경쟁은 중요한 변수가 전혀 아니다. 다크호스를 찾겠다며 미등록 선수를 경주에 포함시키는 것도 혼선만 가중시킬 수 있다. 유권자들의 정치적 관심에는 부침의 사이클이 있고, 특정 시점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스퍼트가 시작된다. 불필요하게 정치적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유권자 관심 사이클과의 괴리를 줄여야 한다. 차기 대선 레이스를 제대로 관전하려면 긴 호흡의 중계방송과 새로운 관전법이 필요하다.

■정한울 정치학박사 프로필

고려대 서어서문학과, 고려대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정치학박사(고려대)- 동아시아연구원(EAI) 여론분석센터 부소장- 동아시아연구원 사무국장(현), 주한미군사령관 민간자문위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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