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기획- 국격을 높이자 ⑭]
최근 진영 간 극단적 이념 대립… 해방 직후와 유사
진보는 자유민주주의 틀 안에서 보수세력과 경쟁해야

보수는 기득권 지키려는 수구 논리에 빠지지 말아야

이철순 교수
[이철순 교수 칼럼] 데일리한국이 최근 창간 기념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선진화를 위해서 '보수와 진보의 대혁신이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는 응답이 무려 66.2%를 차지했다. 진보의 대혁신을 위해 필요한 것으로 ‘이념의 벽을 쌓지 말고 보수 세력과 더 많이 대화해야 한다’는 응답이 34.8%로 가장 많았다. 보수 세력에 대해서도 ‘이념의 벽을 쌓지 말고 진보 세력과 더 많이 대화해야 한다'고 주문한 의견은 18.1%에 이르렀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보수 세력과 진보 세력 간의 이념 대립과 대화·토론 부재가 심각하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요즘 보수·진보 진영의 이념 대립 해방 직후와 유사

사실 요즘의 보수와 진보의 이념 갈등은 해방 직후의 이념 갈등을 방불케 한다. 한국사 검정교과서 채택, 대북전단 살포,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무상급식 등을 둘러싼 진영 간의 이념 대립은 국정을 교착 상태에 빠뜨리기도 하고, 갈 길 바쁜 대한민국호(號)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래서는 민주주의의 공고화도, 산업화를 넘어선 대한민국의 선진화도 요원할 뿐이다.

주자학적 명분주의로 인해 실리에 기초한 타협보다는 선명성 경쟁에 익숙한 우리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의 이념 대립을 극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념 갈등의 폐해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든 두 진영 간의 이념 대립을 극복해야만 한다. 우리의 현대사와 오스트리아의 두 가지 사례를 통해 우리는 보수와 진보의 이념 대립 극복을 위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해방 직후 보수·진보 상호보완 관계 배워야

먼저 대한민국 출범 전후의 역사를 찬찬히 살펴보면 보수와 진보가 늘 적대적 투쟁관계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 관계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첫 번째로 대한민국의 헌법 제정에 많은 영향을 미친 삼균주의는 최초의 한국판 사회민주주의노선이었고 한국의 자유시장 경제체제에 많은 진보적 규정을 넣게 했다.

두 번째로 1945년 9월 송진우, 조병옥, 이인 등과 같은 보수세력은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에 대항하는 ‘국민대회’ 창설 준비위원회를 결성할 때 강령 제3항에서 ‘보수·진보 두 갈래의 정당을 만들어 민주주의 방식에 의한 정당정치를 실현한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이미 그들은 해방 정국에서 진보 진영을 국정 파트너로 인정한 것이다.

세 번째로 대한민국의 헌법이 제정될 때 민주혁신당을 만든 서상일, 진보당을 만든 조봉암 등 진보주의자들이 참여한 점을 들 수 있다. 특히 조봉암은 초대 농림부장관으로 임명되어 토지개혁의 밑그림을 그려 넣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1948년 12월 최초의 좌파 정당인 조소앙의 사회당이 창당될 때 이승만 대통령은 직접 창당식에 참석하고 “공산당과 싸우는 나라에서는 사회당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우익 정당 일색인 마당에 사회당이 생긴다니 반갑다”고 축하하기도 했다. 이렇게 보면 우리 현대사에서도 보수와 진보의 상생 역사를 읽을 수 있다.

오스트리아의 이념 대립 극복 사례 참고해야

우리 못지않게 보수와 진보의 이념 대립이 날카로웠으나 이를 잘 극복한 오스트리아 사례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스트리아는 제1차대전 직후 1918-1920년의 대연정 시대가 막을 내린 뒤 사민주의와 가톨릭보수주의 진영 간의 정치적 갈등이 점차 심화되었다. 1934년 2월에는 마침내 ‘검은 진영’과 ‘붉은 진영’ 간의 시민전쟁까지 발발하였다. 오스트리아는 이어 좌우 두 진영 간의 극단적 대립의 후유증으로 1938년 3월에는 나치 독일제국에 합병되고 말았다.

오스트리아는 나치에 협력한 대가로 1945년 제2차대전 종전후 연합국 4개국의 점령통치에 직면했다. 이런 상황에서 집권 세력인 국민당-사회당 좌우 대연정은 나라의 영원한 분열을 막고 주권을 완전히 회복하기 위해 손을 잡고 최대한 협력했다. 이 당시 좌우 양 진영은 1930년대에 있었던 치욕스러운 좌우 시민전쟁을 뼈저리게 반성했다. 이들은 연합국들을 상대로 한 10년에 걸친 끈질긴 설득과 협상, 그리고 ‘중립화’라는 절묘한 방식을 통해 1955년 마침내 주권을 회복했다. 그런 의미에서 오스트리아 제2공화국의 처음 10년 동안의 역사는 주요 정치세력 간의 타협과 협력, 화합과 상생의 역사였다. 좌우 양 진영은 국난 극복과 나라의 장래를 위해 자신들의 이념적 지향을 넘어섰던 것이다.

진보는 자유민주주의 틀 안에서 보수와 경쟁 관계 모색해야

이념 대립 극복에 이어 우리 국민들이 진보의 혁신을 위해 바라는 것은 ‘도덕성과 청렴성을 가져야 한다’(23.8%), ‘이른바 종북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합리적 사고를 가져야 한다’( 22.8%), ‘애국심을 더 가져야 한다’(8.9%) 등이었다. 이 가운데 ‘종북 논란’과 ‘애국심’에 대한 기대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종북 논란을 벗어날 때 대한민국에 대한 애국심이 더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응답이 시사하는 바는 한국의 진보가 대한민국의 발전을 지향하는 진보라야 한다는 것이다. 더 이상 진보의 가면을 쓴 채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대한민국의 헌법적 기본질서와 가치를 거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혁신된 진보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라는 가치를 인정하고 그 틀 안에서 보수와 경쟁적 공존관계를 모색해야 한다.

보수는 기득권 지키려는 수구 논리에 빠지지 말아야

우리 국민들이 보수의 혁신을 위해 바라는 것은 ‘도덕성과 청렴성을 갖춰야 한다’(27.4%),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마음을 갖고 민주화 세력의 기여를 인정해야 한다’(27.2%) 등이었다. 왜 이런 응답이 많은 부분을 차지했을까? 그 이유는 한국의 보수 세력이 지켜야 할 가치를 분명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보수는 1948년 대한민국 성립 이후 표면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였으나 북한 공산주의와의 끊임없는 대립으로 인해 자유민주주의를 반공으로 등치하고 말았다. 그들은 반공을 빙자하여 때로는 기득권을 수호하려는 수구·반동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보수는 지켜야 할 가치를 지키되 급진적이 아닌 점진적인 방식으로 끊임없이 개혁을 모색하는 것이라는 본래의 의미를 망각했던 것이다. 혁신된 보수는 과거와 같은 냉전 논리에 편승하여 기득권만 지키려는 수구의 논리에 빠지지 않도록 특별히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이철순 교수 프로필

서울대 정치학과, 서울대 정치학박사-부산대 정치외교학과 교수(현), 정치외교사학회 부회장(현), 21세기정치학회 이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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