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위기 리포트]
철강, 조선, 석유화학 등 이미 한계에 이르러

국민소득 5만달러 이상 시대 견뎌낼 상품 개발해야

과시상품, 첨단제품, 정밀기계·화학 등이 대안

최용식 21세기경제학연구소장.
[최용식 소장 칼럼] 서유럽이나 미국 등 선진국들을 여행하다보면 형편없이 쇠락한 대도시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과거에 오랜 세월 경제적 번영을 누렸다는 사실이 전혀 믿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특히 철강업이나 조선업으로 번영을 누렸던 곳들은 거의 모두 폐허나 다름없이 변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철강업이나 조선업 등의 장치산업은 국민소득이 증가하는 만큼 부가가치 창출을 지속적으로 향상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의 소득 수준 기준으로 보면 철강업이나 조선업 등은 국민소득 3만5천 달러를 견뎌내기 어렵다. 그 이유는 또 무엇일까? 경제적으로나 기술적으로 뒤처진 개발도상국들도 자본축적만 충분히 이뤄내면 이런 산업들로 얼마든지 진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소득 3만5천 달러를 견뎌내기 어려운 장치산업에는 철강업과 조선업만 있는 것이 아니다. 대규모 정제시설이 필요한 석유제품과 석유화학제품 등도 마찬가지이다. 장치산업이 지난해 우리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석유제품은 9.4%, 석유화학 제품 8.6%, 선박 6.5%, 철강제품 6.0% 등이다. 장치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30%를 넘는 셈이다. 이렇게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는 산업이 길어야 향후 5년이면 한계에 부닥치게 된다. 아니, 중국을 포함한 후발 개도국들의 도전에 직면하여 쇠락해갈 것이 빤하다. 이런 일은 다른 분야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일어났다. 의류산업 등의 노동집약적인 산업은 대부분 이미 오래 전에 경쟁력을 잃었고, 백색가전 등 단순 조립산업 등도 중국을 비롯한 개도국들의 경쟁력에 뒤처지고 있다.

이미 한계에 이른 수출 주력상품들...철강, 조선, 석유화학

장치산업이나 노동집약적 산업들만 그런 한계에 봉착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3%에 이르는 반도체, 4.4%인 액정화면, 3.1%인 무선통신기 등도 머지않아 한계에 봉착할 것이다. 이런 제품들도 기술혁신과 제품의 업그레이드와 생산비 감축 등이 이제는 과거처럼 획기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기술혁신과 제품 업그레이드와 생산비 감축이 정체에 빠져들면 중국 등 후발 개도국들의 도전은 더욱 거세질 것이고, 결국 우리나라 수출은 한계에 부닥칠 것이다.

이런 일들이 장차 벌어지면 우리 경제는 어떤 상황에 처할까? 만약 국민소득 4만 달러나 5만 달러를 견뎌낼 새로운 산업들을 성장시키지 못하면 경제성장은 당연히 정체될 것이고, 경기부진은 지금보다 더 심각해질 것이다. 아니, 심각한 파국적 위기에 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석유와 식량 등의 주요 자원과 원자재 등을 거의 모두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지난해에 석유와 식량, 공업용 원료 등의 원자재를 3,131억 달러어치 수입했다. 석유만 약 1천억 달러를 수입했다. 그밖에 자본재 수입도 1,442억 달러에 달하는 등 총 수입액은 5,156억 달러에 이른다. 한마디로, 이렇게 수입한 금액만큼은 수출해야 우리 경제가 돌아가고, 국민들의 경제생활도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10년 후에 우리 수출이 한계에 부딪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나라 경제는 파국을 면치 못하고 국민들의 경제생활 역시 파탄을 면치 못할 것이 빤하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국내 경제가 벌써 12년째 경기부진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내경기가 이런 장기부진의 늪에서 하루빨리 헤어나지 못한다면, 제아무리 뛰어난 경쟁력과 성장력을 자랑하는 세계적인 기업일지라도 경영수지는 점점 더 악화될 것이고, 머지않아 세계 전자업계를 호령했던 일본의 소니나 자동차 시장을 선도했던 닛산 등과 같은 신세가 되고 말 것이다. 그 이유는 또 무엇일까? 내수의 비중이 수출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경기부진의 늪에서 탈출하지 못하면 기다리는 것은 파국

흔히 우리나라 수출은 GDP(국내총생산)의 50%에 육박한다고들 말하지만, 이것은 틀렸다. 수출은 거래액을 뜻하고 GDP는 부가가치를 뜻하기 때문이다. 이 둘을 비교할 때는 그 기준을 일치시켜 줘야 한다. 그럼 부가가치를 기준으로 따져 보자. 2010년 경제총조사에 따르면 매출 총액은 4,332조 원이고 부가가치 총액은 1,173조 원이므로 부가가치가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약 27%이다. (1,173조/4,332조=27.1%). 이 비율로 환산하면 수출의 부가가치는 1,483억 달러이고(5,482억 X 27.1%=1,483억)이고 GDP는 1조1,295억 달러이므로, 수출 비중은 13%에 불과하다(1,483/11,295=13.2%). 반면에 내수는 무려 87%에 달하는 셈이다. 따라서 내수가 부진해지면 아무리 수출 경쟁력이 뛰어난 기업일지라도 경영수지는 악화될 수밖에 없고, 결국은 일본의 소니나 닛산 등 세계적인 기업들이 그랬던 것처럼 도산 위기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 우리 경제의 활로는 없을까? 물론 있다. 그게 과연 무엇일까? 우선, 경제를 살려내는 일이 급선무이다. 이 문제는 오늘의 주제와는 거리가 멀고 다소 복잡한 논의가 필요하므로 여기에서는 생략한다. 다음으로, 국민소득 5만 달러나 7만 달러를 견뎌낼 산업들을 지금부터 적극적으로 육성하면 경제적 번영을 지속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선진국의 선두 대열로 올라설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상품에는 무엇이 있을까?

국민소득 5만, 7만 달러 시대를 견뎌낼 상품을 개발해야

첫째는, 과시상품이다. 시장에서 일반적인 핸드백은 수만 원에 팔리지만, 유명상표를 부착한 소위 ‘명품’은 수백만 원, 수천만 원에 팔리기도 한다. 운동화도 무명 상표는 2~3만 원에 팔리지만 유명 상표는 20~30만 원에 거래된다. 옷이나 자동차나 시계나 만년필 등을 비롯해 과시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상품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상표력을 키우면 이미 경쟁력을 잃은 것처럼 여겨지는 상품들도 얼마든지 국민소득 5만 달러나 7만 달러도 견뎌낼 수 있는 셈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가능할까? 이 문제도 논의가 다소 복잡하고 길어질 것이므로 다음 기회에 다시 살펴볼 것이다.

둘째는, 첨단 과학기술이 뒷받침하는 상품이다. 이런 상품들은 기술발전이 빨라서 제품의 업그레이드가 빨리 이뤄지고, 생산비 감축도 조속히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업그레이드와 생산비 감축의 속도를 후발 개도국들이나 다른 경쟁기업들보다 더 빠르게 유지한다면, 이런 상품은 국민소득 5만 달러는 물론이고 10만 달러도 견뎌낼 수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이런 산업들이 성장할 수 있을까? 혹시 ‘창조경제’를 추진하면 이게 이뤄질까? 아니다. 세계적으로 과학기술이 먼저 발달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경제가 상대적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경우에 첨단 과학기술도 발전했던 것이 역사적 경험이다. 경기가 부진할 때는 어떤 첨단 과학기술에 투자하더라도 부도를 면하기 어렵다. 간단히 말해 경제를 먼저 살려내야 첨단 과학기술도 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

셋째는, 정밀기계와 정밀화학 그리고 부품소재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런 제품은 고도의 과학기술과 장기 간의 기술단련이 필요한 것들이므로 좀처럼 후발 개도국들의 도전과 경쟁을 용납하지 않는 특성을 지녔다. 현실적으로 우리나라는 일본과의 무역에서 만성적인 적자를 기록해 왔고 그 규모도 연간 2백~3백억 달러에 이르는데, 그 대부분이 이런 제품들의 수입에서 비롯됐다. 이런 제품들은 국민소득 5만 달러는 물론이고 7만 달러나 10만 달러도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지금 우리 경제는 지속적인 번영이냐 아니면 쇠락이냐의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그리고 지속적인 경제 번영의 길도 분명히 열려 있다. 하지만 이 문제에 관해서는 정책 당국과 정치권은 물론이고 경제전문가들도 그 중대성에 비해 그다지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이것이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정부의 경기부양 정책은 곧 한계 드러낼 것

정부는 오로지 재정지출의 확대나 기업이익의 가계소득 전환 등 아주 쉬운 정책수단만 추진하고 있을 따름이다. 만약 이런 쉬운 방법으로 경제를 살려낼 수 있다면 이 세상 어디에도 경제난을 겪을 나라는 없다. 현실적으로 수요 부문의 확대를 통해 경제를 살려내려던 정책은 수확체감의 법칙을 작동시킴으로써 금방 한계를 드러내곤 했던 것이 세계 경제사의 경험이다. 세상에서 소중한 것은 모두 피와 땀을 흘려야 비로소 얻어질 수 있는 것처럼, 경제를 살려내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경제적 번영을 누렸던 나라들의 경제사나 기업들의 역사를 치열하게 연구해야 비로소 경제를 살려내는 길도 열릴 것이다.

결론적으로 경제가 살아나야 과시 상품이든 첨단 제품이든 정밀기계나 정밀화학이든 부품소재이든 비로소 투자가 이뤄질 수 있으며, 경제를 살려내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과 국민이 피와 땀을 흘릴 정책을 펼쳐야 한다. 그런 정책이 어떤 것인가는 지면 관계상 다른 기회에 살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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