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인사이드]
외국에선 '부자 증세' 논의하는데, 서민 부담은 부적절
가격 규제로 인한 금연 효과는 일시적

인센티브 통해 자발적 금연 유도해야

조하현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조하현 교수 칼럼] 정부는 내년 1월 1일부터 담뱃값을 2,000원 올리고, 그 이후에도 물가상승율만큼 담배가격을 자동적으로 인상하는 물가연동제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현재 판매 비중이 가장 높은 담배가격이 2,500원임을 감안하면 내년부터 담뱃값은 당장 4,500원으로 80%나 급등하고, 그 이후에도 계속 상승하게 될 전망이다.

정부는 이러한 가격 인상을 통해 현재 성인 남성 흡연율 44%를 2020년까지 29%로 끌어내리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로 인해 연간 2조 8천억원의 세수를 증대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방침에는 짚고 넘어가야 할 몇 가지 문제점들이 있다.

첫째, 정부는 세수 증대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이는 명백한 역진세이며, 사실상의 '우회 증세'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담배는 대표적인 서민들의 기호식품이다. 담배는 값비싼 레저를 즐길 물질적, 시간적 여력이 없는 서민들이 고된 하루 속에서 잠깐의 피로를 푸는 수단이다. 따라서 담배 세금을 높이는 것은 서민들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나라의 곳간을 채우는 것을 의미한다.

세수를 확보하기 위해서 서민들에게 추가 부담을 지게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해외에서는 극심한 빈부격차가 자본주의를 자멸하게 한다며 '부자 증세'가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이와 역행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주민세부터 자동차세까지 줄줄이 충분한 논의 과정 없이 인상하고 있어서 이번 담뱃값 인상이 결국 우회 증세가 아니냐는 논란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둘째, 과세 대상도 적절치 않지만 그 인상의 정도가 과하다. 세금 상승폭인 2000원은 현재 담배가격의 80%나 되는 수치이다. 또한 담배가격은 소비자물가지수(CPI)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80개 품목 중에서 상위 20위에 이를 정도로 매우 크다. 상당한 가중치로 CPI 산정에 포함되기 때문에 그만큼 담배가격 인상은 물가 상승을 부추긴다.

현재 정책대로라면 담뱃세 인상이 소비자물가 지수를 약 0.62%포인트 상승시킬 것이다. 이에따라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기존 2.0%에서 2.5% 수준으로 상향 조정될 것이라고 전망한 보고서도 발표됐다. 앞으로 담뱃세를 물가상승율에 연동하여 매년 인상하겠다는 현 정부안대로라면 담배가격에 물가상승분이 또 반영되므로, 물가상승이 담배가격을 올리고 또 다시 물가가 높아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될 수 있다.

셋째, 세금 부과 절차와 과정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관련법 개정(안)의 입법 기간이 너무 짧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개정안은 이달 초 보건복지부 장관이 담뱃값을 인상하겠다고 발표한 뒤 겨우 9일 만에 마련됐다. 또한 정부는 지난 12일 국민건강증진법·개별소비세법 개정 관련 입법예고를 하면서 의견 제시 기간을 15일까지로 제한하였다. 공휴일을 제외하면 실제로 국민들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기간은 단 2일에 불과했다.

통상 입법예고는 국민의 일상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법을 제정·개정할 때 내용을 미리 알리고 국민의 의견을 듣는 제도로 현행법상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그 기간이 40일로 규정되어 있다. 이번 담뱃세 인상은 지난 2004년 12월 30일 이후 10년 만의 인상인데다가 국민적 관심이 높은 이슈라는 점, 특히 서민의 생활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음을 고려한다면 이번 개정 과정은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가격 상승이 특히 서민들의 흡연율을 감소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러한 효과성에 대해서는 논란이 아직 있고, 효과가 있더라 하더라도 일시적이다.

복지부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소득 하위 1분위 성인 남성 흡연율은 1998년 69.1%에서 2004년 담뱃값 인상 이후 2011년 53.9%로 15.2%포인트 감소했다. 그러나 부유층인 4분위 흡연율은 같은 기간 63.4%에서 44.1%로 19.3%포인트 하락했다. 가격인상 후 흡연율 하락폭은 서민층보다 부유층이 높다는 것이다. 같은 기간 1분위 여성의 경우 흡연율은 오히려 상승하여 담배가격과 소득별 흡연율 변화 사이의 연관성은 높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또 가격 규제로 인한 금연 효과는 일시적인 효과에 불과할 수 있다. 담배의 니코틴은 의존성이 있어 단순 의지로 금연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으며, 심리적인 치료도 병행돼야 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따라서 정부의 담뱃값 인상의 주목적이 흡연율을 낮춰 국민건강을 증진시키는 것이라면 서민들의 금연을 위한 심리적, 의학적 상담을 장려하는 정책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담배가격 인상으로 인한 금연율 상승의 효과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금연을 위해 정부가 징벌적인 수단을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가격 규제가 아닌 비가격적인 방법을 통해 반강제적인 수단보다는 인센티브를 통해 자발적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지속적인 금연 캠페인, 금연 보너스 지급, 혹은 금연 성공자에 대한 예금금리 우대 혜택 등 다양한 방법들이 있다.

담뱃값의 70%정도를 조세 수입으로 가져가는 정부가 금연을 유도하기 위해 담뱃세를 높이겠다고 하는 모습은 국민들이 정부의 진의를 의심하게 할 만한 여지가 있다. 강제가 아닌 자발적으로 국민의 금연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제반 정책들이 시행되기를 희망한다.

■조하현 교수 프로필

연세대 경제학과, 연세대 대학원 경제학과(석사)- 미국 시카고대학교 경제학박사- 연세대 상경대학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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