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강화론은 관념론 " "치열하게 경제 살려내라는 것이 민심"

최용식 21세기경제학연구소장
※ 데일리한국은 야권의 진로와 관련, '중도 선점론'을 주장하는 최용식 21세기경제학연구소장의 글(클릭) '정체성 강화론'을 펴는 이호윤 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 사무총장의 글(클릭)을 순차적으로 게재했습니다. 이어 최 소장은 이 총장의 글을 읽은 뒤 이를 재반박하는 글을 보내 왔습니다. 이에따라 최 소장의 재반박 칼럼을 게재합니다. 데일리한국은 우리 사회의 토론 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해 야권 진로 문제에 대한 여러분의 참여를 기대합니다. 여러분들의 원고 중에 의미있는 글을 선택해 게재하려고 합니다. (전화 02-6388-8004, 8030)

"집토끼를 먼저 결집한 뒤에 산토끼 잡기에 나서야 한다" "확고한 지지층을 많이 확보할수록 부동층을 많이 흡수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다. 소위 '진보진영 강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흔히 내세우는 주장이다.

그런데 진짜로 집토끼를 결집하면 산토끼를 잡을 수 있을까? 진짜로 확고한 지지층을 많이 확보할수록 부동층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을까? 혹시 ‘완전’ 집토끼가 ‘반쯤’ 집토끼를 쫓아내는 것은 아닐까? ‘확고한’ 지지층이 ‘확고하지 않은 지지층’을 배척하는 것은 아닐까? 오래 전부터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인구에 회자돼 왔지 않은가. 최근에만 따져도 국내에서 가장 진보적인 민주노동당이 갈가리 찢겨 분열했지 않은가 말이다. 제발 집단 최면에서 벗어나, 다른 얘기를 하는 사람들의 얘기도 귀기울여 보자.

관념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시해야

진보 진영 강화를 내세우는 자들이 주장하듯이 새정치민주연합이 정체성, 진정성, 개혁성, 선명성, 야당성 등을 회복하면 다음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정풍운동을 하거나 기득권을 포기하고 정계은퇴 선언이 줄을 이으면 국민이 감동할까? 이런 것들이 과연 선거 바람을 일으켜 줄까? 노무현 전 대통령(이하 존칭 생략)의 당선이 진짜로 이런 것들 때문이었을까? 이미 지나간 일들을 제멋대로 해석하는 것은 아주 쉽다. 그럴 듯한 소재들을 끌어 모으면 설득력과 호소력을 얼마든지 키울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형 분석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흔히 간과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원인이나 계기 그리고 과정은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풍운동이 불었을 때의 민주당 지지율은 10%를 겨우 넘었다. 2001년 여름까지도 노무현의 국민 지지율은 1% 전후에 불과했고, 그의 민주당 내 후보 서열도 10위권 안팎이었으며 노사모 회원은 3천 명을 넘지 못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뒤부터 비로소 그의 지지율이 오르기 시작했으며, 민주당 내 후보 서열도 2~3위권으로 올라섰다. 왜 그랬을까? 노무현이 ‘이인제는 민주당의 적자가 아니다’라는 비판을 외치기 시작했기 때문은 아닐까? 절대적 1위였던 이인제를 마뜩치 않게 여겼던 민주당 지지자들이 이때부터 노무현을 중심으로 뭉쳤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것으로는 아직 역부족이었다. 민주당 후보로서의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전기가 필요했다. 그게 과연 무엇이었을까? ‘민주당의 정권 재창출은 노무현만 해낼 수 있다’는 의미의 메시지가 호소력을 발휘했기 때문은 아닐까? 이것이 정권 재창출이라는 민주당 지지자의 염원과 부합한 것은 아닐까? 실제로 이 메시지가 나간 뒤부터 노사모 회원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노무현 바람도 불기 시작했다. 이인제를 지지하던 당원까지 돌아서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국민 지지율이 60%를 넘나들던 이회창을 이긴 계기는 또 무엇일까? 노무현이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확정된 뒤에도 국민 지지율은 30%를 겨우 넘었는데, 무엇이 대선을 승리로 이끌었을까? 2002년 어느 봄날 노무현이 ‘행정수도 이전’을 내세운 뒤에 그의 지지율은 무려 65.3%까지 상승했다. 이 때는 한나라당에서 대선을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었다. 진짜로 행정수도 이전이 노무현 지지율을 그렇게 올렸을까? 사실 노무현 대선캠프에서도 “3백만 충청 민심을 얻기 위해 수도권 2,000만 표를 잃는다”며 ‘행정수도 이전’을 모두가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그럼 왜 그의 지지율이 그렇게 올랐을까? 이것은 비밀이다. 그리고 65.3%까지 올라갔던 지지율이 15.8%까지 추락함으로써 정몽준과 후보 단일화에 나서야 했었던 이유도 비밀이다. 이것들은 여전히 파괴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노무현 승리의 핵심 요인은 실용적인 전략에 있었다.

관념적 진보가 아니라 과학적 진보를

마르크스가 가장 경멸하고 경계해마지 않았던 것이 ‘공상적 사회주의’다. 국내 진보도 이제는 공상적 내지는 관념적 사회주의에서 벗어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이제는 과학적 진보로 거듭나야 할 때가 아닐까? ‘내 머리 속에서 생각해낸 것이 최고’라는 생각이라도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이제는 과학적 진보를 지향해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관념이 아니라 현실을 우선시하는 자세로 전환해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민심이 바다라면 정치는 그 바다 속의 물고기다. 바다를 떠난 물고기가 살 수 없듯이 진보든 보수든 민심을 떠나서는 존립할 수 없다. 민심이 어디에 있는가를 먼저 냉철하게 살펴야 진보든 보수든 살아남을 수 있다. 과학적 진보를 지향한다면 가장 먼저 민심을 살펴야 한다. 민심은 천심이다. 민심을 살피지 않고 공허한 주장만 반복해서는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정당의 정체성, 진정성, 개혁성, 선명성 등은 국민의 관심권 밖이다. ‘먹고사는 게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는 민초들에게 이런 것들이 무슨 의미를 갖겠는가? 관념의 세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물론 새정치민주연합이 야당성을 회복하는 일은 시급하다. 하지만 이것도 진보진영 강화를 주장하는 자들이 의미하는 야당성은 아니다. 집권당의 폭주를 견제하고, 집권당의 정책 실패, 특히 경제정책 실패를 가혹하게 비판하는 게 국민의 눈에는 진짜 야당성으로 비친다. 이런 의미에서 진보진영 강화를 내세우는 자들이 득세한 이후의 민주당이나 새정치연합은 야당성을 크게 잃었다. 기자들이나 심지어 여당과 정부 관계자조차 새정치연합의 국회의원 수준이 역대 최악이라고 흔히 말한다.

치열하게 경제를 살려내라는 것이 민심

내가 '동교동'에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은 “정치인은 국민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야 하고, 국민이 바라는 일을 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벌써 12년째 세계 평균보다 낮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경기가 이처럼 부진하면 해고를 당해도 못사는 사람부터 당하고, 사업이 망해도 영세업체부터 망한다. 그러니 민초들의 삶이 얼마나 팍팍하겠는가? 뿐만 아니라 잘 나가는 집안의 자식들은 그런대로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지만, 돈도 빽도 없는 집안의 자식들은 좀처럼 좋은 직장을 얻지 못한다. 뼈 빠지게 돈 벌어서 자식들을 대학에 보내봐야 만년 취업준비생이라는 룸펜을 양산하고, 늙은 부모들은 이 실업자들을 아직 부양해야 한다. 한마디로 경제를 살려내는 일이 못사는 사람들과 영세업체들 그리고 돈도 빽도 없는 집안이 평안해질 수 있는 첩경이다. 이것이 최고의 복지이자 진보이며 민심이다.

새누리당 정권은 경제를 살려낼 가망이 없다. 세상에서 소중한 것들은 모두 피와 땀을 흘려야 얻어질 수 있는데, 현 정권이 추진하는 정책들은 달콤한 것들뿐이다. ‘단군 이래 최대 난리라던 환란’을 일으켰던 정책들이 버젓이 다시 집행되고 있다. 그러니 조만간 중대한 경제파국이 닥칠 게 뻔하다. 제발 새정치연합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경제를 살려낼 정책들을 지금부터 발굴해내야 한다. 세계사에서 경제난을 극복하고 경제를 살려냈던 정책들을 밤을 새워 탐구해야 한다. 정부와 기업과 국민이 피와 땀을 흘려야 할 정책들을 발굴해내야 한다. 그런 정책들을 발굴하는 일은 비교적 오랜 세월 동안 피와 땀을 요구하겠지만 말이다. 쉬운 일만 하지 말고.

혹시 피와 땀을 요구하는 정책들은 국민과 기업과 정부 등이 모두 싫어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다. 먹물들에게는 그렇게 보이겠지만, 민초들은 경제를 살려낼 정책을 귀신 같이 알아본다. 배가 침몰할 때는 바퀴벌레가 가장 먼저 사라지듯이, 지식이 많아질수록 동물적 감각 혹은 육감은 떨어진다. 제발 한번만이라도 민초들과 어울려 “정부와 기업과 국민이 피와 땀을 흘려야 경제를 살려낼 수 있다”고 진심을 다해 얘기해 보라. 먹물들에게는 뜻밖이겠지만 민초들의 반응은 뜨거울 것이다. 만약 그런 정책들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내세우면 국민은 크게 감동할 것이다. 그리고 다가오는 국회의원 총선과 대선에서 모두 압승할 수 있을 것이다.

■최용식 소장 프로필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한전산업 감사- 21세기경제학연구소장(현) 새빛인베스트먼트 리서치센터장(현) *최 소장은 2002년 노무현 대통령후보에게 '행정수도 충청권 이전' 공약을 적극 건의했으며, 참여정부 출범 이후 노 대통령과 면담해 경제정책 조정 필요성을 거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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