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치락뒤치락 '선두 주자'가 없다
선호도 1위 후보 수시로 바뀌어
선두주자 지지율도 20% 못넘어
당권 분점돼 '1인 리더' 어려워
리더십 갖춘 선두그룹 등장 기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박원순 서울시장(왼쪽부터)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그림 형제의 동화 〈백설공주〉를 원작으로 월트디즈니사에서 제작한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하지만 이 말은 4, 5년 전 이명박 정권 때 여의도 정치권에서 많이 흘러 나왔던 것이다. 마라톤 같은 대선 레이스에서 당시 박근혜 의원이 워낙 큰 차이로 선두로 치고나가자 '백설공주'란 얘기가 나왔다. 반면 2위 이하를 달리는 나머지 여야 대선주자 7명은 지지율이 모두 한자릿 수에 그쳤기 때문에 '일곱 난쟁이' 로 격하됐다. 2012년에는 문재인 의원과 안철수 의원 등 난쟁이 군에 속하지 않았던 후보들이 다크호스로 등장해 박근혜 후보와 진검승부를 벌였다. 결국 2012년 대선의 승자는 박근혜 후보였다. '백설공주' 비유가 크게 틀리지 않았던 셈이다.

김광덕 뉴스본부장(상무)
그 이전의 정권에서도 여야의 유력 대선주자는 대체로 한두 명으로 압축됐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줄곧 유력한 대선주자로 거론되다가 대통령이 됐다. 당시 '대안 부재론' '대세론'이란 말이 유행할 정도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야권에서는 단연 선두 주자였다. 당시 신한국당(새누리당 전신)에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영입한 이회창, 박찬종 후보가 선두 다툼을 벌였었다.

김대중 정권에서 대선주자 지지율 1, 2위는 각각 이회창 후보와 이인제 후보였다. 이회창 후보는 김대중 정권 4년 차까지 줄곧 선두를 달렸으나 새천년민주당에서 급부상한 노무현 후보에게 고배를 마셨다. 노무현 정권에서는 선두그룹이 다소 유동적이었지만 처음에는 고건 전 총리가 1위를 달렸고, 나중에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의원 등이 선두 경쟁을 벌였다. 1987년 대선 이후 지난 정권까지 대체로 유력 대선주자군이 형성돼 있었던 셈이다. 다만 당초 유력 대선주자군이 아니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된 게 '이변 아닌 이변'이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 2년 차인 요즘 대선 레이스는 과거와는 판이하다. 확실하게 선두를 달리는 대선주자가 없다. 선두 자리가 수시로 바뀌는데다, 선두 주자의 지지율이 20%를 넘지 못하고 있다. 과거 정권에서는 선두 대선주자의 지지율은 대체로 20%를 넘었다.

주간 단위로 대선주자 선호도를 조사하는 리얼미터가 8월4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주 대선주자 지지율 1위는 박원순 서울시장이었다. 박 시장의 지지율은 16.2%에 그쳤다. 2위와 3위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14.5%)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14.1%)이었다. 6.4 지방선거 이후 박 시장이 1위를 한 적이 많지만, 1위 자리를 몇 차례 문 의원과 김 대표에게 내주곤 했다.

세 사람 다음으로는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10.4%) 정몽준 전 새누리당 의원(9.7%) 김문수 전 경기지사(6.9%) 남경필 경기지사(5.6%) 손학규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3.9%) 안희정 충남지사(3.5%) 순이다.

9명 외에도 각각 여권에서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 홍준표 경남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유정복 인천시장, 이인제 나경원 이완구 의원 등이 대선주자군에 오르내리고 있다. 또 야권에서는 김부겸 전 의원,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 송영길 전 인천시장, 박영선 김영환 의원 등이 거명된다. 20명 가량의 여야 정치인이 직간접적으로 대선 레이스에 참여하고 있는 셈이다.

뚜렷한 강자가 없이 앞서거니뒤서거니 달리는 풍경을 보면서 정치권 관계자들은 '도토리 키재기 경쟁'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를 '군웅할거'에 비유하기도 한다.

과거와 달리 도토리 키재기 경쟁이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 시대에서 당권이 분점되는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란 분석이 있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카리스마를 지닌 3김씨나 선대의 유업을 물려 받은 지도자가 활동하는 시기에는 뚜렷한 대선주자가 부각됐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공천권을 비롯한 당권이 분점돼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의 리더가 정국을 주도하면서 부상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그러면 당권이 분산되고 당내 민주주의가 정착되면 '큰바위얼굴'과 같은 뚜렷한 지도자가 나오기 어려운 것일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 토니 블레어 전 총리 등 큰 정치인들이 적지 않게 나왔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5년 단임 대통령제 국가여서 지도자를 키울 수 있는 시간과 계기가 충분치 않다는 지적은 있다. 또 대선을 3년 이상 앞둔 시점이어서 한두 사람의 주자로 힘이 쏠리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리더십을 보여준 지도자가 없다는 사실이다. "저 인물은 우리가 기댈 언덕"이라는 느낌을 주는 큰어른같은 정치인들이 나와야 한다. 국민들 가슴에 다가가면서 비전을 제시하고, 위기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는 지도자를 기대하고 있다. 국민들은 영화 '명량'에 나오는 이순신같은 듬직한 리더를 기다리고 있다. '왕자' '공주' 소리를 듣는 한이 있더라도 그런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가 나오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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