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용 산업부 차장
안병용 산업부 차장

[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 막바지인 지난 28일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기업 경영자들에게 과도한 임금 인상을 자제해 달라고 한 모습을 보고 쓴웃음이 났다. 노사 협의에는 대통령도 경제부총리도 개입할 자격이 없고, 최저임금 결정의 변수로 떠올라선 안 된다.

물론 임금 인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일자리 양극화와 사회 갈등은 사회악이다. 이를 우려한 추 부총리의 고뇌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하지만 임금 인상을 주장하는 측을 정부가 공개 재판하는 듯한 모습을 연출해선 정책의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호소가 울림을 지니려면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때론 집단지성도 필요하다. 노동계와 경영계를 초월해 지혜를 구해야 한다.

임금 인상에 찬성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임금은 이해관계에 따라 무한정 올릴 수도, 내릴 수도 없다. 다만 결정은 최저임금위원회가 할 일이다. 민주적 절차를 거쳐야 독선적 행정이란 지적이 나오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에서 앞으로 3년은 더 최저임금 결정 과정이 이뤄질 텐데, 더 큰 수위의 개입이 이뤄지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허니문 기간인 새 정부가 경제 활동이 가장 활발한 3040세대로부터 일방의 입장에 치우쳐 있다는 지적을 받아선 곤란하다. 공정과 상식을 국정 핵심과제로 내세운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을 식언(食言)으로 끝내지 않으려면 정도(正道)를 걸어야 한다. 무엇보다 추 부총리 스스로 인수위 시절부터 경제를 민간의 자율에 맡기겠다고 강조하지 않았던가. 관치경제는 인수위가 발표한 110개 국정과제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지난 29일 밤 최저임금위는 내년도 최저임금을 시간당 9620원으로 결정했다.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5.1%)에 다소 못 미쳤다. 추 부총리의 자제 의견(?)에 따라 최저임금이 최소한으로 오른 것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앞서 정부가 올해 물가 상승률을 6%대로 예상한 만큼, 월급쟁이들의 실질 임금이 사실상 마이너스되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은 누구나 알게 됐다.

최저임금 결정 이후 윤석열 정부가 종부세 폐지와 법인세 인하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이란 얘기가 재계에서 나온다. 윤 대통령의 핵심 경제 정책들이지만, 이번에도 노동자의 소득을 보전할 수 있는 소득세 인하가 이뤄질 것이란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공공요금까지 오르는 고물가 국면에 노동자의 가처분 소득을 보전할 사회적 안전장치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 보여준 것처럼 한쪽에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은 공정하지 않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효율적이지 않다. 야당 시절,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그토록 질타했던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나. 국회에서 자문자답했던 대로 정책 실패의 책임은 오롯이 정부가 져야 한다. 무늬만 공복(公僕)이어선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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