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아의 마지막 제자’ 정정호 명예교수 출간
한용운·김소월·윤동주 등의 ‘영시 번역’ 눈길

금아 피천득 선생 15주기를 맞아 최근 ‘피천득 문학 전집’ 전7권이 출간됐다. Ⓒ범우사
금아 피천득 선생 15주기를 맞아 최근 ‘피천득 문학 전집’ 전7권이 출간됐다. Ⓒ범우사

[데일리한국 민병무 기자]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신록을 바라보면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참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 사람은 인연인 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

“수필은 청자연적이다. 수필은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 수필은 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속으로 난 평탄하고 고요한 길이다.”

금아 피천득(1910~2007)의 ‘오월’ ‘인연’ ‘수필’은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그의 대표작이다. 그를 상징하는 이 대표작뿐만 아니라 한용운·김소월·윤동주 등의 시를 영어로 번역한 시, 광복 직후부터 대학생 영어교재로 널리 사용했던 ‘셰익스피어 이야기들’의 번역집 등 금아의 새로 발굴된 작품을 모두 모은 ‘피천득 문학 전집’(범우사)이 출간됐다.

올해는 영문학 교수로 지내며 시인, 수필가, 산문가, 번역가로 활동한 피천득 선생이 태어난 지 112년, 타계한 지 15년이 되는 해다. 지금까지 출간된 그의 작품집은 번역까지 포함해 선별돼 나온 4권뿐이다. 이 작품집은 일반 대중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왔으나 연구자들에게는 아쉬움이 많았다. 신문과 잡지에서 새로이 발굴된 초기 미수록 작품 다수가 수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천득의 마지막 제자인 정정호 중앙대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74)가 ‘피천득 문학 전집’을 펴냈다. 모두 7권으로 이뤄진 전집에는 시, 수필뿐만 아니라 산문과 번역문학이 모두 망라돼 있다.

젊은시절과 노년시절의 금아 피천득 선생. ⓒ시와진실
젊은시절과 노년시절의 금아 피천득 선생. ⓒ시와진실

제1권은 시 모음집이다. 1926년 첫 시조 ‘가을비’와 1930년 4월 7일 동아일보에 실린 첫 시 ‘찾음’을 필두로 초기 시를 다수 포함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와 있는 시집들과 다르게 모든 시를 가능한 발표연대 순으로 배열했다. 창작시기와 주제를 감안하여 시집의 구성을 193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 총 8부로 나누어 묶었다.

제2권은 수필 모음집이다. 기존의 수필집과 달리 이번 수필집 역시 앞의 시집처럼 연대와 주제를 고려해 크게 3부로 나누었다. 이 수필집에는 지금까지 미수록된 수필을 발굴해 실었다. 피천득은 흔히 수필을 시보다 훨씬 나중에 쓴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 그는 초기부터 수필과 시를 거의 동시에 창작했다. 피천득은 엄격한 장르 개념을 넘어 시와 수필을 같은 서정문학으로 보았다. 예를 들어 어떤 수필은 행 갈이를 하면 한 편의 시가 되고, 어느 시는 행을 연결하면 아주 짧은 수필이 된다. 피천득 수필문학의 정수는 한 마디로 ‘서정성’이다.

제3권은 넓은 의미의 산문 모음집이다. 이 산문집에는 수필 장르로 분류되기 어려운 글과 동화, 서평, 발문, 추천사 그리고 상당수의 평설과 긴 학술논문도 일부 발췌해 실었다. 여기서도 모든 산문 작품을 일단 장르별로 분류한 다음 발표 연대순으로 실어 일반 독자나 연구자들이 일목요연하게 피천득의 산문 세계를 볼 수 있게 했다.

제4권은 외국시 한역시집인 동시에 한국시 영역시집이다. 피천득은 영미시뿐 아니라 중국 고전시, 인도와 일본 현대시도 일부 번역했다. 특히 이 번역집에는 기존의 번역시집과 달리 피천득의 한국시 영역이 포함됐다. 피천득은 1950, 60년대에 자작시 영역뿐 아니라 정철·황진이의 고전 시조, 한용운·김소월·윤동주·서정주·박목월·김남조 등의 시도 영역해 한국문학 세계화의 역할을 담당했다. 이 부분은 문단과 학계에 거의 처음으로 공개되는 셈이다. 한역이건 영역이건 피천득의 번역 작업은 한국현대문학 번역사에서 하나의 전범이자 시금석이 되고 있다.

제5권은 셰익스피어 소네트 번역집이다. 피천득은 1954~55년 1년간 하버드대 교환교수 시절부터 60년대 초까지 셰익스피어 소네트 154편 전편 번역에 매진했다. 그 결과 그의 소네트 번역집은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이 되는 1964년 출간된 셰익스피어 전집(정음사) 4권에 수록됐고, 훗날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역자 피천득이 직접 쓴 셰익스피어론, 소네트론, 그리고 소네트와 우리 전통 정형시 시조를 비교하는 글까지 모두 실었다. 이 번역시집은 일생 셰익스피어를 사랑하고 존경했던 영시 전공자 피천득의 능력이 충분히 발휘된 노작이며 걸작이다.

제6권은 외국 단편소설 6편의 번역집이다. 단편소설 번역은 해방 전후 주로 어린이들과 청소년을 위한 것으로 피천득은 일제강점 초기부터 특히 어린이 교육에 관심이 높았다. 이 6편 중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과 ‘큰 바위 얼굴’은 개역돼 국정 국어 교과서에 실렸다.

제7권은 19세기 초 수필가 찰스 램과 메리 램이 어린이들을 위해 쓴 ‘셰익스피어 이야기들’의 번역집이다. 램 남매는 셰익스피어의 극 38편 중 사극을 제외하고 20편만 골라 이야기 형식으로 축약, 각색, 개작해 ‘Tales from Shakespeare’(1807)를 펴냈다. 피천득은 1945년 광복 직후 경성대 예과 영문학과 교수로 부임한 뒤 어렵지 않은 이 책을 영어교재로 선택했다. 이 책으로 가르치면서 틈틈이 번역해 1957년 단행본으로 출간했는데, 기이하게도 이 번역본을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그동안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번역문학자 피천득의 위상을 이 번역본이 다시 밝혀주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번역본의 작품배열 순서가 원서와 약간 다르나 역자 피천득의 의도를 존중해 그대로 두었다. 또한 번역문은 현대어법에 맞게 일부 수정했다.

한편 이번 ‘피천득 문학 전집’ 발간을 축하하는 행사가 오는 5월 26일(목)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정독도서관 3층 시청각실에서 열린다.

1부에서는 금아피천득선생기념사업회 김진모 사무총장의 사회로 ‘피천득 문학 전집’ 출판기념회 및 봉정식이 개최된다. 그리고 2부에서는 서숙 수필가의 사회로 ‘금아 피천득 선생 서거 15주기 문학세미나’가 열린다. 세미나에서는 송명희 부경대 명예교수가 ‘피천득 수필의 여성 원형 그리고 내면아이 치유’, 정정호 중앙대 명예교수가 ‘피천득과 번역’을 주제로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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