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희 변호사(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객원교수)
[데일리한국 전문가 칼럼=장서희 변호사] 1999년 영화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에서는 007로 유명한 피어스 브로스넌이 그림 도둑으로 등장한다.

도둑 이야기가 분명한데도 이 영화는 범죄영화로 분류하기에 어쩐지 곤란함이 느껴진다. 범죄라는 장치를 빌렸을 뿐 영화는 내내 예술과 사랑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주인공이 미술관이 아니라 은행을 터는 원작(1968년)과 리메이크의 가장 큰 차이일 것이다.

기업 인수합병(M&A) 전문가인 토마스 크라운은 대단한 거부이자 미술 애호가다. 남보기에 부족함 없어 보이지만, 정작 이 부호는 권태로움을 달래기 위해 명화를 훔칠 계획을 꾸민다. 토마스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모네의 그림을 훔치는 데 가뿐히 성공한다.

도난 사고로 보험금을 지급할 처지에 놓인 보험회사는 보험조사관 캐서린 베닝(르네 루소)에게 이 사건을 맡긴다. 전통적으로 미국 범죄영화에서는 보험조사관이 사건을 수사하는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일이 흔하다. 1940년대를 풍미한 필름 누아르의 주인공이 주로 탐정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중 상당수는 보험조사관이다. 이들 주인공은 조사 과정에서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팜므파탈에 빠져 파멸하곤 한다. 여성인 보험조사관이 매력적인 남자 범죄자를 조사하다가 그의 매력에 빠지고 만다는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의 설정은 이 같은 고전 필름 누아르의 흥미로운 변주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영화 속 토마스가 미술관에서 그림을 훔쳐낸 행위가 분명한 범죄라는 사실에 아무런 의문도 품지 않는다. 미술품은 물리적 실체가 있어서 그 자체로 거래대상이 되는 측면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유형의 필름도, DVD도 아닌, 디지털 형태로 된 영화의 경우는 어떠할까?

지난해 11월 일본에서 패스트 영화를 제작한 유튜브들에게 유죄가 선고된 사실이 보도됐다. 패스트 영화란, 장편 영화를 10분 내외로 요약한 동영상을 가리키는 일본식 용어다. 공소 사실은 피고인들이 영화 5편을 무단 편집하고 줄거리를 설명하는 내레이션을 넣은 동영상을 유튜브에 공개했다는 것인데, 이들은 그 전부터 상습적으로 패스트 영화를 만들어 상당한 광고 수입을 얻어 왔다고 한다. 법원은 이들의 행위가 영화의 수익 구조를 파괴하는 것으로 강한 비난을 받을 만하다면서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는 이례적으로 징역형을 선고했다.

이처럼 무단으로 타인의 저작물을 편집하여 게시한 행위는 저작재산권 중 2차적 저작물 작성권 침해에 해당될 가능성이 높다. 만약 편집된 동영상이 창작성이 없는 복제물에 불과할 경우라면 복제권, 전송권이나 저작인격권인 동일성유지권 침해를 검토해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영화 소개라는 명목 하에 다양한 편집 동영상이 유튜브에서 유통되고 있다. 저작권법은 공표된 저작물은 보도·비평·교육·연구 등을 위하여는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이를 인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제28조). 많은 유튜버들이 이 조항에 기대어 편집 동영상은 비평 목적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저작권자의 권리를 제한하는 이 규정은 여러 기준을 통해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먼저 편집 동영상의 비평적 가치가 인정되어야 하며, 무엇보다 원작의 시장수요를 대체하지 않는지 살펴야 할 것이다. 결말까지 다 알려주는 편집 동영상이 원작의 수요를 잠식할 수도 있으리라는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우리와 가장 유사한 저작권법 체계를 갖고 있는 일본에서 패스트 영화에 대한 유죄 판결이 나왔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유형적 실체를 가진 그 무엇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창작물을 무단으로 이용하는 행위 역시 절도나 다름없는 범죄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 장서희 변호사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를 졸업한 뒤 중앙대 영화학과에서 학사와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법률사무소 이헌의 대표 변호사다. 영화를 전공한 법률가로, 저서로는 '필름 느와르 리더'와 '할리우드 독점전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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