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블레이크. 사진=연합뉴스
[데일리한국 강영임 기자] 냉전 시대에 서방에 수차례 충격을 안긴 전설적 이중간첩 조지 블레이크가 향년 98세로 사망했다. 한국전쟁을 현장에서 겪고 북한군에 포로로 끌려다니다가 공산주의자로 전향하는 등 한반도의 비극과도 미묘한 인연이 있는 인물이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 해외정보기관인 대외정보국(SVR) 대변인은 러시아 타스 통신을 통해 블레이크가 26일(현지시간) 사망했다고 밝혔다.

블레이크는 영국 대외정보기관인 MI6에 몸담고 실제로는 소비에트연방(소련) 공작원으로 활동한 인물이다.

로이터 통신 등 외신을 종합하면 그는 1950년대 동유럽에서 활동하던 서유럽 첩보원 400여명의 신원을 소련에 넘겼다. 그 때문에 서방 첩보원 다수가 반역죄로 처형을 당했고 서방의 정보수집 활동은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블레이크는 같은 시기 동베를린으로 통하는 지하터널에 영국과 미국이 군사용 도청 장치를 설치한다는 기밀을 빼돌리기도 했다. 소련은 그 덕분에 그 도청 장치를 미국과 영국에 역정보를 흘려보내는 도구로 1년 넘게 활용할 수 있었다.

블레이크는 1961년 결국 소련 간첩이라는 점이 발각돼 42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그러나 그는 1966년 동료 죄수들의 도움으로 탈옥해 평화운동가들의 지원을 받아 철의 장막을 뚫고 동베를린을 거쳐 소련에 도착했다. 첩보영화 007로 대변되는 스파이대국 영국이 블레이크에게 또 농락당한 사건이었다.

블레이크는 국가적 영웅 대접을 받으며 소련에 이어 러시아에서 평화롭게 여생을 보냈다. 그는 그레고리 이바노비치라는 러시아 이름을 갖고 옛 국가보안위원회(KGB) 중령 출신으로 연금을 수령해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냉전시대 공로를 높이 평가해 2007년 블레이크에게 훈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세르게이 이바노프 SVR 대변인은 이날 블레이크의 사망 사실을 알리면서 "그는 진정으로 우리나라를 사랑했다"고 말했다.

블레이크가 소련을 위해 이중간첩 생활을 한 데는 한반도에서 겪은 풍파가 한몫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는 1948년 주한 영국 대사관의 부영사 직함을 갖고 서울에 와 북한, 중국, 소련 극동지역의 정보를 수집하는 스파이로 활동했다.

블레이크는 이듬해 발생한 한국전쟁 기간에 다른 외교관들과 함께 북한 인민군에 포로로 잡혀 3년간 평양부터 압록강까지 끌려 다녔다. 그는 그 과정에서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탐독하고 전쟁에 환멸을 느끼면서 공산주의자로 전향한 것으로 전해진다.

블레이크는 2007년 러시아 방송 인터뷰에서 미군 폭탄이 한국 민가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공산주의와 싸우는 게 잘못됐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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