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7일(현지시간) 노스캐롤라이나주 그린빌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그린빌 로이터/연합뉴스
[데일리한국 강영임 기자] 미국의 한 한국계 외교관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외교관으로 일하며 느낀 자괴감을 견딜 수 없다며 사표를 내고, 8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사임의 변을 공개했다.

만 26세 때 '미국판 외무고시' 157기로 임용돼 10년간 일했다고 스스로를 소개한 척 박은 이날 WP 칼럼난에 "트럼프 대통령의 '현실안주 국가'의 일원임을 더는 정당화할 수 없어 사임한다"는 제목의 글을 싣었다.

척 박은 이 칼럼을 통해 그동안 해외서 미국을 대표하는 외교관으로 경험한 일과 심경을 털어놨다.

그는 "한국에서 온 이민자 아들인 자신이 부모를 반갑게 맞아주고, 본인과 형제자매들에게 성장 기회를 준 미국 사회에 대한 의무감을 느낀 것"이 외교관의 길을 걷기로 결정한 사유였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그는 "시간이 흐를수록 미국 내에서의 모순적인 상황에 대해 외국 측에 해명하느라 곤욕을 치르면서 점차 방어적인 입장이 됐다"고 심경을 밝혔다.

예컨대 미국에선 수천명의 불법체류 청년들이 쫓겨나는 상황임에도 멕시코에서 영사관 행사에서 미국의 우정과 개방성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했다거나, 흑인에 대한 경찰의 과잉 대응이 사회적 문제인데 리스본 대사관에서 흑인 역사 주간을 열고 축하해야 할 때 이런 모순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척 박은 트럼프 대통령을 2016년 인종주의와 여성 혐오, 음모 이론을 앞세워 유세하던 사람이 대통령으로 당선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폭력적인 백인 국수주의자와 이들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같은 선상에 놓고 보고, 이민자들을 '거지소굴'에서 왔다고 폄하하는가 하면, 국경에서 부모와 아이들을 강제로 떨어뜨려 놓는 등 상황이 더욱 악화시켰다고 비판했다.

척 박은 정부 내에 현 정권을 전복시키려고 기회를 노리는 수천명의 공무원들이 있을 것이라는 이른바 '딥 스테이트'(deep state) 음모론 추종자들의 상상과 달리, 자신은 지난 3년간 내부에서 '반(反) 트럼프' 움직임을 전혀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매일 트럼프 행정부가 정한 우선순위에 따라 비자를 거절하고, 국경 안보·이민·무역 등의 현안에서 행정부의 지시사항을 그대로 따랐다는 점에서 스스로도 트럼프의 '현실안주 국가' 일원이었다며 반성했다.

이어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유독성 어젠다'(toxic agenda)를 전 세계에 퍼뜨리려는 인사들을 위해 출장 일정을 계획해주고, 만남을 예약하고, 말 그대로 문을 붙잡아 열어주는 역할을 해야만 했다"고 토로했다.

이어 자신이 사표를 쓰기까지 너무 오래 걸린 점을 부끄럽게 생각한다며 공짜 주택이나 퇴직 연금 등 직업적인 특전 때문에 한때는 너무나 분명했던 이상에서 멀어지고 양심을 속였다고 후회했다.

그는 올해 7살이 된 아들에게 이 정권의 행위에 자신이 공모한 데 대해 설명할 수 없고 스스로도 납득할 수 없다며 "더는 못하겠다. 그래서 사임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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