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명 여종업원 중 5명 실종·2명 교통사고…태극기 보고서야 행선지 알아채

2016년 4월 중국 저장성 닝보에 소재한 류경식당을 나와 7일 한국으로 들어온 여종업원 12명. 사진=통일부 제공
[데일리한국 전현정 기자] 지난 2016년 발생한 중국 내 북한식당 종업원들의 집단탈북 사건의 뒷얘기가 미국 뉴욕타임스(NYT)를 통해 공개됐다.

6일 연합뉴스는 NYT 5일자(현지시간) 기사를 인용해 당시 탈북을 주도했던 식당 지배인 허강일 씨와 NYT의 인터뷰 내용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허씨는 2013년부터 22명의 북한 여종업원과 북중 접경지역인 지린(吉林)성 조선족자치주 옌지(延吉)의 한 식당에서 일했다. 식당 소유주는 중국인이지만, 지배인을 맡은 허씨가 사실상 운영을 맡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허씨는 본국으로 연 10만달러(약 1억1200만원) 송금 임무가 주어졌고, 파견 나온 감시요원들의 과도한 뇌물 상납 요구까지 겹쳐 스트레스를 받던 상황이었다.

이에 더해 허씨의 지인들이 북한 내 숙청 바람에 휩쓸려 정치범수용소로 보내졌다는 얘기까지 들려오자, 허씨는 2014년 어느 날 식당을 자주 찾던 조선족 손님을 통해 ‘남쪽 정보기관’ 인사를 소개받았다.

허씨는 북한의 미사일·잠수함 프로그램 관련 정보를 ‘남쪽 정보기관’ 인사에게 전달하고, 충성 서약까지 했다. 하지만 허씨를 소개시켜준 조선족 인사가 이 사실을 빌미로 협박하며 10만달러를 요구했고, 견디다 못한 허씨는 종업원들과 상하이 근처 닝보에 있는 다른 식당으로 옮겨갔다.

이후 협박을 하던 조선족 인사가 닝보의 식당까지 찾아오자, 허씨는 2016년 초 ‘남쪽 정보기관’ 인사에게 한국으로 데려갈 것을 요청했고, 그해 5월30일을 실행날짜로 논의했다.

다만 남쪽 정보기관 인사는 4월30일 48시간 이내에 떠날 것이라며, 허씨에게 식당에서 일하는 여종업원 모두를 같이 데리고 오라고 요구했다. 허씨가 이를 거부하자, 오히려 정보기관 인사가 북측에 알리겠다고 협박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허씨는 결국 여종업원들을 데리고 오면 수백만달러를 보상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집단탈북을 결심했다.

허씨는 4월6일 새벽 19명의 여종업원들에게 다른 식당으로 이동한다고 설명한 뒤, 상하이공항으로 이동할 준비를 하라고 했다. 하지만 공항으로 떠나기 전 5명의 여종업원이 휴식시간을 이용해 모습을 감췄고, 결국 나머지 14명의 여종업원과 허씨만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으로 가는 도중엔 중국인 닝보 식당 주인이 자신의 차를 타고 추격해왔다. 그 주인은 여종업원들이 탄 택시 한 대를 들이받았고, 이로 인해 2명의 여종업원은 상하이공항에 도착하지 못했다.

허씨는 4월6일 새벽1시20분쯤 상하이공항에서 쿠알라룸푸르행 비행기 이륙 직전 남측 정보기관 인사와 통화를 했다.

허씨는 당시 수화기 건너편에서 환호와 박수소리가 들렸고, 자신을 ‘영웅’으로 불렀다고 기억했다.

허씨와 12명의 여종업원은 쿠알라룸푸르 공항에 도착한 후 말레이시아 주재 한국대사관으로 향했다. 여종업원들은 태극기를 보고서야 행선지를 알아챘지만, 허씨는 “북으로 돌아가면 죽게 된다”며 설득했다.

결국 허씨와 여종업원 12명은 그날 밤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대한항공 항공기를 타고, 4월7일 한국에 도착했다.

허씨는 이후 한국에서 편의점 점원과 택배기사로 일했으며, 한국행 이후 북한 내 가족들은 사라졌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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