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논의 도중 "왜 거지소굴(shithole) 사람들 받아주나" 욕설 파문
여야 의원 "미국은 이민자들이 건설한 국가…사과하라" 한목소리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중미와 아프리카 국가들을 겨냥해 "우리가 왜 거지소굴 같은(shithole) 나라들에서 이 모든 사람들이 여기에 오도록 받아줘야 하느냐"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워싱턴포스트(WP)와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여야 상·하원의원 6명과 만나 이민문제 해법을 논의하던 중 문제의 발언을 했다.

미 행정부와 의회는 불법체류 청년 추방 유예 프로그램(DACA·다카) 폐기에 따라 추방될 위험에 놓인 청년들(일명 '드리머')을 구제하고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을 위한 예산 확보 방안을 합의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린지 그레이엄(공화·사우스캐롤라이나)과 딕 더빈(민주·일리노이) 상원의원으로부터 양당 합의안에 관한 브리핑을 듣다가 비자추첨제를 종료하고 5만 개의 비자 중 일부를 '임시보호지위'(TPS)로 미국에 거주 중인 취약 이민자 보호를 위해 사용한다는 대목에서 화를 벌컥 냈다고 한다.

TPS란 대규모 자연재해나 내전을 겪은 특정 국가 출신자들에 대해 인도적 차원에서 임시 체류를 허용하는 제도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8일 엘살바도르 출신 이민자들에 대한 TPS 갱신 중단을 선언하는 등 이 제도를 축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TPS 이민자를 보호한다는 설명에 트럼프 대통령은 2010년 강진으로 큰 피해를 본 아이티와 아프리카를 콕 집어 언급하면서 '거지소굴' 발언을 해 참석한 의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고 복수의 소식통이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쓴 단어 'shithole'은 매우 지저분하고 더러운 거지소굴 같은 곳, 시궁창 같은 곳 등으로 번역되는 욕설에 가까운 비속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중에서도 아이티 이민자들을 가리켜 이번 대책에서 배제할 것을 요구하고 "우리가 왜 아이티에서 온 사람들을 필요로 하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한술 더 떠 '거지소굴'에서 온 이민자 대신 "미국은 노르웨이 같은 나라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데려와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에르나 솔베르그 노르웨이 총리와 회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월에도 아이티 이민자들을 "모두 에이즈 감염자"라고 부르고, 나이지리아 출신자들에 대해선 "미국을 한 번 보게 된다면 결코 그들의 오두막(hut)으로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고 NYT는 보도했다.

비공개로 이뤄진 이날 회의에서 한 발언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자 정계에선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특히 이민자 출신 의원들은 거세게 반발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사과를 촉구했다.

아이티 이민자 가정 출신인 미아 러브(공화·유타) 하원의원은 성명을 내고 "우리 부모님이 바로 (트럼프 대통령이 지목한) 그 국가 중 한 곳에서 왔다. 하지만 연방정부로부터 단 하나도 도움받은 일이 없으며 열심히 일해 세금을 내고, 자녀들을 기르며 자녀들에게 기회를 줬다. 그분들은 자녀에도 똑같이 하도록 가르쳤으며 그게 바로 '아메리칸 드림'이다"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요구했다.

크웨임 라울(민주·일리노이) 의원도 자신의 부모가 1950년대 아이티에서 미국으로 건너왔다는 사실을 밝히고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역사는 물론 이민자들, 특히 아이티 이민자들이 이 국가를 만들고 역사에 기여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부적절한 인물임을 스스로 입증했다"며 "사과로 해결할 문제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여당 내에서도 대통령의 발언에 문제가 있다는 견해가 잇따랐다.

제임스 랭크포드(공화·오클라호마) 의원은 "만약 이 발언이 정확하다면 실망스럽다"며 "이들 국가 출신 사람들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으며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갖고 있는데 이런 식으로 말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공화당 출신 존 케이식 오하이오주지사도 트위터에 "미국은 전 세계 이민자들의 힘으로 건설됐으며 우리는 이 역사를 거부할 게 아니라 영예롭게 생각해야 한다. 그 시작은 존중하는 표현과 DACA 서명으로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논란이 확산하자 라즈 샤 백악관 부대변인은 "워싱턴의 어떤 정치인들은 외국을 위해 싸우기로 선택한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항상 미국인을 위해 싸우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 기조를 재확인했다.

이날 공화·민주 양당은 다카 대책과 국경 장벽 예산에 대해 합의안을 도출했으나 백악관은 합의안에 찬성하지 않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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