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은 맞고 라스베이거스는 아니다?…모호해진 테러리즘

미국 역대 최악의 총기난사로 기록된 '라스베이거스 참극'이 발생한 지 꼭 한 달 만에 터진 '뉴욕 트럭돌진'.

소형트럭으로 맨해튼 자전거도로를 덮쳐 8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이풀로 사이포프(29)는 즉각 테러리스트로 규정됐지만, 라스베이거스에서 무려 50여 명을 살육한 스티븐 패덕(64)은 여전히 총기 난사범이다.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2일(현지시간) 라스베이거스·뉴욕 사건을 계기로 테러리즘 논쟁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연방법은 테러리즘을 '정치적, 사회적 목적을 위해 정부 또는 시민을 위협·강압하고 인명과 재산에 불법적인 폭력을 가하는 행위'로 정의하고 있다. 9·11테러를 기획한 알카에다를 비롯해 극단주의 세력이 직접 테러를 주도하던 시절에는 대체로 유효한 개념이었다.

그렇지만 극단주의를 추종하는 '외로운 늑대'(lone wolf·자생적 테러리스트)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그 경계선이 모호해지고 있다.

'트럭돌진' 범인 사이포프도 테러단체의 지령을 받았다기보다는, 수니파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를 신봉하면서 'IS 온라인 지침'에 따랐던 '외로운 늑대'라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정교한 살상 범죄를 저지른 패덕도 'IS 추종'이라는 꼬리표가 없을 뿐, 사실상 반(反)사회적 '외로운 늑대'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이처럼 뚜렷하게 구분하기 어려워진 테러리즘의 현실적인 잣대는 종교와 인종이라고 뉴욕타임스는 지적했다. 무슬림은 통상 테러리스트가 되고, 비(非)이슬람 백인은 총기난사범이라는 얘기다.

'이슬람포비아'(이슬람 혐오증)의 저자 네이선 린은 "트럭돌진범이 범행 현장에서 '알라후 아크바르'(알라신은 위대하다)라고 외친 순간 그는 테러리스트가 됐다"고 꼬집었다.

더욱 근본적인 기준점은 정치·사회적 이해관계다. 테러 사건에 대해서는 후속 조치가 뒤따라야 하는데 이 지점에서 셈법이 엇갈린다는 얘기다.

가령 라스베이거스 참사를 테러로 규정했다면 다음 수순은 '총기규제 입법'이다. 총기규제에 찬성하는 일부 진보진영에서 패덕을 테러리스트로 부른 것도, 총기옹호론자인 보수진영에서 '정신 질환' 총기난사범이라는 논리를 부각한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사건 발생 불과 몇 시간 만에 '트럭테러'로 규정하면서 이민제도를 전면적으로 손보겠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는 별도의 사설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사건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라스베이거스 참사 당시 총기규제 논쟁이 불거지자 '지금은 힘을 합쳐야 할 때'라고 주장했던 트럼프 대통령 측이 이번에는 민주당 진영을 공격하면서 이민제도를 이슈화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뉴욕=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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