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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사회당 정부에서 경제장관으로 일하다 뛰쳐나온 정치신인 에마뉘엘 마크롱(39)이 정치단체 '앙마르슈'(En marche·전진)를 출범할 때까지만 해도 그가 프랑스 대선과 총선을 잇달아 제패하리라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처음에는 당명을 두고 괴팍하고 정체성을 알 수 없는 이름이라는 조롱까지 들어야 했다.

그러나 프랑스 정계의 '이단아'로 취급받던 마크롱은 거대양당의 대권 주자들을 차례차례 격파하고 집권에 성공한 데 이어 다시 한 달 만에 총선에서 과반의 압승이라는 '선거혁명'을 이뤄냈다.

특히, 신당은 기성 정치권의 문법에 구애받지 않는 새로운 정치를 목표로 공천자의 절반을 정치신인으로 채우는 초유의 실험을 단행, 기존의 거물 정치인들이 패배하고 물러난 프랑스 의회를 '젊은 피'로 장악하게 됐다.

마트롱의 선거혁명이 정치혁명과 프랑스의 부흥으로 이어질지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중도 표방 신당, 전후 정치질서 완전재편…전통의 공화·사회당 몰락

마크롱의 대선 승리와 '레퓌블리크 앙마르슈'(전진하는 공화국)의 총선 압승은 기성 정치질서를 무너뜨린 '혁명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이는 갓 선출된 대통령이 자신이 창당한 신생정당으로 의회를 장악해 정계개편을 주도한 역대 두 번째 사례이기도 하다.

첫 사례는 프랑스를 나치 독일로부터 해방한 1등 공신으로 5공화국 초대 대통령이었던 샤를 드골의 1958년 총선 승리였다.

반백년이 지난 시점에 이뤄낸 앙마르슈의 이번 완승은 2차대전 이후 프랑스에서 집권당과 제1야당 자리를 번갈아 차지한 사회당과 공화당의 몰락을 뜻하는 중요한 사건이기도 하다.

마크롱은 15개월 전 앙마르슈 출범 당시 "좌파도 우파도 아닌 정치·경제·사회 자유 촉진을 목표로 한 새로운 정치 운동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는데 이번 압승으로 정계개편 약속을 실현했다.

노동과 사회복지 등 사회경제정책의 큰 틀을 놓고 좌·우파로 구분됐던 프랑스 정치는 이제 '실용'을 전면에 내세운 신당 중심으로 혁명수준의 재편이 이뤄지게 됐다.

특히 사회당은 창당자인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에 치러진 1993년 총선에서 직전의 278석에서 56석으로 추락했다가 겨우 회생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회생은커녕 존폐의 갈림길에 몰리게 됐다.

사회당의 처지는 마크롱이 20대 시절 사회당원이었고, 그를 장관으로 발탁해 대권 도전의 기회를 제공한 것이 사회당 정부(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였다는 점에서 더욱 '운명의 장난'처럼 받아들여진다.

◇"부패·무능 정치권 갈아엎자"…출범 초 비아냥, 경탄으로 바뀌는데 단 1년

마크롱이 작년 출범한 '앙마르슈'는 본래 '전진' 또는 '움직이는' 등의 뜻으로, 지난 대선 레이스에서 약자로 사용된 'EM'은 에마뉘엘 마크롱 본인 이름의 약자이기도 하다.

처음에 마크롱이 앙마르슈를 내놓았을 때 그는 기성 정치권과 언론들로부터 "전진? 어디로 전진할 건데?" "겉멋만 들었지 정체성이 모호하고 알맹이가 없다" 등의 비아냥을 수시로 들어야 했다.

그러나 냉소와 조롱에 가까웠던 평가가 경계와 경탄으로 바뀌는 데는 1년 정도면 충분했다. 앙마르슈의 총선 승리는 마크롱 개인에 대한 찬성투표 측면도 있지만, 신당의 정치실험을 유권자들이 추인했다는 의미가 더 크다.

앙마르슈는 부패하고 무능한 기성 정치권을 갈아엎겠다는 목표로 공천자의 절반을 선출직 경험이 전무한 정치 신인으로 채웠는데, 이는 프랑스 정치사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여기에는 대선에서 공화당 참패의 결정적 원인이 된 프랑수아 피용 전 총리의 세비 횡령 스캔들이라는 배경이 있었다.

가족들을 보좌관으로 허위채용해 혈세로 공금을 챙겨준 이 사건이 연일 이슈가 되면서 유권자들은 기성 정치인들의 도덕적 해이와 대중과 유리된 특권층의 삶에 환멸을 느꼈고, 피용은 '집권 1순위'의 유력주자에서 부패사건의 피의자 신분으로 추락했다.

앙마르슈는 피용 스캔들을 바탕으로 '부패한 기성정치권' 프레임을 대선에서 효과적으로 이용한 데 이어 총선의 공천에도 반영했다.

공천자 중 현역의원은 전체의 5∼6%로 줄인 대신, 절반을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신인들로 채웠고, 평균 연령은 46세로 지난 의회 하원의원 평균 60세보다도 14살이 적었다. 또 공천자의 절반은 여성에 배당했다.

그리고 이렇게 뽑힌 투우사, 수학자 등의 신인들은 지역구에서 오랜 터줏대감 노릇을 해온 다른 당의 현역의원들을 상대로 예상을 뒤엎고 승리했다.

앙마르슈의 대승으로 프랑스 정계는 기존의 정치구도뿐 아니라 전면적인 세대교체와 정치권의 여성에 대한 '유리천장' 파괴까지 일거에 이뤄내는 위업을 달성했다.

◇사상 초유의 정치실험 일단 성공…"일당체제" "민주주의 위기" 우려도

마크롱의 대선 승리 직후만 해도 모멘텀이 금방 꺾이고 총선에서도 과반을 넘기기 어려울 거라는 전망이 우세했지만, 마크롱은 이런 예상도 뛰어넘었다.

집권하자마자 국내정치와 외교무대에서 각각 노동개혁과 기후변화 등의 과제를 놓고 이슈를 주도하며 총선의 승기를 잡았고, 내각 인선과 신당 공천을 통해 최대 적수였던 공화당을 무력화시켰다.

신당 공천에 공화당의 거물 알랭 쥐페 전 총리 계열 의원들을 다수 포함한 데 이어, 쥐페의 최측근인 에두아르 필리프를 총리로 지명하는 등 '분열시킨 뒤 정복한다' 전략으로 거대 우파정당을 뒤흔든 것이다.

마크롱은 '친정'이라 할 수 있는 사회당에 대해선 일찌감치 다수 현역의원을 끌어들였고, 정부에서 한솥밥을 먹던 각료들마저도 소속당이 아닌 마크롱에게 '러브콜'을 보내면서 사회당은 좌파의 야성을 완전히 상실해버렸다.

마크롱이 대선과 총선 모두 압승을 이뤄냈지만, 앞길에 탄탄대로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당장 노조들은 총선 압승을 바탕으로 정부가 노동시장 유연화를 강행할 시 대규모 시위로 저항한다고 선언했다.

의회 구성상 집권당에 위력적인 대항세력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정치신인들 위주로 채워진 여당이 행정부의 '거수기'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렇게 되면 의회 내에서 정치적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노동·사회단체들이 대규모 시위 등 장외투쟁을 일상적으로 펼칠 가능성도 크다.

야당의 거물급 정치인들과 비판적 지식인들 사이에선 벌써 "일당체제 우려", "민주주의 위기"를 거론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비례대표제 도입 등 선거제도 개편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40년 전 프랑스를 뒤흔든 '68혁명'이 권위주의에 대한 전 세계적 저항의 물결 속에 드골의 카리스마 넘치는 중앙집권제와 의회 기능 약화라는 배경에서 태동했다는 역사를 고려하면, 정부와 여당의 독주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점점 거세질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프랑스 현대정치에서 좌와 우를 뛰어넘는, 또는 좌와 우를 모두 포괄하는 정치실험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라는 점에서 불확실성이 크다.

영국엔 신(新) 노동당을 표방했던 토니 블레어의 '제3의 길'(The Third Way)이, 독일 사회민주당에는 게르하르트 슈뢰더의 '신중도'(Neue Mitte)가 있었던 반면에, 프랑스는 마크롱 직전까지 전통적인 좌·우파 문법에 충실한 정당들이 전후 60년간 정치 질서를 공고하게 지배해왔다.

'전진하는 공화국'(레퓌블리크 앙마르슈)이라는 깃발을 활짝 펼친 프랑스호(號)가 어디로 전진할지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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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17/06/19 09:03:54 수정시간 : 2017/06/19 09:0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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