젭 부시의 "앵커 베이비" "아시아인들이 출생시민권제도 악용" 발언 이후 '뜨거운 감자'

중국인 원정 출산은 연간 1만명, 한국인도 한때 최대 5,000명… 제도 변경 가능성 주목

사진=유토이미지
[데일리한국 윤용진 인턴기자] 아시아인들의 미국 '원정 출산'이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인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가 24일(현지 시간) "아시아인들이 미국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에게 시민권을 주는 제도를 악용하고 있다"면서 원정 출산의 문제점을 본격적으로 제기하자 미국 내 한인을 비롯한 아시아계가 반발하고 있다. 또 중국,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인들의 원정 출산 실태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부시 전 주지사는 이날 멕시코 근처의 텍사스주 국경 도시를 방문한 자리에서 "출생시민권이라는 숭고한 개념을 조직적으로 악용하는 것은 (중남미인들이 아닌) 아시아인들과 관련이 깊다"면서 "최근 내가 언급했던 앵커 베이비(anchor baby·원정 출산 등으로 태어난 아이)도 조직적 사기를 지적한 것"이라고 말했다. 부시가 최근 라디오 인터뷰에서 '앵커 베이비'라는 표현을 썼다가 히스패닉계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자 화살을 아시아인들로 돌린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그가 '조직적 사기'라는 표현까지 쓰며 아시안인들의 원정 출산을 비판하자 이 문제가 뜨거운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앵커 베이비'는 시민권을 얻은 아이가 '바다'(미국)에 '배'(가족)을 고정시키는 '닻'(anchor)같은 역할을 한다는 데서 유래된 경멸적 용어이다.

그렇다면 아시아인들의 미국 원정 출산 사례는 어느 정도 될까. 아시아인 가운데 중국인과 한국인의 원정 출산이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져 부시는 사실상 두 나라 사람들을 겨냥한 발언을 한 셈이다. 미국 이민연구센터(CIS)가 집계한 '미국 내 외국인의 연간 출산 건수'에 따르면 미국에서 원정 출산으로 태어나는 신생아는 연간 3만6,000명가량이다. 유학생 등 단기 거주자가 낳는 신생아는 약 2만명이고, 단기 방문 비자인 '국경통과카드'를 소지한 멕시코인의 신생아는 약 13만5,000명이다. 또 불법 체류자의 연간 출산 건수는 30만건에 이른다.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원정 출산을 하는 사람들은 중국인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 미국 연방정부가 중국인 원정 출산 단속을 벌인 결과 한 알선업체는 1999년부터 최근까지 8,000여 명의 원정 출산을 알선한 것으로 포착됐다. 미국 정부는 원정 출산을 차단하기 위해 2013년에도 로스앤젤레스(LA)에서만 18개의 산후조리 ‘호텔’을 문 닫게 했다. 중국인 원정 출산이 늘어나는 이유는 자국의 대기오염과 식품 안전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더 나은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려는 상류층 부모들의 의도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미국 CNN이 중국 언론 등을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2012년 미국에서 아이를 낳은 중국인 여성은 1만 명 가량으로, 2008년 4,200명에 비해 2배 넘게 증가했다.

사실 한국에서도 원정 출산은 오래 전부터 사회적 이슈로 거론돼 왔다. 2000년 전후로 급속히 확산된 한국인의 원정 출산은 병역 의무 회피나 가족 이민 추진 등의 다양한 이유로 행해졌는데, 역시나 주된 이유는 '아메리칸 드림'이었다. LA지역의 한 한인 교포는 "원정 출산을 하는 부모들은 자녀가 미국의 고교나 대학에 진학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것 같다"면서 "부모들이 시민권자인 자녀의 초청으로 제2의 인생을 미국에서 펼쳐보고 싶은 꿈을 가진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원정 출산이 정점을 찍던 2002년에는 LA타임스가 한국 신생아의 1%인 5,000명이 매년 원정 출산으로 태어나고 있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당시 언론들은 "기업화된 전문 원정 출산 알선업체들이 출입국 수속부터 병원, 숙소, 산후 조리, 관광 안내까지 모두 묶어 패키지 여행상품처럼 ‘원정 출산 상품’을 판매했다"면서 한국인의 원정 출산 실태를 꼬집었다.

결국 원정 출산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자 우리나라 국회는 2005년 개정 국적법을 만들어서 부모가 외국에서 영주할 목적 없이 체류한 상태에서 출생한 자는 병역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는 국적 이탈 신고를 할 수 없도록 했다. 최근 미국합동수사국 조사에 따르면 한인들이 많이 사는 캘리포니아주 어바인 지역에서는 2013년 이후 400명 이상이 원정 출산을 한 것으로 집계돼 원정 출산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따라서 부시 전 주지사의 '아시아인 원정 출산' 비판은 주로 중국인과 한국인을 겨냥했다고 볼 수 있다. 부시 전 주지사의 '앵커 베이비' '조직적 사기' 발언은 아시아인들에 대한 인종 차별적 인식이 반영된 것이란 비판의 목소리들이 쏟아지고 있다.특히 한인 사회가 즉각적으로 집단 반발하고 있다. 워싱턴한인연합회는 25일 성명을 내고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경멸적이며 모욕적인 발언"이라며 "부시 후보는 발언을 철회하고 아시안 커뮤니티에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 발언을 계기로 공화당 내에서 '출생 시민권' 제도를 개정하자는 목소리가 커질 가능성도 있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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