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 中 반환 이후 집값 폭등에 "미래가 사라졌다" 침울
경제 양극화 개선 가능케 할 '자치제' 이행 제지에 불만 폭발

사진=SBS 방송화면 캡처
[데일리한국 김종민 기자] 중국 당국의 2017년 홍콩 행정장관 선거안에 반대하는 홍콩 시민 수십만명의 도심 점거 시위가 1일로 나흘째 이어지고 있다. 중국 국경일 연휴를 맞은 이날 시위 참가자가 늘고 점거 지역도 넓어지고 있어서 긴장은 점점 고조되는 국면이다.

이번 홍콩 민주화 시위의 직접적인 이유는 사실상 친중국 성향의 인사만 행정장관에 입후보하도록 만든 '반쪽 직선제'에 있다. 주민들은 반쪽 직선제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시위의 배경으로는 경제적 양극화와 부의 불평등에 대한 불만이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홍콩 반환 이후 중국 본토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부동산·재벌·금융기업가들이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이 과정에서 일반 시민들은 물가·주거비 인상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러한 불만이 시위의 추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홍콩의 불평등은 심각한 상황이다. <가디언>에 따르면 지난해 홍콩 인구의 5분의 1에 달하는 130만 명이 빈곤선 아래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 소득 분배 수준을 가리키는 지니계수는 0.53을 기록했다. 이 수치는 세계 선진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홍콩의 빈부 격차의 배경은 주택가격 상승이다. 홍콩의 집값은 지난 2009년 이후 두 배로 뛰었다. 워낙 땅값이 비싸다 보니 전체 가구의 10%가 넘는 약 17만명 정도가 작은 아파트를 잘개 쪼갠 5㎡ 남짓한 쪽방에서 살고 있다. 주택의 공급이 수요에 못미치기 때문인데 홍콩 정부는 매년 2만여채의 공공주택을 공급할 계획이지만 이미 대기자는 24만명을 넘어서 사실상 주택 대책에도 손을 쓸 수 없는 상태다. 시위 참여자의 대부분이 암울한 미래에 대한 근심이 가득한 젊은 세대라는 것도 이같은 시각에 힘을 실어준다.

홍콩 총영사와 국정원 차장을 역임한 전옥현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는 "홍콩은 지니계수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고 주거 문제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면서 "이번 홍콩의 시위는 정치 민주화에 대한 주민들의 열망과 삶의 질에 대한 불만이라는 두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촉발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뒤 많은 사람들이 외국으로 이민을 갔고, 남아 있는 젊은 세대와 빈곤층들은 1997년 이후 강해진 중국의 영향력으로 인한 경제 종속 상황 속에서 자신들의 미래가 없어졌다고 보고 있다"며 "직장을 갖거나 집을 구매하는 것이 계속 어려운 상황에서 중국이 이런 것을 바꿀 수 있는 '고도 자치'를 이행하겠다는 약속을 왜 지키지 않느냐는 것이 시위대의 불만"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도 29일 "홍콩의 젊은 세대들은 정부가 서민 보다 재계의 거물과 억만장자들을 위해 일하는 것을 보면서 본토에 대한 정치적, 심리적 분노를 쌓아 왔다"며 "그들의 절망이 표면으로 부풀어 오르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중국 정부는 시위대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이번 시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홍콩 당국에 강경한 대응을 주문하고 있다. 영국의 텔레그라프 등 외신에 따르면 시위를 이끌고 있는 시민단체 '센트럴점령(Occupy Central)'은 30일 성명을 통해 "렁춘잉 홍콩 행정장관에게 1일까지 본인의 퇴진을 포함한 요구 사항을 이행하라는 내용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센트럴점령 측은 이날 "새로운 '시민 불복종 행위'에 대한 계획도 밝힐 것"이라며 렁 장관의 퇴진이 무산될 경우 추가적 움직임에 나설 것임을 시사해 지난 28일에 이어 또 한번의 대규모 충돌이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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