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년 전임교수 신분 처우문제 본격 부각…교수노조, 대학행정 참여 문 열려

전주대 캠퍼스 전경. 사진 전주대홈페이지 캡쳐.
[데일리한국 송찬영 교육전문기자] 국내 대학 최초로 전북 전주시 소재 전주대에서 고용노동부 산하 중앙노동위원회 조정안을 거친 교수노동조합과 학교법인간의 단체협약이 체결됐다.

이번 단체협약은 전주대 단일대학 사례이지만, 정부기관의 중재를 통해 단체협약에 교수노조의 교직원 인사위원회 참관, 교직원에 대한 징계 제청권 보장 등 17개 조항이 명문화됨으로써 향후 학교법인과 대학행정 당국 중심의 대학운영 관행에 일대 변화가 일 것으로 전망된다.

또 교수노조 의견이 비정년계열 전임교수의 연구 환경, 급여 등의 대학 정책을 시행하는데 반영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함으로써, 그동안 사각지대에 있던 대학사회의 비정년 전임교수(국립대의 경우 계약교수)의 교권 향상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대학가에서는 이번 협약 체결로 교수노조가 대학사회 전반에 안착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현재 전국적으로 교수노동조합 설립신고증을 받은 대학 수는 53개이다.

고용노동부 산하 중앙노동위원회는 지난 13일 교수노조와 학교법인 신동아학원간의 단체협약조정안이 합의됐다고 밝혔다. 사진은 관련3자가 합의 뒤 기념사진. 사진, 중앙노동위원회 제공.

15일 데일리한국 취재에 따르면 전주대 교수노조위원장 오재록 교수와 학교법인 신동아학원 홍정길 이사장은 지난 13일 중앙노동위가 제시한 17개 단체협약 조정안에 서명했다.

합의한 17개 사안은 △연구실 제공을 통한 근무환경 개선 △연구년제 운영 △노동조합 사무실 제공 △홍보활동 보장 △조합비 공제 등이다.

원래 교수노조와 학교법인 간 쟁점 사항은 총 55개이다. 중앙노동위는 이 가운데 교수노조가 중재 요청한 19개 사안 중 17개 안에 대해 합의를 추진했으며, 나머지 38개 조항은 사용자가 노조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것’을 전제로 별도 합의 진행토록 권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17개 최종 합의 내용의 핵심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교수노조를 대학 내 공식 단체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학교법인은 노조 사무실을 제공하고, 신임 교원 연수시 1시간가량을 교수노조에 할애키로 했다.

이는 대학내 법적 의사결정기구로 교수단체인 ‘교수회’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비정년 교수들을 포함하는 교수노조가 대학 내 하나의 구성원 대표 조직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해 말 현재 전주대 교수노조 조합원 수는 전체 교수 380명 중 155명(2020년 12월 24일 기준)이다. 이 가운데 70명의 조합원이 비정년 전임교수다.

둘째, 교수노조가 제한적이지만 대학 운영 일부에 참여하게 됐다는 점이다. 교수노조의 교직원 인사위원회 참관, 교직원에 대한 징계 제청권 보장, 대학평가를 위한 학과평가 기준 마련시 노조의 의견 수렴 등의 내용이 이번 단체협약에 반영됐다.

셋째, 그동안 사각지대에 있던 비정년 전임교수에 대한 신분 및 처우 개선 내용이 적극 반영됐다. 합의안에는 큰 틀에서 비정년 전임교수의 정년전환, 비정년 전임교수의 임금체계 개혁, 그리고 각종 비정년 전임교수에 대한 평가 개선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대학은 그동안 교육부의 대학평가 기준을 맞추기 위해 비정년 전임교수 수를 늘려왔다. 대학입장에서는 작은 부담으로 대학평가를 잘 받을 수 있었지만, 비정년 전임교수들은 ‘똑같이 일하고 저임금을 받는’ 등 처우 면에서 차별을 받아왔다.

특히 강의평가제, 대학구조개편 과정에서 가해지는 신분상 불이익은 그동안 교수 사회 주요 이슈가 돼 왔다.

대학교육 주무부처인 교육부가 해결 ‘시늉’만 한 비정년 전임교수관련 문제를 고용노동부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디딤돌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단체협약 조정안 합의는 전주대 교수노조가 지난해 12월 24일 중앙노동위원회에 조정신청을 함에 따라 이루어졌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이후 조정중재위원 3명을 지명했고, 3차례 조정을 거쳐 단체협약 조정을 했다. 이후 13일 교수노조와 법인 양측이 합의안에 서명했다.

교수노조를 비롯한 교원노조는 조합원이 2명이상이면 설립이 가능하다. 노조설립과 교섭권은 있으나, 파업권은 없다.

따라서 보통 노동조합 단체협약 조정은 당사자들의 이해가 첨예하게 맞서 파업으로 가는 사례가 상당수다.

교수노조는 파업권이 없으므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최종단계에서는 중앙노동위원회의 '중재'로 단체협약을 최종 확정해야 했다. 그러나 이번 단체협약은 중재 이전 양측 합의로 마무리 됐다는 것이 중앙노동위원회의 설명이다.

이번 단체협약 합의에 대해 당사자들 평가는 엇갈린다. 특히 교수노조와 법인간 합의후 대학당국의 당황스런 모습이 읽혀진다.

교수 노조 측은 활동 시작초기로 큰 틀에서 학교당국과 합의를 했고, 지속적인 협의를 통해 향후 교수들의 의견을 최대한 관철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웃한 원광대와 전주우석대는 물론 타 대학과의 연대도 천명했다. 향후 교수노조가 대학가에 뜨거운 이슈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주대 교수노조위원장인 오재록 교수(행정학과)는 “대학당국의 학교 운영이 일방적 통행에서 교수 노조의 참여를 통한 민주적으로 바뀌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의미를 부여하고, “특히 신분상 불이익을 받고 있는 비정년전임교수 여건을 강화시키고자 최대한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오 교수는 “교수회나 직원노조, 학생들과의 관계도 원만히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반면, 학교 당국은 가급적 합의 내용이 확산되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이다.

전주대 홍보실 책임자는 대학의 공식적 입장을 반복해 묻는 데일리한국에 “(교수노조를 담당하는) 대학내 부서인 교무처는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발표한 내용은 오보라는 입장”이라며, “아직 확정된 것은 없으며, 교수 노조 측과 계속 협의 중인 상태"라고 밝혔다.

중재성과를 보도자료로 배포까지 한 정부는 ‘학교당국의 난처한 처지를 이해한다’는 입장을 보이면서도 17개 내용이 합의됐으며, 법적효력을 갖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현재 교섭중인 다른 대학에도 이번 결과가 긍정적 영향을 미치길 기대한다는 의견이다.

고용노동부 중앙노동위원회 관계자는 “이번에 양측이 수락한 조정안은 단체협약과 동일한 효력을 지녔으며, 이를 어길 경우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수근 중앙노동위원장은 “전주대 조정 성립으로 교원노조법에 의해 현재 교섭 진행 중인 여타 사업장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기대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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