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길 판사 "최순실 일파의 국정농단 등으로 방만해진 공공기관 정상화하려던 사정"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25일 오전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동부지법 법정으로 들어가던 중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데일리한국 박진우 기자] 박근혜정부가 임명한 공공기관 주요 임원들이, 방만한 운영으로 공공기관을 부실화 했다면, 문재인정부가 이들 공공기관을 정상화하기 위해, 이들의 자진사퇴 동향을 살핀 점은 현행법에 저촉될 우려가 있지만, 고의로 법을 어겼다고 보기 어렵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서울동부지법 박정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6일 야당에서 '환경부 블랙리스트'라 주장하고 있는 의혹을 수사중인 검찰이 처음으로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며 이같은 입장을 밝혔다.

앞서 김태우 전 청와대 특감반원(전 수사관)은 지난해 1월 환경부로부터 산하기관 임원들의 사표 제출 동향을 담은 문건을 받아서 특감반에 보고했다고 주장했다.

야당은 이를 '환경부 블랙리스트'라 주장하며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환경부 박천규 차관, 주대영 전 감사관, 김지연 전 운영지원과장, 이인걸 전 청와대 특감반장을 지난해 12월27일 고발했다.

사건을 배당받은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주진우 부장검사)는 3개월간 압수수색과 광범위한 참고인 조사 등 강도높은 수사를 진행했다.

이어 검찰은 22일 김은경 전 장관에 대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영장을 전격 청구했다.

검찰은 문재인정부에서 임명된 김은경 전 장관이 박근혜정부에서 임명된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들에게 사표를 내라고 종용하고 후임자로 친정부 인사를 앉히려 한 것으로 봤다.

그러나 박정길 부장판사는 이날 김 전 장관의 구속 전 피의자 신문을 벌인 뒤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박정길 부장판사는 이례적으로 법적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이유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박 부장판사는 우선 △일괄적으로 사직서를 청구하고 표적 감사를 벌인 혐의는 최순실 일파의 국정농단과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으로 인해 공공기관 인사 및 감찰권이 적절하게 행사되지 못해 방만한 운영과 기강 해이가 문제 됐던 사정을 꼽았다.

박 부장판사는 이어 △새로 조직된 정부가 공공기관 운영을 정상화하기 위해 인사수요 파악 등을 목적으로 사직 의사를 확인했다고 볼 여지가 있는 사정 △해당 임원 복무감사 결과 비위 사실이 드러나기도 한 사정을 사유로 제시했다.

박 부장판사는 또한 김은경 전 장관 등이 특정 인사를 환경부 산하기관의 특정 보직에 임명시키려 한 혐의에 대해서도 "피의자에게 직권을 남용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다는 구성요건에 대한 고의나 위법성 인식이 희박해 보이는 사정이 있다"고 밝혔다.

박 부장판사는 청와대와 관련 부처 공무원들이 임원추천위원회 단계에서 후보자를 협의하거나 내정하던 것은 관행이라고 판단했다.

저작권자 © 데일리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