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단속만이 능사 아니야, 현실적으로 우리 영농인력 일부분
으로 받아들여야 …합법적 쿼터 대폭 확대 정책도 시행 필요"

막바지에 오른 가울추수. 강원도 대관령의 한 무 밭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작업하고 있는 사람들 국적은 대부분 중국인과 태국인이었다. 러시아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는 트럭을 운전하기도 했다. 사진=송찬영 기자
[데일리한국 송찬영 전문기자]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농사가 안돼요. 우리지역은 10명중 9명은 외국인 노동자라고 보시면 됩니다. 국내인은 7·80대 노인이 대부분이고, 외국인은 30~40대들인데, 생산성면에서 이왕이면 외국인을 쓸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 한우 90두와 밭농사 2만3000평 농사를 짓는 남성 A씨(50)

“상당수가 불법 체류자라고 보면 됩니다. 관광비자로 들어온 경우도 있고, 다른 비자로 들어왔다가 공장을 거쳐 농촌으로 들어오는 경우도 있어요. 페이스북 통해 자기들끼리 정보를 주고받아요. 신분확인요? 할 수가 없지요. 어떻게 조회하나요? 밭에서 사람 구해 달라 아우성이니...2000만원 벌금 낼 각오를 하고 운영하고 있습니다. 단속만 하려고 하니, 음지로 더 숨지요.” - 영농을 겸해 용역회사를 운영하는 남성 B씨(57)

“우리 동네는 중국 사람들이 3~5인 씩 몰려 다녀요. TV를 보니 끔찍한 사건에 중국 사람들이 많이 연류 되던데, 혹시나 범죄를 저지르고 이곳에 내려와 지내는 것 아닌가 걱정됩니다.” - 강원도 귀농 20년차 여성 농업인 C씨(48)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 문제가 우리 농촌지역의 최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고령화와 힘든 일 기피현상이 가속화되면서 농업 인력을 구하기 어렵게 되자, 외국인 노동자들이 농촌지역으로 대거 유입되면서 갖가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농업 인력의 초과 수요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지만, 정부는 산발적인 단속과 노동인력 쿼터제 실시라는 ‘언발에 오줌 누기’식 정책만 내놓고 있을 뿐, 당장 현실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상당수 농어민들을 본의 아니게 범법자로 만들고 있다. 현행법상 불법 체류자를 고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의 치안안전, 주민과 노동자간의 문화적 차이로 인해 야기되는 충돌, 불법외국인 노동자들 자체 인권문제, 그리고 향후 ‘폭동’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우려 섞인 시각마저 상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강원도 한 밭에서 당랑무 세척작업을 하고 있는 여성 외국인 노동자들. 그들은 하루 일당으로 6만원을 받는다고 말했다. 태국 인들이 대부분이었는데, 한 여성은 2000만원을 모아 모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송찬영 기자

불법 체류자 고용해 스스로 ‘범법자’가 되고 마는 농민들

25일 데일리한국이 법무부를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말 기준 외국인 노동자수는 총 52만1783명이다. 이 가운데 농업부문 등록 외국인은 3만2311명, 어업부문은 2만8005명이다. 여기에는 재외동포 결혼이민 등의 숫자가 포함돼 있지 않다.

같은 기준일로 소재를 파악할 수 없는 국내 불법 체류자 수는 32만3267명이다. 불법 체류자는 소재 파악이 어렵기 때문에 농업을 비롯해 어떤 업종에 종사하는지 그 숫자를 파악하기 어렵다.

참고로 불법 체류자 적발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지난 적발된 불법 체류자 수는 2016년 2만9814명에서 지난해인 2017년 3만1237명으로 늘었다. 올해 6월말 기준으로는 1만7515명이 적발됐다. 예년 상황을 감안하면 올해에는 3만5000명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현지 농민과 용역업체 관계자들에 따르면, 4~5년 전에는 중국인과 중국동포(조선족) 비중이 컸다면, 현재는 태국과 베트남 카자흐스탄 비중이 커지고 있다.

용역회사를 운영하는 B씨는 “중국 사람들은 비교적 돈이 되는 제조업이나 건설노동을 할 수 있는 도시로 이동하고, 태국이나 베트남 사람들이 단순 노무직인 농업일 을 채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B씨 용역회사에는 총 31명의 불법외국인노동자가 있었는데, 한 명의 카자흐스탄 노동자를 제외하고 모두 태국과 베트남인이었다.

법무부 관계자는 “태국과 카자흐스탄 등은 사증면제 협정체결 국가여서 비자 없이 입국해 불법체류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농어촌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은 어느 정도의 대우를 받는 것일까? 우선 단기취업비자(C-4)와 비전문취업(E-9)비자 등 정식으로 취업비자를 받아 일하는 경우는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아 최저임금 이상을 받는다.

참고로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현재 C-4비자를 받은 인원은 3000여명가량이며, E-9비자를 받은 노동자는 66000여명으로 도합 1만 명 수준이다.

나머지 외국인 노동자는 불법체류자들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들은 지역이나 업종에 따라 각기 다른데. 여성의 경우 보통 한화 6만원에서 8만원, 남성은 7만원에서 11만 원가량을 받는다.

한때의 점심시간. 외국인 노동자들은 자신들끼리 모여 점심식사를 했다. 음식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고 묻자 선뜻 음식을 내어주었다. 사진= 송찬영 기자

불법외국인 노동자 수입, 본국 제조업 월평균 임금의 4~15배

지난 21일,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에서 무와 시금치 작업을 하고 있던 외국인 노동자들은 여성 6만원, 남성 8만원을 받는 것으로 확인됐다. 농가는 이 금액을 용역업체에 남성 11만원, 여성 8만원의 품값을 지급했다.

용역업체는 주거비(주택 전기, 가스 수도 난방 제공)와 교통비, 소개비 명목으로 남성 3만원, 여성 2만원을 떼고 지급했다. 이 용역업체는 매일 현금으로 그날의 임금을 지급하고 있었지만, 상당수 용역업체는 주 단위나 격주, 심지어 월 단위로 지급하는 곳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외국인노동자 입장에서는 상당한 금액을 받고 있는 셈이었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이들이 받는 임금은 본국 제조업 월평균 임금 수준의 4~15배에 달한다.

2015년도 기준 국내 근로자 월평균 임금은 334만원인 반면, 현지 임금은 중국의 경우 78만원, 태국 46만원, 몽골 41만원, 베트남 22만원이었다.

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 문제는 다른 업종이나 지역처럼 농촌 역시 다양한 걱정거리를 야기하고 있다. 우선은 치안문제다. 농촌지역은 외딴 집이 많고, 고령자 또는 조부모가 손주를 키우는 경우가 많다. 대문이나 담이 없는 경우도 흔한데, 주민들은 불안해한다.

여기에 일부 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들에 의한 범죄행위가 빈발하자 주민들 불안은 가중되고 있다. 지난 5월 제주도에서 한국인1명을 중국인 3명이 집단 폭행한 사건을 비롯, 태국인에 의한 칠곡 20대 회사원 살인사건(2015년 1월), 필리핀 외국인 노동자에 의한 양주 여중생 살인사건(2008년 3월) 등이 대표적이다.

C씨는 “방송이나 인터넷에서 외국인들에 의한 섬뜩한 뉴스를 들으면서 언제 우리도 피해자가 될지 모른다는 걱정이 앞선다”며 “경찰 순찰차도 정말 어쩌다 한번 보는 상황에서 누가 우리를 지켜줄지 불안하기만 하다”고 호소했다.

소재파악 신분확인 안 돼, 사회불안 요인으로 작용

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들 특성상 소재가 파악되지 않는 것 자체가 사회적 위험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 매년 발생하고 있는 AI(조류독감)는 최근 포유류인 고양이까지 감염된 사례가 있어 인체 감염 우려가 높은 상황이다.

AI를 막기 위해 용역업체를 통해 닭과 오리 살 처분에 동원되고 있는 것이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살 처분 뒤 증상이 나타나도 병원치료를 받을 수 없다. 용업업체에서도 갑자기 짐을 싸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경우도 흔하고,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에서 농장에 나가 일을 할 수도 있어 전염병 확산의 근거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여당소속의 한 국회 비서관은 “지난 2016년 고양이가 AI에 감염된 일이 있었을 때, 주무기관인 질병관리본부가 살 처분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추적하려 했지만, 상당수가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여서 추적에 실패한 적이 있다”며 “앞으로도 그러지 말란 법이 없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불법체류 노동자들이 인권침해 사각지대에 있다는 점도 지적되는 부분이다. 자국인들 간의 폭력에도 하소연할 곳이 없다. 이동이 제한되며, 아파도 사고가 나도 치료받지 못한다. 속해있는 일부 사업주나 용역업체 대표로부터 폭행과 성폭력을 당해도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강원도 한 용역업체 숙소에서 만난 태국인 뀜 씨(40)는 “경찰 다음으로 권투(내국인 폭력배)가 가장 두렵다 처와 딸을 데리고 왔는데, 아플 경우 사장에게 부탁해 약을 사다먹는 것이 전부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문화적 충돌, 임금 불만 등으로 사용자인 농업인과 충돌이 일어나고 있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이들의 국내 체류 기간이 늘고, 페이스북 등 그들만의 소통수단이 활발히 사용되면서 일부 작업장에서는 집단 작업거부 등이 일어나고 있기도 하다.

용역업체 대표 B씨는 “지금은 개인적 차원에서 사업주와 다툼이 일어나지만, 이 대로 방치하다가는 몇 년 안에 외국처럼 특정한 불만이 불씨가 돼 우리도 상상하지 못한 폭동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농촌의 인력문제를 해결하면서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관련 전문가들은 당장 해결책은 없지만, 관계당국의 협의를 통해 현재 실시하고 있는 합법적 외국인 노동자 수입 제도인 단기취업비자(C-4)와 비전문취업(E-9)비자 쿼터를 확대하고, 현행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올해 처음 C-4로 라오스의 외국인 계절노동자 31명을 유치한 경북 청송군 농업기술센터 심주환 계장은 “아직 농가가 요구하는 인력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프로그램을 이용한 농업인들도 되돌아간 라오스 노동자 반응도 아주 좋았다”며 “인원수를 크게 늘리면 불법 체류자 감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심 계장은 “현재 사업장 규모에 따라 배정인원을 달리하는데, 여기에 융통성을 주고, 최저임금으로 인한 부담을 덜며, 우리나라 농부와 외국인 노동자간의 문화적인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세심하게 교육을 한다면,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국인노동자들이 사용하는 숙소에 놓여져 있는 이동용 가방. 용역업체 대표에 따르면, 최근 10여명이 아무런 말도 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소통수단은 페이스북, 이동은 카니발 등 개인소지품을 실을 수 있는 승합차가 이용된다고 한다. 사진=송찬영 기자

“단기취업비자(C-4) 등 합법적 쿼터 대폭 늘려야”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도 사업 초기단계인 계절노동자 프로그램의 성과가 좋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며, 이 프로그램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올해의 경우 계절노동자 프로그램이 일자리 안정자금 대상자(최저임금을 위한13만원 지원)로 지정되는 성과를 얻었다”며 “현재 고용노동부와 법무부, 해양수산부 등 4개 관계부처와 함께 불법 체류자 현황을 비롯 업종별로 외국인 노동자가 얼마나 필요한지 등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으며, 올해 말 나올 결과를 바탕으로 제도개선에 나설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김현권 의원은 “농업계에선 농축산업분야 외국인 노동자 도입쿼터를 늘려달라고 수년째 요구하고 있으나 2018년 도입쿼터는 작년과 동일한 6600명에 불과한 수준”이라며 “국무총리실 산하 외국인력정책위원회의 농축산업 외국인 근로자 쿼터를 최소한 12000명 정도로 늘릴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그는 또 “더 이상 외국인 노동자들을 음지에 방치하기 보다는 중요한 우리 영농인력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위한 다양한 대책이 뒷받침돼야 한다”면서 “현장 수요에 턱없이 모자란 비현실적인 외국인 노동자 궈터 설정은 불법을 부추기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부실과 갈등을 키우고 있다”고 강조했다.

농촌지역 외국인노동자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엄진영 박사는 개인적 의견을 전제로 “현재로는 불법외국인노동자에 대한 묘책은 당장 없는 것 같다”며 “하지만 관계된 부처가 실질적으로 잘 운영해 조율을 한다면, 단기간 계절노동자 제도는 중장기적으로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까지 연구결과에 따르면, 외국인 노동자의 문제는 중장기적으로 관리감독과 교육이 안 되는 면에서 기인한다고 본다”며 “농촌 인력문제 해결을 위해 이를 총괄할 수 있는 ‘농업고용센터’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저작권자 © 데일리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