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정권 유지나 재창출 도구 전락 우려…정치적 중립 지켜야"

'상명하복' 주장엔 "상급자 지시, 국민 이익 앞설 수 없다" 질타

[연합뉴스TV 제공]
이명박 정부 시절 불법 댓글 활동을 벌인 '사이버 외곽팀(일명 민간인 댓글부대)'을 관리한 국가정보원 직원들이 1심에서 모두 실형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정계선 부장판사)는 22일 국가정보원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국정원 직원 장모씨와 황모씨 혐의를 대부분 유죄로 판단하고 각각 징역 1년6개월과 징역 1년2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자격정지 1년씩도 선고했다.

장씨 등은 원세훈 전 원장 시기인 2009∼2012년 다수의 사이버 외곽팀 관리 업무를 담당하면서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게시글이나 댓글 등을 온라인에 유포하도록 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들은 외곽팀 활동 실적을 부풀리려고 실제 존재하지 않는 '유령' 외곽팀을 마치 활동한 것처럼 허위 보고한 혐의(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도 받았다.

장씨는 2013년 원 전 원장의 국정원법 위반 등 사건 1심 재판에서 자신의 불법 트위터 활동과 외곽팀의 존재를 감추려고 위증한 혐의도 있다.

재판부는 "국정원은 대통령 지시를 받는 기관으로서 막대한 예산과 광범위한 조직을 가진 데다 그 조직이나 예산, 업무수행이 공개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자칫 방심하면 정권 유지나 재창출의 도구로 전락하기 쉽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정원 직원은 직무 영역이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정치적 중립 의무를 지켜야 하고 정치관여 활동을 회피하거나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특히 "피고인들은 국민의 안전 보장을 위해 사용돼야 할 돈과 조직이 오히려 국민을 공격하고 눈과 귀를 가리는 데 사용됐음에도 상부 지시라는 이유만으로 적법성에 대한 최소한의 고민도 없이 적극적으로 범행을 실행했다"고 질타했다.

아울러 "피고인들의 '상명하복' 주장은 조직 내 인사나 평가에서 불이익을 피하려고 어쩔 수 없었다는 취지에 불과하다"면서 "상급자의 지시가 법이나 국민 이익에 결코 앞설 수는 없다"고 꼬집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상명하복 문화를 과도하게 고려한다면 이 사건처럼 국정원에서 장기간 조직적으로 위법행위가 이뤄지는 사태의 반복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국정원에서 돈을 받고 외곽팀장으로 활동한 민간인 송모씨 등 3명에게도 각 징역 8개월∼10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사회적으로 미치는 악영향이 작지 않았음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댓글 활동에 가담한 국정원 퇴직자 단체 양지회 전 회장 이상연·이청신씨에게는 각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씩을 선고했다.

양지회 노모 전 기획실장에겐 징역 10개월의 실형을 선고했지만 건강 상태를 고려해 법정 구속하진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국정원 때문에 수동적으로 범행에 응한 게 아니라 보수정권의 세력을 강화하고 국정원으로부터 운영 지원을 받을 목적으로 조직적으로 범행했다"고 판단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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