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구인 "태아도 생명체" vs 법무부 "모체에 부속된 생명"

정부, 별도로 낙태실태 7∼8월 조사…분석후 10월 공개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에 대한 위한 여부를 가리는 공개변론이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데일리한국 전현정 기자] 헌법재판소 낙태죄 위헌소송 공개변론이 24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시작됐다.

낙태죄의 위헌 여부는 올해 9월 이전에 결론이 나올 전망이다. 통상적으로 헌재의 결론은 공개변론 이후 3개월 이내에 내려진다.

이번 헌법소원은 의사 A씨가 2017년 2월에 제기했다.

현행 형법 269조 1항(자기낙태죄)은 임신한 여성이 낙태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형법 270조 1항(동의낙태죄)은 의사가 임신한 여성의 동의를 받아 낙태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하도록 돼있다.

앞서 A씨는 2013년 '동의낙태죄'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처벌 받았다.

A씨는 이번 헌법소원서에 "태아는 모(母)와 동등한 수준의 생명이라고 볼 수 없어 생명권의 주체가 될 수 없고, 여성 신체의 완전성에 관한 권리와 모성을 보호받을 권리를 침해한다"고 적었다.

현행 민법은 태아가 출생한 후부터 각종 권리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규정한다.

A씨측 김수정 변호사는 "태아는 그 생존과 성장을 전적으로 모체에 의존하므로 태아가 모(母)와 별개의 생명체로서 동등한 수준의 생명이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A씨측 강남석 변호사는 "태아의 생명권과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조화롭게 해석해야 하는데 낙태죄는 임산부의 자기결정권만 일방적으로 희생하도록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낙태죄 합헌 입장인 법무부는 태아도 낙태 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으며 모자보건법에 따라 예외적으로 낙태 시술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정부법무공단 소속 김영두 변호사는 "태아는 모(母)와 별개의 생명체이므로 생명권을 보호받을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헌재는 이날 변론내용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심리에 돌입할 방침이다.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에 대한 위한 여부를 가리는 공개변론이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편 이와 별도로 보건복지부(복지부)는 이날 인공임신 중절수술 실태를 조사해 10월에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7∼8월에 여성 1만명을 대상으로 온라인을 통해 인공임신 중절수술 실태를 조사하고 면밀한 분석을 거쳐 10월에 결과를 공개하겠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공임신 중절수술 실태를 조사해 발표한 것은 지난 2005년 34만2000건과 2010년 16만8000건이 전부다.

그러나 정부의 공식발표 자료는 의사들의 추정치와 큰 차이가 나고 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우리나라의 하루 평균 낙태수술 건수를 약 3000건으로 추정했다. 연간으로 따지면 100만건을 훌쩍 넘긴다.

이런 차이는 대부분의 낙태수술이 불법이라는데 원인이 있다.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위헌소송 공개변론이 예정된 2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모두를 위한 낙태죄폐지 공동행동' 회원들이 '낙태죄는 위헌이다!' 기자회견을 열고 낙태죄 위헌 결정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우리나라에서 낙태죄 논란은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낙태죄'는 24일 헌재의 공개변론을 계기로 다시 화제가 됐다.

국내 여성단체들의 연합체인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공동행동)은 이날 오전 11시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위헌 선언 및 위헌 결정 촉구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공동행동은 "낙태죄를 폐지하고 모든 이들이 성적 권리와 삶의 권리, 임신출산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가질 수 있는 정의를 실천하라"고 촉구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은 이날 '낙태죄는 위헌이다'라는 제목의 논평을 통해 낙태죄 폐지를 촉구했다.

여연은 "임신을 지속할 수 없는 수많은 사회적·경제적 조건들 속에서 여성만을 처벌하는 낙태죄는 여성들의 삶을 뿌리부터 위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여연은 "여성에게만 책임을 묻는 낙태죄에 대한 여성들의 분노가 매우 거세다"면서 "누구나 원하는 시기에 임신하고 아이를 낳아서 잘 기를 수 있는 사회로 나가기 위해서는 여성에게만 그 책임을 전가하는 낡은 관점의 낙태죄는 폐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낙태법유지를 바라는 시민연대' '낙태반대 운동연합' 등의 회원 5명도 이날 헌법재판소 앞에서 하루 종일 낙태죄 존치를 촉구했다. 이들은 낙태로 인해 숨진 태아의 사진이 인쇄된 피켓을 손에 들었다.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위헌소송 공개변론이 열리고 있는 2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는 찬반 집회가 열렸다. 사진 아래쪽은 '모두를 위한 낙태죄폐지 공동행동' 회원들이다. 사진 위쪽은 '낙태법 유지를 바라는 시민연대' 회원들이 피켓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연합뉴스
헌재가 낙태죄의 위헌 여부를 최종 판단하면 이래저래 사회적 파장이 일 전망이다.

앞서 헌재는 2012년 8월 '낙태죄는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찬반양론이 4:4로 팽팽하게 맞섰다.

당시 헌재는 "태아는 그 자체로 모(母)와 별개의 생명체이고,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므로 생명권이 인정돼야 한다"고 선고했다.

그러나 현재의 헌재는 재판관 9명중 위헌 정족수인 6명이 낙태죄 손질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이진성 헌재소장은 지난해 인사청문회에서 "일정 기간 내에는 낙태를 허용하는 방향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김이수·강일원·안창호·김창종·유남석 재판관도 "태아의 생명 보호와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조화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헌재는 지난 1월 보건복지부(복지부)와 여성가족부(여가부) 등 관련 정부 기관에 의견을 묻는 공문을 보냈다.

이에 복지부는 전화통화로 '의견이 없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반면 여가부는 "여성의 기본권 중 건강권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현행 낙태죄 조항은 재검토돼야 한다"는 요지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낙태죄와 관련해 여가부가 의견서를 낸 것은 처음이었다.

여가부는 "헌법과 국제규약에 따라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재생산권, 건강권은 기본권으로서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가부는 "형법 제269조 제1항 및 제270조 제1항이 규정하는 낙태죄는 태아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여성의 이러한 기본권을 제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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