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관 직원이 항공권 업그레이드 받고 세관 통과 눈 감아줘"

한진그룹 총수 일가 관세포탈 혐의를 조사 중인 관세청 조사관들이 23일 오후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전산센터에서 압수수색을 마치고 압수품을 차량으로 옮기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가 해외에서 물건을 들여오면서 관세를 탈루했다는 의혹이 대한항공[003490]과 세관 당국의 유착·공모 의혹으로 번지고 있다.

세관 직원들이 대한항공으로부터 항공권 좌석 업그레이드(승급) 등 혜택을 받고 조 회장 일가 물건에 대한 세관 검사를 묵인해 줬다는 의혹이다.

이 같은 의혹에 관세청이 서둘러 내부 감찰에 착수했지만, '셀프 감찰'을 믿을 수 없다며 검찰 등 수사기관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25일 대한항공 전·현직 직원 등이 모인 카카오톡 익명 제보방 등에는 "세관 직원들이 조 회장 일가 물품에 대해 세관 검사를 하지 않고 눈 감아 준 것은 30년 넘게 이어져 온 커넥션(유착)"이라며 "이번에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내용의 글이 잇따랐다.

이들은 "패밀리(조 회장 일가) 짐은 그냥 입국장 통과다. 세관 직원과 (대한항공 의전팀 직원이) 눈짓을 주고받고 그냥 통과한다", "세관 직원과 짐 옮기는 직원들 사이에 커넥션이 있다는 증거가 있다" 등 제보를 올렸다.

공항 직원전용 통로를 통해 조 회장 일가 물건을 반입한다는 의혹에는 "큰 짐은 직원전용 통로의 엑스레이 검사대를 통과하기 어려워 일반 입국장을 통해 나가는데, 이때 세관 직원들이 검사 없이 통과시켜 준다"고 했다.

이같은 일은 대한항공과 세관의 유착 때문에 가능하다는 게 직원들의 주장이다.

대한항공은 세관 직원들이 해외로 나갈 때 좌석 업그레이드 등 혜택을 주고, 일정 시기마다 '양주 회식'을 시켜주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세관을 '관리'하는데 이렇게 유착된 세관 직원들이 관세 검사를 눈감아 주는 게 관행이라는 것이다.

실제 이런 정황을 의심케 하는 대한항공 직원의 사내 이메일도 공개됐다.

공개된 이메일은 인천본부세관 모 과장이 항공기 좌석을 맨 앞자리로 옮겨 달라는 요청을 했고, 이후 이 요청사항이 반영됐다는 내용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같은 등급 내에서 좌석 위치를 조정하는 것은 일반인도 요청하는 민원이지만, 만약 이코노미석을 비즈니스석으로 업그레이드해주는 방식의 혜택이 주어진 사례가 있다면 불법"이라고 말했다.

법조계 관계자도 "세관 통과를 대가로 좌석 업그레이드를 받았다면 처벌 대상이 될 수 있고, 동급 내 좌석 조정의 경우라도 직무 관련성이 있는 기관에 편의를 요구한 경우라면 기관 내에서 징계 사유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관세청은 이날 세관과 대한항공의 유착 의혹이 불거지자 내부 감찰에 착수했다.

이런 조치에 "관세청 수사가 기대된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관세청 직원들도 어차피 한통속"이라며 불신하는 목소리도 컸다.

최근 관세청이 벌인 압수수색 등 한진 일가에 대한 조사에 대해서도 "관세청이 당해야 할 압수수색을 자기들이 하고 있다"거나 "이 건은 검찰로 넘기던가 재벌가 특검팀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며 불신을 드러내는 의견이 많았다.

한 제보자는 "국제선 항공기가 도착하면 세관 직원들이 항공기에 들어와 신고 안 된 물품이 있는지 조사하고 세금을 매기는데 수십 년간 조 회장 일가 개인 물품을 무단으로 들여왔는데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관세청이 개설한 카카오톡의 익명 '제보방'에도 불똥이 튀었다.

일부 직원들은 "이번 건이 제대로 터지면 세관도 다친다. 대부분 연루돼 있어 제보하면 증거 은폐 가능성이 있다"며 관세청 제보를 꺼리는 움직임도 보인다.

관세청이 유례없는 재벌가 압수수색과 내부 감찰까지 벌이며 한진 일가의 관세 탈루 의혹을 파헤치고 있지만, 이런 불신 속에 결국 경찰·검찰 등 수사기관이 수사에 나서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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