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범사업 참여기관인 '사전의료의향서실천모임' 찾아

일대일 상담 원칙 강조…작성 내용 변경·취소 손쉬워

"개인의 삶과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기회 되길"

14일 찾은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행정동 2층에 위치한 '사전의료의향서실천모임' 상담실에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다. 사진=고은결 기자
[데일리한국 고은결 기자] '선택하는 죽음', '맞이하는 죽음'에 대한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지난 10월 23일 시작된 연명의료결정법 시범사업이 내년 1월 15일까지 이어진뒤 2월4일 본격 시행을 앞두고 '선택하는 죽음'이 사회 이슈로 급부상하고 있다.

15일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8일 기준으로 전국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작성자는 4066건으로 집계됐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임종기에 들어서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빠졌을 때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등 4가지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미리 밝혀두는 서류다.

기자는 지난 14일, 시범사업의 참여 기관 중 한 곳인 서울 중구 사전의료 의향서 실천모임을 방문해 '한 장 서류의 무게'를 체감해봤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신분증을 지참해야 한다. 대기 시간 없이 상담을 받으려면 시범사업 참여기관에 미리 전화해 상담시간을 예약하면 된다. 19세 이상 성인은 전문가와의 상담을 거쳐 누구나 작성할 수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서류. 사진=고은결 기자

◇입소문에 상담실 찾고…'임종기 환자 대상' 잘 몰라

"가볍게 '그냥 한 번' 써보시려는 생각은 안되고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기 앞서 사전의료의향서실천모임 사무국에 전화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한 번 써보고자 연락드렸는데요"라고 말하자, 이같이 친절하면서도 단호한 답변이 돌아왔다. 아차 싶어 "진지하게 작성해보고자 연락드렸습니다"라고 정정하자, 친절한 방문 안내 설명이 이어졌다.

14일 오전 10시30분경 들어선 사전의료의향서실천모임 상담실에는 이인자 사무국장을 비롯한 상담사 4명과 상담 받기 위해서 찾아온 6명의 방문객이 있었다. 시범사업 이후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운영되는 사전의료의향서실 상담실에는 일평균 25명에서 30명, 많을 때는 40명까지 발걸음을 한다는 전언이다. 사전연명의료 의향서는 작성 후 변경 및 철회가 가능하지만, 상담사들은 방문객들의 완벽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혹여나 죽음에 대한 인식이 가벼워지거나 생명 경시 풍조로 번질까 우려해서다.

사전의료의향서실천모임의 이인자 국장은 서울강북 여성인력개발센터장 출신이며, 20여명의 소속 상담사들은 간호사, 교사, 언론인 등 전문직이었던 퇴직 여성 시니어들이다. 이들 모두 5년 이상의 상담 경력을 가진 베테랑으로, 대부분 70~80대인 고령의 방문자들을 위해 정확한 발음과 빠르지 않은 속도로 하는 친절한 설명 등이 인상 깊게 각인됐다. 방문객들은 최소 20분 이상 전문가들에게 상담과 설명을 듣고, 충분히 숙지한 후 본인의 의사 결정에 기반해 서류를 작성하게 된다.

사전의료의향서실천모임 관계자에 따르면, 상담실을 처음 방문할때부터 연명 의료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확고한 생각을 갖고 오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또한, 언론에서 시범사업 소식을 접하고 찾아오기보다는 지인의 이야기를 듣고 찾아오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이 때문에 상담가들은 연명의료결정법에 대한 자세한 설명에 공을 들일 수 밖에 없다.

특히 방문객들은 연명의료중단의 대상이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로 국한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대다수라고 한다.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란 회생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않으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돼 사망에 임박한 상태에 있다고 '의학적 판단'을 받은 환자를 말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작성자의 개인정보 기입란을 비롯해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 선택 △호스피스의 이용 계획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의 설명사항 확인 △환자 사망 전 열람허용 여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보관방법 동의란 등 항목으로 구성됐다.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 항목의 경우, 4가지 연명의료 중 원하는 항목만 '중단'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이 사무국장은 "활동보조인과 함께 상담실을 찾은 시각장애인 어르신에게 일일이 음성으로 설명을 드리고 이해를 도왔던 사례가 가장 인상 깊었다"며 "이 밖에도 부인과 동행한 청각장애인 어르신, 휠체어를 타고 찾아온 어르신 등 다양한 분들이 이 곳을 찾아왔다"고 말했다. 아울러 내년 2월에 본격 사업이 시행되는데도 불구, 시범사업 기간에 급하게 찾아오는 이들 중에는 주변에서 병원 중환자실에 장기간 입원한 이들을 보고 오는 이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기자는 착잡하면서도 다소 홀가분한 마음으로 사전연명의료 의향서를 작성했다. 항목 선택에 잠시 고민하기도 했지만 그동안 생각해온 바가 있어 의향서 작성이 망설여지거나 어렵지는 않았다. 20대의 나이에 죽음과 죽음 이후를 생각해보다가 너무 때이른 고민을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시 스치기도 했다. 임종기에 국한된 상황에서의 결정이지만, 생사와 직접 연결된 항목을 스스로 결정한다는 행위의 무게감 때문일까. 상담실을 들어설 때 발걸음만큼 나가는 발걸음역시 마냥 가볍지만은 않았다.

동의를 얻고 촬영한 14일 오전 '사전의료의향서실천모임' 상담실 내 모습. 사진=고은결 기자

◇"본인의 확실한 의사결정 위해 '일 대(對) 일 상담'해야"

사전연명의향서실천모임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에 앞서, 상담사 한 명이 여러 명의 방문객을 응대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일 대 일 상담'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지인을 덩달아 따라오거나 분위기에 휩쓸려 사전연명의료 결정서의 충분한 확신이 없이 작성하는 사례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례로 과거 상담실을 방문했던 한 노부부 중, 남편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부인이 상담사에게 "배우자가 강요해서 찾아왔지만 작성하고 싶지 않다"고 토로해 작성을 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또 최근에는 경기 남부 지역 경로당에서 단체로 찾아온 이들 중, 유독 쭈뼛거리는 한 명을 포착하고 상담을 해보니 연명의료결정법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덩달아 따라온 경우였다고 한다. 여기에 '호스피스 결정 여부'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을 듣기도 전에 '친구가 (동의)하면 나도 하겠다'고 우긴 방문객도 있었다고 한다.

이 사무국장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은 본인의 확실한 의사 결정이 기반으로 돼야 하며 개인 노인의 인권 문제나 생명 경시 풍조와도 연관되기 때문에 일대일 상담이 필수적"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연명의료결정법 시행이 개인의 삶과 죽음을 더욱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분위기에 일조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신중하게 작성해야…변경·철회는 손쉬워

40여분 간의 상담이 끝난 후 받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접수증에는 사전의료의향서실천모임의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연명의료에 대한 생각이 바뀐다면 이 번호로 연락해 언제든지 변경 및 취소가 가능하다는 당부도 잊지않았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자들은 내년 2월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후 전산시스템에서 언제든지 작성한 내용의 변경, 철회를 할 수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관련 기관을 직접 방문해야 하지만, 변경 및 취소는 이처럼 유선 상으로도 손쉽게 가능하다. 개인의 '죽음'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내용인만큼, 작성은 신중하게 진행하되 변경 및 철회는 유연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범사업 참여기관 방문 전부터 개인적으로 '연명의료 일체를 하지 않겠다'는 소신이 뚜렸했음에도 불구, 막상 변경 및 철회가 가능하다는 설명을 거듭 듣자 이유 모를 안도감을 느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단 한 장의 서류지만, 상담사들의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자신의 삶의 마지막을 어떤 방식으로 맞이할 지 반추해 볼 흔치 않은 기회를 제공했다.

한편, 시범사업 기간 동안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상담·작성·등록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기관들은 향후 보고서를 통해 문제점 등의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현재 비영리 단체인 각당복지재단·대한웰다잉협회·사전의료의향서실천모임, 의료기관인 신촌세브란스병원·충남대병원이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더라도 향후 존엄사를 선택하려면 병원에 입원한 후 의사의 판단 등을 거쳐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해야 한다. 담당의사와 해당분야 전문의 1명으로부터 임종과정에 있다는 의학적 판단을 받은 환자는 4가지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하는 결정을 할 수 있다.

시범사업이 끝나고 내년 2월 4일부터 연명의료결정법이 본격 시행에 들어가 사전연명 의료의향서 등록기관이 확대되면 서명자 또한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복지부 관계자는 "연명의료결정 제도가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임상현장에서 법을 잘 이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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