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가백신 공급사 늘며 제약사 간 경쟁 '과열'

백신접종 가격파괴 사례까지…소비자 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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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한국 고은결 기자] "모든 제약사는 물론이고, 의원 입장에서도 이런 치킨게임 같은 상황이 결코 좋지는 않을 겁니다."

일교차가 10도 안팎으로 벌어지는 들쭉날쭉 날씨가 이어지면서 독감(인플루엔자) 예방 접종을 하려는 발길이 늘고 있다. 수요가 특정 계절에 몰리는 독감백신의 경우, 수요-공급이 일치하지 않아 병원에 헛걸음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올해 독감 백신의 국내 공급량은 약 2000만명 분으로, 연간 독감백신 수요량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매년 되풀이 됐던 독감백신 품귀 현상은 해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달부터는 만 65세 이상과 6개월 이상 59개월 이하 영유아를 대상으로 3가 독감백신의 무료 접종이 실시됐다. 최근에는 병의원에서 유료 접종하는 4가 독감백신에 대한 관심도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4가 독감백신을 납품하는 제약사들의 속내는 여전히 실타래처럼 복잡하기만 하다. 독감백신 시장에 뛰어든 경쟁사가 늘어나며 가격 경쟁이 본격 페달을 밟았기 때문이다.

29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서는 GSK, 동아에스티, 녹십자, SK케미칼, 보령바이오파마, 일양약품, 한국국백신, 사노피파스퇴르 등 8개 기업이 9개 품목을 납품 중이다.

4가 독감백신은 기존의 3가 독감백신보다 예방범위가 넓은 차세대 백신으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A형 2종(H1N1, H3N2)과 B형 2종(빅토리아, 야마가타)을 모두 예방해준다.

국내 독감백신 시장은 3가 독감백신과 4가 독감백신을 합산해 연간 6000억원 규모로, 올해는 더욱 팽창할 전망이다. 3가 독감백신을 맞고도 B형 독감에 걸리는 사례가 늘면서 의료계는 4가 독감백신 접종을 권장하고, 소비자들도 4가 백신을 선호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3가 백신보다 비싼 4가 독감백신은 최근 공급 업체 수가 늘며 가격 인하 흐름이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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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사들의 4가 독감백신 평균 공급가는 1만5000원 수준에서 1만원 초반대로 내려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제약사들은 일선 영업현장과 소비자 마케팅을 통해 각사 제품의 특장점을 강조하는 것 외에는 가격전에서 타격을 줄일 마땅한 해법이 없는 실정이다.

4가 독감백신을 둘러싼 가격 경쟁은 의원가로도 번졌다. 올해 4가 백신의 평균 접종가격은 3만~4만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서울의 A의원은 인터넷 상에서 4가 독감백신을 '1만5000원'에 접종할 수 있다고 홍보해 화제가 됐다. 성동구에 위치한 B의원도 2만원에 4가 독감백신 접종을 실시한다고 홍보 중이다. 일각에서는 이처럼 지나친 '가격파괴'가 주변 병·의원들에 압박으로 돌아오고, 소모적인 경쟁전으로 번질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1만원대부터 4만원대까지, 널뛰기하는 4가 독감백신의 접종가에 소비자들도 촉각을 세우고 있다. 성동구 옥수동에 거주하는 50대 직장인 유모씨는 "작년에는 4만원 정도 내고 4가 백신을 맞았는데,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어 올해는 무조건 더욱 저렴하게 접종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에 거주하는 30대 주부 이모씨는 "서울에서는 2만원도 안되는 가격에 4가 백신을 접종할 수 있는 병원이 있다는데, 평소 다니던 동네병원에서는 3만5000원이었다"며 "너무 큰 가격 차이에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이같은 4가 독감백신 가격 경쟁이 소비자와 시장 양측에 모두 그리 긍정적인 상황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천차만별인 접종가격은 소비자에게 혼란을 부추기고, 제약사와 의원에는 과도한 출혈 경쟁을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사실 플루백신은 항상 경쟁이 심했던 품목"라며 "시장의 원리기 때문에 가격 하락을 막을 수는 없지만, 제약사와 의원 모두 이런 치킨게임이 좋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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