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량왜관 전시관 마련, ‘미래세대 교육의 장’ 돼야

평화 교역무대, 초량왜관 역사서 미래 가치 발견

강석환 초량왜관연구회장. 사진=윤나리 기자
[부산=데일리한국 윤나리 기자] “부산의 구름과 물은 바다 관문의 첫머리라, 백 길 되는 대마도의 큰 배들이 다투어 돌아오네, 금칠을 한 상자와 바구니 그리고 붉은 칠 한 우산, 종이 향기 기름 냄새가 나루 누각에 코끝을 찌르네….”

조선후기 김해에 유배 온 선비 이학규가 초량왜관을 보고 읊은 한시의 구절에서 당시 초량왜관은 조선시대 바다를 통해 세계와 교류하는 공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초량왜관은 1678~1876년 오늘날 대청동, 신창동, 광복동, 동광동에 걸쳐 10만평 규모로 설치된 교역지로, 조선이 중국과 함께 해금정책을 펴면서 일본과의 공무역과 사무역과 함께 교린정책을 펼치는 일선 외교의 현장이었다.

초량왜관은 부산포왜관, 절영도왜관, 두모포왜관에 이은 네 번째 왜관으로 용두산공원을 중심으로 동관, 서관으로 나눠 운영됐으며 대마도에서 온 500명의 성인 남성이 거주하며 매월 3일과 8일, 월 6회에 걸쳐 무역이 이뤄졌다. 대마도인들은 주로 면사와 인삼, 쌀을, 조선인은 은, 유황, 서양물품을 구입했다. 하지만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초량왜관은 일본인 전관거류지로 변했고 이로 인해 일제의 대륙 침략 교두보 역할을 하게 되면서 초량왜관의 200년 평화교역의 역사는 서서히 기억에서 잊혀지게 됐다.

부산초량왜관연구회는 초량왜관이 지닌 역사적 의미를 기억하고 부산 미래를 위한 초량왜관의 다양한 가치를 재발견해내는 민간 연구단체다. 지난 2009년 10월 봉생문화재단 창립 심포지엄에서 초량왜관연구회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향토학자 몇몇이 이듬해 2월 초량왜관연구회를 창립하게 된다.

초량왜관을 공부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100여명의 회원들은 월례 세미나, 왜관관련 역사유적지 답사, 문화재지킴이 특강, 학술대회, 책자 발간 등의 활발한 활동을 전개중이다.

초량왜관연구회 회원들은 매월 강독반 모임을 통해 초량왜관에 대한 스터디를 진행중이다. 사진=초량왜관연구회 제공
◇초량왜관, 조선이 주도한 국제 평화 교류공간

창립과정부터 함께 해온 강석환 초량왜관연구회장은 “초량왜관연구회는 순수하게 공부를 하는 모임으로 초량왜관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나아가 역사에서 미래의 길을 찾고 있다”며 “ ‘왜(倭)자 콤플렉스’가 생겨나면서 초량왜관은 조선이 주체적으로 조성한 평화적 교류공간이자 경제적·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교과서에 초량왜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현실을 바꾸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왜관이 초량에 있었기에 초량왜관이라 이름지어졌는데 동평관처럼 초량관이라 불러도 무방하다”며 “ ‘왜’자로 인해 생긴 잘못된 이미지를 재조명하기 위해 초량왜관연구회 명칭을 부산국제교류역사연구회로 부를 필요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초량왜관연구회는 매월 일본 대마도·나가사키·후쿠오카 등과의 탐방, 문화교류를 통해 점진적 변화를 이끌어내면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연구회는 특히 1641~1859년 쇄국시기에 서양과의 유일한 교류장소였던 나가사키 시 데지마의 50여년간의 복원과정을 탐방하고 일본과 같이 초량왜관 전시관 건립을 촉구하고 나섰다.

강 회장은 “나가사키의 데지마는 쇄국시대의 유일한 무역창구로 초량왜관과 닮은꼴”이라며 “일본은 데지마를 단계적으로 복원해 지난해 10월 준공식을 개최해 역사전시관을 마련했는데 초량왜관도 전시관을 반드시 마련해 역사의 장이자 미래세대를 위한 교육의 장으로 활용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2017년 6월 실시한 나가사키 한일친선교류회 회원들과 친교 행사를 가졌다. 사진=초량왜관연구회 제공
◇초량왜관연구회, 관광콘텐츠 활용방안 등 정책 제안 ‘활발’

부산시는 초량왜관연구회와 지난 6월 초량왜관의 관광콘텐츠로서의 역할 및 활용방안을 논의하는 관광포럼을 개최하고 초량왜관 유적 복원사업 논의 결과를 바탕으로 내년에는 시 주도의 관광컨텐츠 활용화 방안 관련 용역을 시행할 방침이다. 현재 부산시는 옛 한국은행 부산지점 건물을 복합문화시설로 만들어 이곳에 초량왜관전시관 설치를 논의 중이다. 이외에도 연구회는 부산 중구청과 함께 초량왜관 종합안내도 설치 등 관련 정책 제안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강 회장은 부산 초량왜관이 지닌 지정학적 특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그는 “초량왜관이 있었던 부산 광복동은 유라시아 동쪽 국도 7호선 도로 끝에 위치한다. 200년 이상 국제 평화교류의 중심지였던 부산 광복동은 유라시아 동쪽으로 향하는 시종점이라는 사실을 관광객들에게 알리는 등 부산의 가치를 찾아 부여하고 부각시켜야 한다. 이러한 시도가 세계 속 부산에 대한 자부심이 되고 교육의 장으로도 활용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 선조들이 겪었던 가슴아픈 역사는 절대 잊어선 안되고 동시에 우리세대는 역사를 거름삼아 희망찬 미래를 열어갈 책무가 있다”며 “조선과 일본사이, 평화와 교역의 무대였던 초량왜관 역사를 통해 역사를 현재화해 도시의 미래 자원을 활용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초량왜관연구회는 현재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이면 회원 중심의 스터디 모임과 초량왜관에 관련한 학술정보와 심도있는 내용을 다루는 강독반 등을 운영 중이다. 이들은 아픈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버린 초량왜관의 역사를 거름삼아 한일 관계를 넘어 부산의 희망찬 미래를 그려나가는데 주력하고 있다.

지난 6월 초량왜관연구회는 시, 중구청 관계자 등과 함께 초량왜관 현장 답사를 실시했다. 사진=초량왜관연구회 제공
또 초량왜관해설사를 양성해 초량왜관에 관심을 가지고 찾아온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왜관의 답사뿐만 아니라, 당시의 문제의식을 함께 느끼며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역사 추체험 과정을 준비 중이다. 특히 초량왜관은 조선의 통신사와 함께 현재와 미래에 있어 한일관계의 물꼬를 터는 데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강 회장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과의 교류 역사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조선시대 당시 일본과의 교류 역사가 알려지지 않은 채 묻혀있는 자료가 매우 많다”며 “우리 연구회가 가치있는 역사적 자료를 찾아가는데 보탬이 되길 기대하며 많은 분들이 연구회에 동참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2016년 7월 나가사키 데지마에 답사를 떠난 초량왜관연구회 회원들. 사진=초량왜관연구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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