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유관 지나는 자리에 창고 임대해 40m 길이 땅굴 파

훔친 기름 시중보다 200∼250원 싸게 주유소에 판매

충북 옥천군 한 창고에 이모(50)씨 일당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 3월부터였다.

좁은 창고에 삽과 호미를 들고 모인 남자 6명은 열심히 주변 땅을 파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한 달 반째.

무언가를 발견한 이들은 쥐고 있던 호미를 땅 밖으로 내던지고 환호성을 질렀다.

45일 동안 맨땅을 파낸 이들이 발견한 것은 깊숙이 묻힌 송유관이었다.

이들은 곧바로 40m 길이 땅굴과 송유관을 고무호스로 연결해 기름을 빼냈다.

혹시라도 범행이 발각될까 봐 하루에 약 1∼2만ℓ만 훔쳐 화물트럭을 개조한 기름탱크에 실었다.

맨손으로 어렵게 뚫은 땅굴 주변에는 폐쇄회로(CC)TV까지 달아 불시 단속에 대비하기도 했다.

이들이 이렇게 3달 동안 훔친 기름은 무려 37만ℓ.

시중 판매가격으로 4억8천만원에 달했다.

이들은 정성스레 훔친 기름을 싣고 전북 익산의 주유소 2곳을 찾았다.

주유소 주인들은 출처가 불분명한 기름을 시세보다 200∼250원 싸게 사들여 되팔았다.

서로에게 득이 되는 이들의 은밀한 거래는 범행을 눈치챈 경찰 단속에 한 달도 안 돼 탄로 났다.

경찰은 훔친 기름이 주유소에 흘러들어 간 사실을 확인하고 이들이 파낸 땅굴에서 고무호스와 CCTV 등을 압수했다.

이씨는 "예전에 하던 사업이 망해서 먹고 살기가 어려웠다. 철로 주변에 송유관이 묻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는 사람들과 땅을 팠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씨 등 2명을 송유관 안전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범행을 도운 김모(40)씨와 주유소 주인 등 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3일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기존 송유관 절도는 중장비를 이용해 땅을 파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들은 한 달 넘게 손으로 땅을 팠다"며 "대한송유관공사에 이 사실을 통보하고 또 다른 절도 현장이 없는지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익산=연합뉴스)

저작권자 © 데일리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