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지우는 '이레이저' 다량 설치…KAI "보안규정 따라 운용한 것"

(서울=연합뉴스) 임헌정 기자 = 검찰이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방산 비리 혐의를 잡고 수사에 착수했다. 문재인 정부가 방위사업 분야 개혁에 강한 의지를 내비친 가운데 검찰이 본격적으로 방산 비리 척결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14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방위사업수사부(박찬호 부장검사)는 이날 오전 원가조작을 통해 개발비를 편취 혐의(사기)와 관련해 KAI의 경남 사천 본사와 서울사무소를 압수수색했다. 사진은 이날 오전 KAI 서울사무소. 2017.7.14 kane@yna.co.kr
수백억원대 원가 부풀리기와 하성용 대표의 횡령·비자금 조성 의혹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조직적으로 증거인멸을 시도한 정황을 검찰이 포착해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19일 사정 당국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방위사업수사부(박찬호 부장검사)는 지난 14일 경남 사천의 KAI 본사와 서울사무소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다수 직원의 컴퓨터에 데이터 삭제전용 프로그램이 설치된 것을 확인했다.

이 삭제 프로그램은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무작위로 생성한 데이터를 수차례 덮어쓰기 하는 방식으로 전에 있던 데이터를 복구하지 못하도록 하는 '이레이저' 프로그램으로 알려졌다. 지금은 없어진 옛 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이 2010년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을 당시 압수수색에 대비해 이레이저 프로그램을 가동한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검찰은 2015년 감사원의 수사의뢰 이후 지속적인 내사를 받아오던 KAI가 최근 직원들에게 삭제 프로그램을 나눠주고 사용하게 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회사 차원의 조직적인 증거인멸 시도와 관련된 것인지를 파악 중이다.

검찰 관계자는 "최근 KAI에서 삭제전용 프로그램을 대량 구입해 증거인멸에 나선다는 첩보가 입수돼 압수수색을 나가게 된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현재 검찰은 KAI 압수수색 때 확보한 하드디스크 복사본을 대상으로 디지털 증거 분석(포렌식) 작업을 벌이고 있다.

검찰은 복구 작업을 통해 KAI 임직원들이 이 삭제 프로그램을 실제 사용했는지, 사용했다면 어떤 자료들을 없애려 한 것인지를 파악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KAI는 이레이저 프로그램을 설치해 사용한 것은 방위산업 보안업무훈령에 따른 조치였을 뿐 다른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KAI 관계자는 "관련 규정에 따라 2009년부터 개인용 PC에 파일 완전소거 프로그램을 설치해 사용해왔다"며 "현재 사용 프로그램은 무료 제품으로, 최근 별도로 프로그램을 구매한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 프로그램을 PC에 깔지 않으면 오히려 보안감사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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