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사기꾼, 출처 자료 등 위조하며 20세기 거장 위작 200여점 팔아치워

美 딜러, 진작 구매해 베낀 뒤 진작은 유럽에 되팔고 위작은 아시아에 넘겨


[데일리한국 황혜진 기자] 미술품 위작(僞作)은 예술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도용과 복제에 대한 기록은 기원전 2000년경부터 발견된다. 페키니아인들은 이집트나 그리스에서 사용되던 이미지를 도용해 도자기나 금속제품에 사용했으며 로마인들도 그리스의 조각을 복제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중세 시대 작품이 위조됐고 또 근대에는 르네상스 작품이 위조됐다.

15세기에 이미 전문 딜러가 등장하고 미술품 경매가 시작됐던 유럽의 미술 시장에도 위작 사건은 여전히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최근에는 중국에서 위작이 조직적으로 제작돼 전 세계로 유통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중국도 위작의 역사가 깊다.

최병식 경희대 미술대학 교수는 자신의 책 ‘미술품감정학’(동문선)에서 "중국에서부터 고대 유럽, 중동 지역에 이르기까지 역사상 수많은 위작 전문가들이 곳곳에서 활약했다“며 ”이들의 세계는 탐욕으로 가득 찬 것이기도 했지만, 거들먹거리는 컬렉터들과 딜러들을 조롱하는 것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고(故) 천경자 화백의 둘째 사위 문범강 조지타운대 미술과 교수의 말마따나 위작이 없는 세상은 오지 않는 것일까. ‘위작의 세계’ 연재 세 번째 기사에서는 비교적 최근에 크게 이슈화 됐던 해외 위작 사건 두 건을 위작 제작·유통 수법과 처벌 결과에 초점을 맞춰 집중 조명했다.


위작 작가 존 마이어트가 그린 모딜리아니의 '잔 에뷔테른'(왼쪽)과 마티스의' 팔 올린 누드'. 사진=존 마이어트 공식 홈페이지


치밀한 사기꾼과 가난한 예술가…10년 동안 손잡고 위작 200여 점 팔아치워

가장 치밀한 조작 수법으로 20세기 거장들의 위작 200여 점을 10년간 유통했던 존 드류(68·John Drewe)는 위작 사건을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드류는 위작 작가를 고용한 것은 물론이고 작품 진위 가리는 출처 자료들도 위조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에 기부를 하고 자료실을 출입을 허가받거나 사설 갤러리에 자료 관리자로 취업한 것이다. 그는 새롭게 그린 위작의 사진을 기존 기록물에 끼워 넣어 미공개작으로 둔갑시키기도 했다.

드류에게 고용돼 위작을 그렸던 화가 존 마이어트(70·John Myatt)는 처음에는 자신의 그림이 위작으로 팔리는 줄 몰랐다. 크리스티 경매에서 자신이 그린 그림이 25만 파운드(한화 약 4억 4,200만 원)에 낙찰된 사실을 알고 자신이 드류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드류가 2억 원 가량을 제시하자 계속해서 위작을 그렸다.


가난한 모작 전문가였던 존 마이어트(사진)는 존 드류를 만나 위작을 그리기 시작했다. 사진=존 마이어트 공식 홈페이지

이들은 1995년 9월 경찰에 체포됐다. 당시 드류의 집에서는 화가들의 서명을 모은 책이 발견되기도 했다. 자신의 범행을 부인하며 변호사를 해고하고 자신이 스스로 변호를 맡았던 드류는 1999년 사기, 위조 2건, 절도 1건 등으로 6년 형을 선고받고 2년을 복역했다.

반면 피카소, 샤걀, 자코메티, 마티스 등의 위작을 그린 마이어트는 체포되자마자 자신의 범행을 자백하고 번 돈을 반환한 뒤 드류의 유죄 입증에 협조했다. 마이어트는 사기죄로 1년 형을 선고받고 4개월간 복역하다 모범수로 출소했다. 출소 뒤에는 마이어트에게 그림 주문이 빗발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스타가 된 마이어트는 지난 2005년 런던에서 첫 번째 전시회를 열었는데 작품 당 850~4700파운드(한화 약 150만~832만 원)에 그림이 팔렸다. 이 두 사람의 이야기는 책으로 쓰이거나 방송으로 제작돼 더욱 널리 알려졌으며 마이어트는 지금도 화가로 활동 중이다.


폴 고갱의 '라일락'(1885) 진작(왼쪽)과 뉴욕 딜러 엘리 사카이가 제작한 위작.


뉴욕 딜러의 대담한 위작 유통…진작은 유럽에, 위작은 아시아에

뉴욕 맨해튼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던 딜러 엘리 사카이(63·Ely Sakhai)는 위작을 만들기 위해 우선 유명하지 않은 그림들을 사들였다. 그리고 중국 이민자들을 고용해 자신의 갤러리 위층에서 진작(眞作)을 베끼게 했다. 그렇게 제작한 위작은 몇 년 뒤 아시아 컬렉터들에게 팔고 진작은 유럽이나 미국 컬렉터들에게 팔았다.

예를 들어 르누아르의 ‘목욕을 한 소녀’ 같은 경우 사카이는 소더비에서 진작을 35만 달러(한화 약 4억 800만 원)에 구입해 베낀 뒤 위작은 도쿄 딜러에게 약 5만 달러(약 6,000만 원), 진작은 65만 달러(약 7억 6,000만 원)로 시차를 두고 소더비에 되팔며 약 35달러의 이득을 남겼다. 이런 방식으로 계속해서 위작을 유통해온 것이다.

그런데 사카이의 덜미가 붙잡히는 사건이 발생했다. 2000년 5월, 같은 그림이 소더비 경매와 크리스티 경매에 동시에 나온 것이다. 고갱의 ‘라일락’(1885)이라는 작품이었다. 감정 결과 크리스티에 나온 그림이 위작으로 판명됐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같은 해 9월 사카이를 그의 갤러리에서 체포했다. 사기 8건을 저지른 혐의였다. FBI는 그가 위작 거래로 350만 달러(약 40억 8,000만 원)의 이득을 취한 것으로 추정했다.

보석금을 내고 풀려난 그는 계속해서 위작을 유통해 2004년 또다시 체포됐다. 결국 사카이는 2005년 7월, 징역 41개월 형과 1,250만 달러(약 145억 7,0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고 그림 11점을 몰수당했다. 그는 출소 후에도 뉴욕에서 아트 갤러리를 지속적으로 운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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