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 드러낸 저수지 적지 않아… 송현저수지 고갈은 1982년 준공 후 처음

관정 뚫고 호스로 농지에 물 대는 풍경… 물 대지 못해 밭 작물 방치하기도

보령시를 관통하는 하천이 메말라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일부 경작지는 물 부족으로 마치 거북 등처럼 갈라져 있는 상태다.

[데일리한국 윤용진 인턴기자] 청초한 가을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한없이 높아져 있고 맑은 날씨 덕에 먼 산도 코 앞에 와있는 것처럼 가깝게 느껴진다. 이렇듯 도시 사람들은 최근의 맑은 가을 날씨를 한껏 즐기고 있지만, 추수를 앞둔 지방 농민들의 가슴은 타들어가고 있다.

평년 강수량의 절반에 불과한 최악의 가을 가뭄이 계속되고 있어서 식용수마저 모자라 제한급수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생활의 불편함은 일정 기간 참을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수분 부족으로 말라 비틀어진 농작물을 바라보는 농민들의 한숨은 커져만 가고 있다.

거의 두달 여 계속된 사상 최악의 가을 가뭄으로 전국이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9일부터 11일까지 전국적으로 단비가 내렸지만 가뭄 해소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부터 이달 6일까지 전국 누적 강수량은 754.3㎜로, 평년(1,196.6㎜)의 62%에 불과하다. 가뭄이 집중된 곳의 상황은 더욱 열악해 서울ㆍ경기의 평년 대비 누적 강수량 비율은 42%, 강원ㆍ충북 52%, 충남 49%에 그쳤다. 특히 충남은 서울ㆍ경기에 이어 두 번째로 비가 적게 내려 더욱 심각하다.

이에 <데일리한국> 기자가 13일 대표적인 물 부족 현상을 빚고 있는 충남 지역을 찾았다. 특히 피해가 큰 서산·태안·보령·홍성 등의 농촌 지역을 집중적으로 돌아봤다. 먼저 보령·서산·당진시와 서천·청양·홍성·예산·태안군 등 보령댐 광역상수도를 사용하는 충남 8개 시·군에 제한급수가 시행되고 있었다. 이들 지역은 지난 8일부터 수압을 조절, 20% 정도 줄여 급수하고 있다. 가뭄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올해는 물론 내년 봄 농사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돼 농민들은 더욱 애를 태우고 있다.

보령댐의 수위가 눈에 띄게 줄어들어 평소의 절반 가량의 저수율을 나타내고 있다. (노란원 표시 지점이 적정 수위)

12일 한국수자원공사 등에 따르면 이들 지역에 하루 20만톤의 생활·공업용수를 공급 중인 보령댐은 현재 저수율이 21.6%로 지난해 같은 기간 39.2%의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이날 전국 주요 다목적댐의 저수율은 소양강댐 44.2%, 충주댐 41.7%, 주암댐 36.9%, 대청댐 36.8%, 안동댐 33.2% 수준이다. 특히 기자가 본 태안 송현저수지는 이미 바닥을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송현저수지 물이 고갈된 것은 1982년 준공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먼저 태안 경작지를 둘러봤다. 무와 배추 등 밭 작물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농민은 물론 지원을 나온 공무원들까지 여기저기 관정을 뚫고 길게 호스를 깔아 농경지에 물을 대기 위해 열중인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나마 호스를 통해 물을 대는 곳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밭 작물이 메말라 방치돼 있는 곳도 적지 않았다. 또 천수만 인근에 바다를 메워 만든 간척지 논은 기본적인 물이 부족한데다 일부 용수에서는 염분이 섞여 나와 벼끝이 하얗게 말라가는 ‘염해’(鹽害)마저 겪고 있었다.

충남 홍성군 서부면의 한 농민은 “검정콩 재배를 하고 있는데 가뭄이 계속돼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면서 “물을 댈 수 없는 곳의 콩 수확량은 예년의 10% 정도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콩밭 옆에 한 달 전 심은 배추도 물이 부족해 생육이 좋지 못하고, 밭의 깨도 예년에 비해 알이 덜 찼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보령댐의 수위가 평소의 절반 가량에 머물고 있어 인근 지역 물부족 상태가 심화하고 있다. (노란원 표시 지점이 적정 수위)

보령시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콩과 깨를 키운다는 한 농민은 “그나마 논은 괜찮은 편이지만 밭은 영 아니다”며 “작년에 비해 수확량이 20%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오대산 근처는 더 심하다더라. 거기는 저수지가 바짝 말라서 논이나 밭이나 전부 꽝이다. 3분의 1은 넘게 버렸다고 한다”고 전했다.

극심한 가뭄 피해는 농사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보령댐 저수율이 예년의 절반 수준을 훨씬 밑도는 수준까지 떨어져 이 댐에서 물을 받아 쓰는 충남 8개 시ㆍ군 주민은 앞으로 최소한 6개월 간 제한급수에 따른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홍성의 한 식당 업주는 “그동안 가뭄을 여러 번 겪었지만 올해가 가장 극심하다”며 “최근에는 12시간씩 격일제 단수도 했다”고 전했다.

아파트 주민들도 앞으로 닥칠지 모를 보령댐 고갈을 우려하면서도 전례 없는 12시간 수돗물 단수 조치에 불만이 적지 않았다. 홍성군의 한 주민은 “보령댐 물을 사용하는 충남 8개 시ㆍ군 가운데 홍성군만 격일제 단수 조치를 해 주민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댐과 저수지를 통해 ‘물그릇’을 확보하면 가뭄 해소에 큰 도움이 된다”면서 “정부가 이제부터라도 중소형 댐과 저수지 건설을 공론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당초 정부는 2012년 3조원을 들여 2021년까지 전국에 14개 중소형 댐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가 지역 주민 및 환경단체들의 반발로 보류한 바 있다. 하늘만 원망하고 있을 때가 아닌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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