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나 간편히 즐기는 '스낵컬처', 대중문화 강타

'국민 콘텐츠' 웹툰은 '무빙툰' 등으로 진화 중

사진=유토이미지
[데일리한국 신수지 기자] 직장인 김현이(30) 씨는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스마트폰으로 웹소설이나 웹툰을 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점심식사를 하고 잠시 짬이 날 때에는 최근 인기가 높다는 웹 예능프로그램을 감상한다. 퇴근길에는 웹드라마를 한 편 보거나 TV프로그램을 짧게 잘라놓은 클립 영상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편당 한 시간이 넘는 TV프로그램이었다면 불가능했겠지만, 요즘에는 10~15분 분량의 영상들이 스마트폰 세상에 넘쳐나 자투리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다.

김 씨는 "스마트폰 없는 생활을 상상하기 어렵다"면서 "여가시간을 길게 갖기 어려울 때에도 짬짬이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많아 힘든 하루를 버틸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일권 작가의 무빙툰 '고고고'의 한 장면. 화면을 스크롤해 내리면 이미지와 글귀가 따라 움직인다. 사진=네이버 웹툰 캡처
김 씨의 자투리 시간을 책임진 이와 같은 콘텐츠들을 일컬어 '스낵컬처(Snack Culture)' 콘텐츠라고 부른다. 스낵컬처란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즐기는 문화생활 트렌드를 뜻하는 말이다. 지난 2007년 미국 잡지 '와이어드(Wired)'에서는 '패스트푸드처럼 쉽고 빠르며 가벼운 식사에 빗대어 소규모 문화 콘텐츠를 일컫는 말'로 소개됐다. 보다 짧고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진 콘텐츠를 내가 원하는 대로 골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스낵처럼, 출퇴근 시간이나 점심시간 등에 10∼15분 내외로 간편하게 문화생활을 즐기는 라이프스타일 또는 문화 트렌드다.

지하철역이나 병원 등에서 이뤄지는 작은 음악회, 직장인의 점심시간 등과 같은 자투리 시간에 즐길 수 있는 문화공연이나 레포츠로 시작해 온라인상에서 인기를 끌던 웹툰을 10분 미만의 모바일 영화로 제작하거나, 6부작 모바일 영화로 만들어진 것이 스낵컬처의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 한국인터넷진흥원이 공개한 '2014 모바일 인터넷 이용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스마트폰 사용자들은 하루 평균 2시간 51분을 스마트폰과 함께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89.1%는 동영상, 음악, 웹툰, 전자책 등을 즐기기 위해 스마트폰을 사용한다고 답했다. 이처럼 스마트기기가 대중화되고 관련 기술 또한 발전하면서 스낵컬처는 계속 진화하는 양상이다. 특히 10~15분 내외의 짧은 웹, 모바일 콘텐츠가 각광받으면서 웹툰뿐 아니라 웹소설, 웹드라마 등이 대표적인 스낵컬처로 날개를 달았다. 실제 한국콘텐츠진흥원은 ‘대한민국 콘텐츠 산업, 2015년을 전망하다’ 보고서에서 올 한 해 유행할 문화 콘텐츠 키워드로 ‘스마트 핑거 콘텐츠’를 꼽기도 했다.

배진수 작가의 '하루 세 컷' 로고.

서비스 업체 속속 증가…'승승장구' 웹툰

웹(온라인)을 매개로 배포되는 짧은 만화인 웹툰은 스낵컬처의 원조격이자 대표적인 콘텐츠로 꼽힌다. 실제 드라마로도 제작되며 널리 알려진 윤태호 작가의 '미생' 등 다수의 웹툰 작품들이 10억 조회수를 가뿐히 넘기는 기염을 토했다. 지난해 국내 웹툰 시장은 약 2,100억원 규모인데, KT경제경영연구소는 이 시장이 올해는 4,200억원, 2018년에는 8,805억원 규모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네이버 웹소설 페이지와 다음카카오의 웹소설 전문 앱 '카카오페이지'.
네이버와 다음 등 양대 포털이 포문을 연 웹툰 시장은 다양한 특성을 지닌 신생 웹툰 업체들로 확대되고 있다. 성인용 웹툰을 주 종목으로 하는 '레진코믹스'와 여성 독자들의 취향에 맞는 웹툰을 서비스하는 여성 전문 웹툰 플랫폼 '봄툰' 등이 사세를 넓혀가고 있고, 출판만화를 전문으로 사업을 전개해 온 서울문화사도 모바일 웹툰 플랫폼 '빅툰'의 문을 열었다. 이에 질세라 대형 업체인 네이버도 지난 2월 자사의 첫번째 사내 독립기업(CIC, Company-In-Company)으로 ‘웹툰&웹소설셀’을 선정할 정도로 웹툰 사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웹툰의 기세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이유로는 무엇보다 시간·공간의 제약이 없다는 점이 꼽힌다. 누구든 만화방에 가거나 서점에서 만화책을 사지 않아도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통해 손쉽게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실시간으로 달리는 댓글도 독자들을 웹툰으로 이끄는 요소다. 업계 관계자는 "댓글을 통해 작가와 독자간 소통아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기존 출판만화는 작가가 독자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이었다면, 웹툰은 (작가들이) 직접 독자들의 반응을 보고 반영할 수 있는 형태"라면서 "웹툰 아래 실리는 '작가의 말'이나 연재 후기 등에 댓글에 올라온 내용이 언급되는 경우도 다수"라고 설명했다. 평소 웹툰 보기를 즐긴다는 대학생 이희라(23) 씨는 "다른 사람들의 댓글을 보며 내가 (웹툰을 보다)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깨닫거나 일종의 일체감을 느낄 때가 있다"면서 "때로는 댓글을 보기 위해 웹툰을 보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작가로의 진입벽이 낮아 그만큼 정형화되지 않은 다양한 이야기가 생산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이다. 덕분에 웹툰은 10대부터 40대 이상까지 폭넓은 독자층을 보유하게 됐다.

더 간략하게, 흥미거리 늘려…웹툰의 진화

최근 웹툰은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에 맞춰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특히 기존보다 더욱 짧은 서사로 구성된 웹툰이 늘어난 것이 눈에 띈다.

네이버 웹툰은 지난 4월부터 웹툰을 컷 단위로 끊어 읽는 ‘컷툰’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기존 웹툰이 세로로 스크롤을 내리면서 보는 형식이었다면 컷툰은 화면에 한 컷만이 보이고 손가락으로 건드리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간다. 각 장면을 강조하다보니 다수의 컷툰 작품들은 기존 웹툰보다 컷 수가 줄어들었다.

유명 웹툰 작가 마인드씨(C)의 경우에는 지난달 말까지 단 2컷으로 구성된 만화 '2차원 개그'를 네이트 등에 연재하기도 했다. 배진수 작가는 '당신의 하루 중 가장 가벼운 3초'를 모토로 3컷짜리 '하루 세 컷'을 선보이고 있다.

단순하게 보는 것을 넘어 오감으로 즐길 수 있도록 한 웹툰도 늘고 있다. 최근에는 화면이 움직이고 소리도 나는 웹툰인 '무빙툰', 줌인·줌아웃을 해 콘텐츠를 볼 수 있는 '스마트툰' 등이 인기다. 다수의 웹툰 독자들이 스마트폰으로 작품을 본다는 데서 착안, 특정 장면에서 스마트폰 진동이 울리는 효과를 준 웹툰도 있다. 이러한 웹툰은 공포 장르의 웹툰 등에서 독자들의 몰입도를 더욱 높여준다는 평이다.

SNS 공유 기능도 강화됐다. 네이버는 지난 4월부터 사용자들이 웹툰의 특정 장면에 자신의 메시지를 담아 SNS에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컷 공유'기능을 서비스하고 있다. 다음카카오도 웹툰을 카카오톡, SNS 등으로 공유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웹툰은 간편히 소비하는 동시에 오감까지 만족시켜주는 형태로 꾸준히 진화 중"이라면서 "각종 광고, 게임, 드라마, 영화 등으로도 확장 범위가 넓어 향후에도 성장 가능성이 높은 콘텐츠로 꼽힌다"고 말했다.

억대 연봉 작가까지…스마트폰으로 읽는 소설

작가가 웹(온라인)에 연재하고, 독자가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통해 소비하는 소설인 웹소설의 성장세도 거세다. 최근 네이버가 ‘네이버 웹소설’ 출시 2주년을 맞아 공개한 자사 웹소설 콘텐츠 현황에 따르면, 2014년 한 해 동안 글을 올린 작가수는 6만 7,000여 명에 달한다. 작품수는 전년대비 115% 증가한 12만 3,000여 건이었다. 작품당 평균 조회수는 약 2,900만 회에 이르렀다. 네이버와 함께 다음카카오, 문피아, 조아라 등 웹소설 콘텐츠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도 늘었다. 출판사 자음과 모음도 웹소설 사이트 에브리북을 내놓았다.

이 가운데 네이버 등 업체들은 연재 작가들에 고료를 지급함과 동시에 아직 연재 페이지에 무료로 공개되지 않은 작품을 유료로 먼저 확인할 수 있는 ‘미리보기’ 방식을 도입, 웹소설에 최적화된 유료 모델을 안착시키는데 신경을 썼다. 덕분에 수입이 대기업 회사원 연봉 수준을 넘는 스타 작가들도 등장했다. 일부 작가들은 미리보기 수입과 원고료를 합해 지난해 약 2억 8,000만 원의 수익을 얻기도 했다. 네이버 웹소설에서 1억 이상의 수익을 올린 작가도 7명이었다. 이들의 직업은 평범한 주부부터 현직 교사, 20대 대학생 등까지 다양하다. 스타 웹소설 작가로 불리는 윤이수 씨는 산후우울증 극복을 위해 소설 연재를 시작한 경우다.

기성작가들이 웹에 소설을 싣는 경우도 생겼다. 네이버에 웹소설을 연재한 26년차 중견작가 심상대 씨에 이어 올해 이상문학상 수상자인 김숨 작가는 에브리북에 웹소설을 연재했다.

업계 관계자는 "웹소설은 10분 이내로 한 편을 볼 수 있도록 끊어져 연재되고 전개가 빠른 작품이 많다"면서 "젊은 층들이 지하철 등에서 이동 중에도 보기 편하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어느정도 웹툰의 형태가 접목돼 시각적 효과를 살린 웹소설도 나오고 있다. 글의 중간중간 극 상황에 맞는 삽화가 들어가고, 주요 등장인물의 대화글 앞쪽에는 해당 인물의 얼굴이 작은 상자 형태로 만들어져 붙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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