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대학 내 성폭력 피해는 비단 여성에 국한되지 않아

피해 남성, 역차별에 더욱 큰 상처…보호·예방책 허술

[데일리한국 고은결 기자] 지난달 6일 방송된 MBC 예능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2' 여군 특집에서 여성 출연진이 남성 조교를 두고 "엉덩이가 화났다"라고 말하는 등 몸매 품평회를 연 모습이 여과없이 방송되며 논란을 빚었다. 제작진은 적나라한 평가의 대상이 남성이다 보니 그저 농담으로 치부하며 안일하게 여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에 대한 여론은 싸늘했다. 해당 프로그램은 결국 사과문을 게재했지만 거센 비난은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성폭력 사건에서는 남성 가해자-여성 피해자 구도가 공고했다. 하지만 최근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고 남녀평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확산되면서 남성도 성폭력의 피해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그러나 피해 남성들이 실제로 직면하게 되는 역차별적 상황들을 살펴보면 이들에 대한 보호체계는 여전히 허술해 보인다.

사진=영화 '폭로' 스틸컷

'영화같은 현실' 남성도 성폭력 피해자

"성희롱은 성(性)이 아닌 권력에 관한 문제다." 20여 년 전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폭로‘에서는 성희롱은 권력관계에서 일어나는 폭력이며 남성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영화 속에서 여성 상관 메리더스는 부하 직원 톰을 유혹해 성관계를 맺으려 했으나 톰이 이를 거부하자 도리어 자신을 성폭행하려 했다는 누명을 씌운다. 이에 톰은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힘겨운 사투를 벌이게 된다. 그 당시 미국에서도 남성이 성희롱 피해자인 구도는 파격으로 여겨졌다.

한국에서 여성에 의한 성희롱을 당한 남성의 손해배상 청구가 최초로 받아들여진 것은 2000년대에 들어서다. 2001년 당시 27세였던 장모 씨는 40대 이상의 기혼 여성이 대다수인 한 회사의 생산부에 재직했다. 중년 여성들은 조카뻘인 장 씨에게 거침없는 언사와 희롱을 일삼았다. 그를 뒤에서 껴안으며 "덩치가 있어서 좋아"라던가 허리·허벅지를 만지며 "영계 같아서 좋아"라고 말하며 극심한 모멸감을 안겼다. 장씨는 이러한 상황을 부서장에게 털어놨지만 오히려 "증인이 없다"는 질책만 돌아왔다.

결국 무언의 압박에 사직서를 낸 장 씨는 서울 동부지방노동사무소를 찾아갔는데, 그는 자신이 잘못한 일도 없는데 쫓겨나고 해고 수당을 받지 못한 데만 울분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 사건을 맡은 근로감독관은 전후 사정을 파악한 후 '직장 내 성희롱'으로 초점을 바꿔 문제를 제기하자고 조언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해당 감독관의 이러한 제안에 장 씨는 "남자도 성희롱의 대상이 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자신은 남성이므로 '직장 내 성희롱'을 문제 삼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 것. 결국 사정을 아는 동료의 증언으로 장 씨는 법원에서 성희롱 피해 사실을 인정받고 손해배상 판결을 이끌어냈다.

비단 직장뿐 아니라 대학에서도 교수 직위를 이용해 학생을 희롱하는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2월 울산과학기술대학교의 C여교수는 연구보조원 학생과 술을 마시던 중 "나랑 할래?"라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다. 이 같은 사건이 일어나자 해당 남학생은 연구보조원을 그만두고 더는 연락하지 말 것을 요청했지만 C교수는 연락을 지속했다.

C교수는 또 다른 남학생도 연구실로 불러 "나는 네가 졸업할 때까지 기다려 줄 수 있다"거나 "네가 원하면 남편과의 관계를 정리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됐다. 하지만 이 교수에 관한 처분은 고작 3개월 정직과 함께 상담치료를 권고하는 수준에 그쳤다. 재작년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여교수가 수업 시간이나 회식 자리에서 남학생들에게 성희롱 발언을 일삼았다는 파문이 일었다. 남성 또한 위계에 의한 성폭력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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