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직장인 10명 중 3명은 주어진 연차의 절반도 사용 못해

연차 미사용 가장 큰 이유, 직장 내 눈치 보이는 분위기와 과다 업무

'미사용 연차 유급휴가 통상임금으로 보상' 회사내규 없어도 보상 받을 수 있어

직장인 10명 중 3명은 법적으로 보장된 연차 유급휴가의 절반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사진=유토이미지
[데일리한국 황혜진 기자] 직장인 김 모(29) 씨는 주어진 연차 유급휴가 15일 중 10월 현재까지 2일 밖에 사용하지 못했다. 주말 근무로 인해 올해만 대체휴가 5일을 지급받았지만 이 조차 하루도 사용하지 못했다. 연차를 잘 내지 않는 회사 분위기 탓이다. 김 씨의 부서 팀장은 여름휴가도 다녀오지 않았다. 김 모 씨는 “작년까지만 해도 휴가를 다 쓰지 못하면 10%의 보상 수당이 나왔지만 올해는 그마저도 없어졌다”고 말했다.

이번 달까지 올해 연차 휴가를 7일 사용했다는 또 다른 직장인도 연차 휴가를 내는 것이 눈치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회사 대표가 연차를 몇 차례 낸 직원에게 “툭하면 쉰다”며 사람들 앞에서 타박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연차 미사용 보상수당은 당연히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글로벌 여행사 익스피디아가 24개국 직장인 7,85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휴가 일수가 가장 긴 나라는 프랑스로 30.7일이었고 덴마크(28.6일), 독일(27.7일)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우리나라는 멕시코(13.6일), 태국(12.1일), 말레이시아(10.7일)보다도 낮은 8.6일로 조사 대상 24개국 가운데 가장 짧았다. 24개국 평균 휴가일수는 20.5일이었다.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1년간 80% 이상 출근한 근로자에게는 15일의 유급휴가가 주어진다. 3년 이상 근로한 근로자에게는 매 2년에 대해 1일의 유급휴가가 가산되고 휴가는 25일 한도까지 늘어날 수 있다. 하지만 법으로 보장된 휴가를 다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 사용되지 않은 연차 유급휴가에 대해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통상임금으로 보상해야 한다는 것이 법적 의무라는 사실을 모르는 근로자들도 많다.

10명 중 3명은 연차 절반도 못 써…“눈치가 보여서”

고용노동부의 조사에 따르면 2013년 연차 휴가 소진율은 60.4%다. 2010년부터 4년 동안 연차 휴가 소진율의 평균치는 59.4%다. 또 직장인 10명 중 3명은 법적으로 보장된 연차 유급휴가의 절반도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어진 연차를 전부 쓰지 못하는 이유는 직장 내 연차를 사용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조성돼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2012년 ‘기업 휴가이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연차를 원활하게 사용하지 못하는 원인은 직장 내 분위기가 42%로 가장 많았고 과도한 업무(18.4%), 휴가보상비 획득(11.8%)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우리나라는 성과가 있든 없든 직원이 회사에 나오길 바라는 풍토가 있다. 법적으로 보장된 연차 유급휴가가 재충전과 그에 따른 노동의 재생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고용주는 만나보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직책이 높아질수록 업무 능력 인정과 승진을 위해 휴가를 스스로 반납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 상사와 일하는 부하 직원들은 자연히 연차 휴가를 내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또 업무 분담 문제 때문에 동료나 후배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서로 눈치를 보는 것은 예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같은 직장 내에서 일하는 사람들끼리 언제 얼마나 휴가를 쓸 것인지 사전에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근로자들이 본인의 권리를 정확히 몰라 미사용 연차에 대해 보상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미사용 연차 휴가 보상, 법적의무 아니다? 잘 못 알고 있는 근로자 많아

기자가 포털사이트의 한 직장인 커뮤니티를 통해 근로자들을 취재한 결과 연차를 다 쓰지 못하고도 보상을 못 받는다는 의견이 많았다. 또 회사 규정에 해당 내용이 없어서 미사용 연차에 대해 보상을 받을 수 없다며 사용하지 않은 연차 휴가에 대한 보상이 법적 의무라는 사실을 모르는 직장인들이 많았다.

미사용 연차 휴가 보상과 연차 사용 촉진제도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근로자들이 많다. 사진=인터넷 커뮤니티
주명 행정노무사사무소 강명주 대표 노무사는 “근로기준법 제60조에 따라 연차 유급휴가는 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임금을 지급하면서 휴가를 주자는 것이므로 만약 근로자가 그 휴가를 이용하지 않고 계속 근로한 경우에는 다음해 1월 1일부터 사용 안한 휴가일수에 해당하는 임금을 더 청구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강 노무사는 “연차 유급휴가는 휴가사용기간에 대해서도 임금을 지급받을 수 있는 휴가 제도이기 때문에 이 연차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 미사용 기간만큼 일을 더 한 것이어서 당연히 추가 근무에 대한 임금을 별도로 청구할 수 있다”며 “이것이 1971년 대법원 판례를 통해 확립됐고 지금도 대법원은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를 알고 있다고 해도 회사에서 챙겨주지 않는 보상금을 직장인들이 직접 청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근로자는 미사용 연차 휴가에 대해 보상하는 회사 내규가 없다는 사용자에게 반박을 하거나 갈등을 불러일으키기 어려운 을(乙)의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퇴직을 앞둔 시기나 퇴직 직후에 미사용 연차 휴가 보상금을 청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임금 청구권은 소멸시효가 3년이기 때문에 퇴직 직전 3년 동안의 미사용 연차 휴가에 대한 보상만 받을 수 있다.

미사용 연차 휴가 보상 책임 면제에 악용되는 연차 유급휴가 사용 촉진제

그렇지만 이마저 보상 받을 수 없는 경우가 있어 미사용 연차 보상을 피해가는 또 다른 수단이 존재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회사 측이 남아있는 연차 휴가 일수를 근로자에게 알려주고 연차 사용 계획서 등을 쓰라고 촉구한다면 금전적 보상 의무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2003년 개정 근로기준법에서 도입된 ‘연차 유급휴가 사용 촉진’ 조항은 사용자가 연차 휴가를 사용하도록 권유했는데도 근로자가 연차를 쓰지 않으면 연차 휴가 미사용에 대한 금전보상 의무를 면제해주게 돼있다. 남아있는 연차 일수를 근로자에게 알리고 주어진 연차를 기한 내에 쓰도록 하기 위해 마련된 법률이 오히려 사용자의 보상 책임을 없애는 데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박홍근 의원은 이를 시정하기 위해 지난 6월 근로기준법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연차 유급휴가의 사용을 촉진했음에도 근로자가 휴가를 사용하지 못한 경우 사용자가 이에 대해 보상하도록 하고 있다.

제안 이유에서 박 의원은 “사업장의 여건에 따라 연차 유급휴가를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용자가 단지 연차 유급휴가 사용을 촉진했다고 해서 근로자가 사용하지 못한 연차 유급휴가에 대한 보상 의무를 면제하는 것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이 법안은 현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계류 중이다.

사실 연차 휴가 제도는 근로자가 휴식할 권리를 보장하는 ‘휴가권’이기 때문에 유럽연합은 지침을 통해 원칙적으로 미사용 연차 휴가를 금전적으로 보상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연차 휴가를 원활하게 사용할 수 없는 우리나라 현실에 비추어 봤을 때 유급 휴가를 쓰지도 못하고 보상받을 수도 없다면 유급 휴가에 대한 인식 변화는 먼 나라 이야기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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