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증상’에 맞춰 처방 주는 이색 약방 인기

힐링 카페 찾고 내일로 여행 떠나며 일상 피로 해소

자발적 청춘 위로 이벤트 벌이고 컬러링북 모임 갖기도

서울 시민청에 설치된 '마음약방'. 사진=서울문화재단 제공

[데일리한국 신수지 기자] 청춘들의 마음의 온도가 낮아진 만큼 이들이 찾는 힐링 공간도 갈수록 다양해지는 추세다. 온라인 공간뿐 아니라 오프라인에도 '힐링'을 목적으로 하는 서비스나 모임이 활발하다.

'미래 막막증'·'예민성 경쟁 과다증'에 처방 내리는 힐링 약방

지난 2월 서울 시민청 지하에는 독특한 자판기가 하나 들어섰다. '마음약방'이라는 이름의 이 자판기는 얼핏 보기에는 지하철 역사에 있는 과자 자판기와 유사한 모양새지만 내용물은 감탄사를 자아낸다. 기부금으로 쓰이는 500원 동전을 넣고 자판기 버튼을 누르는 순간 현대인의 고단한 심신을 위한 약 상자가 제공되기 때문이다. 이용자는 자신의 '마음증상'을 고를 수 있는데 '꿈 소멸증', '의욕상실증', '현실 도피증', '자존감바닥 증후군', '예민성 경쟁 과다증', '월요병 말기' 등 청춘들이 공감할 만한 것들로 가득하다.

각각의 증상에는 받는 이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문구나 시, 그림, 증상에 맞는 영화 추천 등과 함께 피로회복제, 대일밴드 등이 제공된다. 예를 들어 '미래막막증'을 선택하면 '잡초라 부르는 것조차 모두 아름답다'는 구절이 담긴 시와 시장 산책길 지도, 영화 추천글, 달달한 엿 등이 담긴 상자가 나오는 식이다. 서울문화재단 측은 전문처방은 아니지만 삶이 고단할 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마음약방을 기획했다.

마음약방 자판기에서 자신의 증상을 고르면 위로가 될 수 있는 문구나 그림, 산책길 추천, 소품 등이 담긴 약 상자가 제공된다.

지난달 마음의 위안을 얻고 싶어 이 자판기를 찾았다는 취업준비생 김미형 (26)씨는 "친구의 SNS를 통해 마음자판기를 알게 됐다"면서 "자판기에서 예쁜 약상자가 나온다는 사실이 재미있기도 하고 내용물을 보는 동안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잠시 잊을 수 있어 좋더라"고 말했다. 김 씨의 경우처럼 젊은 층들이 SNS 등을 통해 관련 소식을 접하면서 시민청의 '마음약방 1호점은 설치 6개월 만에 이용자수가 1만 7,369명을 돌파했다.

내용물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게 알려지면서 두 번 이상 자판기를 찾는 사람들도 많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에 서울문화재단은 오는 11월 론칭을 목표로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마음약방 2호점 설치를 추진 중이다. 애초 노량진 고시촌으로 장소를 정했으나 논의 끝에 '청춘의 거리' 대학로 일대로 계획을 변경했다. 서울문화재단 관계자는 "최근 청년기획가들과 함께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새로운 마음약방이 놓일 장소와 구성 등을 의논했다"면서 "현재 영화 '소수의견'의 원작자 손아람 작가가 처방전에 들어갈 문구를 작업 중"이라고 전했다.

그런가하면 최근 직장인 유동인구가 많은 서울 강남과 홍대, 명동 등지에는 고급 전신 안마 의자를 들여놓은 '힐링 카페'가 속속 생겨나고 있다. 비행기 일등석을 콘셉트로 안마 의자를 갖춘 카페나 휴양지에서나 볼 수 있는 해먹을 설치해 놓은 일명 '낮잠 카페' 등도 바쁜 20~30대 직장인 사이 인기를 얻고 있다. 최근 힐링카페를 자주 방문한다는 직장인 박모(28) 씨는 "과중한 업무 때문에 피곤할 때면 점심도 거르고 주차해둔 차에서 눈을 붙이곤 했었다"면서 "힐링카페를 방문하면 편안한 의자에 앉아 몸도 풀고 잠시 낮잠도 잘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내일로’ 떠나고 사물함으로 간식 전하며 함께 위로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철길을 따라 떠나는 '내일로' 여행이 힐링의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내일로는 모든 열차를 자유석으로 5일 또는 7일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열차 자유이용권이다. 지난해까지는 25세까지만 구매가 가능했지만, 올해부터 28세까지 표를 구입할 수 있게 되면서 젊은 대학 졸업생들의 이용도 늘었다. 내일로 티켓 이용객 수는 2009년 3만 9,867장에서 지난해 19만 2,615장으로 늘었다. 내일로 패스를 들고 전국을 도는 청년들을 일컫는 ‘내일러’라는 신조어도 생겨났을 정도다.

'내일로 여행'의 인기 비결로는 개별 자유여행의 확산과 더불어 극심한 취업과 스펙 경쟁에서 벗어나고 싶은 젊은이들의 욕구가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학생 이모 씨(23)는 "취업 경쟁에 본격적으로 돌입하기 전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 최근 내일러가 됐다"면서 "저렴한 가격으로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요즘에는 내일로 여행을 버킷리스트로 삼는 친구들이 많다"고 전했다.

'힐링 앱'을 통해 청춘들이 자발적으로 벌인 달콤창고 이벤트. 사진=어라운드 캡처

청춘들이 직접 힘을 합해 힐링의 방법을 찾는 경우도 늘었다. 익명 '힐링 앱'의 경우 사용자들의 활발한 참여로 스마트폰을 넘어 오프라인을 통해 서로를 위로하는 형태로도 확장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어라운드에서는 '달콤창고'라는 오프라인 이벤트가 활발히 벌어지고 있다. 앱 사용자가 지하철 역사나 대학교, 도서관 등의 사물함에 간식 등을 넣고 위치와 비밀번호를 공개하면 누군가 간식을 가져가 먹고 응원의 손편지 등을 답례로 담아두는 식이다. 이 이벤트는 유학을 준비하던 해당 앱 이용자가 그간 자신에게 힘을 준 이들에 대한 감사 의미로 자신이 사용하던 강남역 사물함에 간식을 채워두면서 시작됐다.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컬러링북 열풍에 맞춰 스스로를 치유하는 젊은이들도 생겨났다. 홀로 책을 구매해 색칠공부 시간을 갖는 이들도 많지만, 최근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온라인 카페나 취업 관련 커뮤니티에는 종종 ‘컬러링북 스터디 모집’이나 ‘색칠공부 모임 같이 해요’라는 등의 글이 종종 게재된다. 최근 3개월가량 취업 커뮤니티를 통해 알게 된 색칠공부 스터디에 참가하고 있다는 민모 씨(24)는 “‘마음의 여유가 부족한 취준생이지만 잠시 쉬면서 지친 마음을 달래보자’는 주최자의 취지를 보고 모임에 관심을 갖게 됐다”면서 “1~2주에 한 번 정도는 아무 생각 없이 손을 움직이며 다른 사람들과 즐겁게 수다도 떨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청춘들을 중심으로 ‘힐링’ 바람이 불고 있는 것에 대해 이들이 사회에서 겪는 피로감과 박탈감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실제 이달 초 한 아웃도어 브랜드가 고교생, 취업준비생을 포함한 대학생, 20∼39세 직장인 등 세대별로 200명씩 총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한 결과, 한국인의 심리적 체감온도는 '영하 14도'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대학생과 취업준비생의 심적 고통이 가장 컸다. 대학생과 취업준비생 그룹은 영하 17도로 심리적인 추위를 가장 크게 느끼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어 고교생이 영하 16.6도, 20∼39세 직장인 영하 13.8도, 50대 직장인 영하 13.5도, 40대 직장인 영하 9.3도 등의 순이었다. 각 세대가 겪고 있는 각종 사회·경제적 상황들로 인해 마음의 온도가 더 낮아질 것이라는 응답은 79.1%에 달했다.

한 소비자학 전문가는 "젊은 세대가 힐링에 관심을 갖는 것은 경기 침체 등 영향으로 삶이 녹록하지 않다는 반증“이라며 ”심리적 아픔을 느끼는 청춘들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는 계속해서 소통, 공감, 위로, 피로 해소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것“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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