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대 대나무숲', 학생들 소통의 장으로
직장인 대상 익명 사연 페이지도 등장

대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대나무숲' 페이지들. 사진=페이스북 캡처
[데일리한국 신수지 기자] "정말 너무 힘들어요. 이번에는 꼭 면접에서 합격할 거라 생각했는데 마음이 너덜너덜해졌습니다."

"헤어진 남자친구가 일 년 넘게 잊히지 않아요. 다른 사람들도 만나보고 했는데 왜…"

"저는 자존감이 낮습니다. 대학에 오면 달라질 줄 알았는데 제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대인관계도 힘드네요. 제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게 될 날이 올까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치던 우화 속 대나무숲이 청춘들의 마음을 달래는 곳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른바 '힐링 해우소'로 오픈형 SNS(소셜네트워크)인 페이스북에 자리 잡은 커뮤니티 '대나무숲'의 이야기이다. 이같은 해우소는 국내 주요 대학마다 ‘OO대학교 대나무숲’이라는 이름으로 하나 둘 생겨나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서울대와 연세대의 대나무숲은 약 2만 명 이상의 사용자들이 이용하다고 한다. 최근에는 대학교를 넘어 중고교생들이 이용하는 대나무숲까지 생겨났다. '대나무숲'은 원래 또다른 트위터를 이용하던 직장인들 사이에서 유래됐다. 하지만 페이스북 이용자들이 늘어나면서 자리를 옮겨와 학생들의 소통의 공간이 됐다.

학내 공식 온라인 커뮤니티와 별개로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관리하는데, 운영자가 익명의 사연을 받아 공개된 페이지에 이를 대신 올려주는 형태다. 운영자는 인신공격이나 욕설 등이 담긴 글을 걸러낸 뒤 이름 없는 사연을 게재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고 나면 제보자들은 실명제를 기반으로 하는 페이스북 내에서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도 다수와 소통할 수 있게 된다. 익명이기에 학생들이 자유롭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진솔하게 묘사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는다.

이곳에 게재되는 글들의 주제는 연애나 학교생활 고민부터 인간관계, 친한 친구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집안 문제 등까지 다양하다. 지난 6월 열렸던 ‘퀴어 문화 축제’ 이후 동성애가 이슈가 되자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고백하는 글이 공개되기도 했다.

사연 제보는 익명으로 이뤄지지만 댓글 등의 피드백은 실명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사연 글에는 보다 깊이 있고 정제된 내용의 댓글이 달린다. 제보자들은 익명에 힘입어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나누며 조언이나 의견을 구한다. 청춘들의 힐링캠프가 되는 것이다.

이 같은 대나무숲의 인기 요인으로 전문가들은 '혼자'가 익숙해진 학생들이 외로움을 해소하고 공감을 얻고자 하는 욕구가 커졌다는 점을 꼽는다. 실제 구인구직 사이트 알바몬이 올해 초 대학생 95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 응답자 66.7%(634명)가 스스로를 밥을 먹거나 수업을 듣는 등의 학교생활 대부분을 혼자 하는 ‘나홀로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이들 중 88.5%가 “여러 사람과 함께하는 편이 낫겠다고 느낀 순간이 있었다”고 답했다. 가장 그러한 느낌이 드는 때는 ‘같이 울고 웃으며 공감해줄 사람이 필요할 때’(26.2%)로 나타났다.

요즘 대나무숲을 하루에 한 번 이상 확인한다는 대학생 A씨(24)는 "대놓고 하지 못할 이야기들을 털어놓는 대나무숲 글들을 읽다보면 공감이 된다"면서 "'나도 이런 고민을 했었지'라는 생각이 드는 내용이 있으면 격려나 조언의 댓글을 쓰고 싶어진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대학교에 재학 중인 B씨(26)는 "대학 생활에서의 인간관계나 취업의 어려움 때문에 삭막함을 느낄 때 대나무숲을 찾게된다"면서 "댓글로 꼭 정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많은 이들 앞에 마음 속 이야기를 내뱉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직장인들이 회사 생활을 하며 생긴 사연을 털어놓는 페이스북 공간도 생겼다.
페이스북에는 직장인들을 위한 위로와 공감의 공간도 늘고 있다. 대표적으로 한 페이스북 페이지의 '회사연' 코너에서는 직장인들이 회사 생활 등에서 느끼는 고민 사연을 운영자가 편집해 올려준다. 해당 코너에는 직장 내 왕따로 고민 중인 경력직 사원의 사연, 업무 처리가 힘들어 하루하루가 지옥 같다는 한 사회초년생의 사연 등이 실려 직장인들의 공감을 얻었다.

기존의 라디오 청취자 사연 등과 다른 점은 대나무숲과 마찬가지로 다수의 조언과 격려를 들어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을 매개로 하는 만큼 보다 '날 것' 같은 이야기도 공유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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