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난곡동에 위치한 주사랑공동체교회는 지난 7월 베이비박스의 대안으로 베이비룸을 오픈하고 베이비박스와 베이비룸을 병행 운영하고 있다.
[데일리한국 황혜진 기자] ‘베이비박스(Baby Box)’가 최근 ‘베이비룸(Baby Room)’으로 새롭게 문을 열고 미혼모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으나 이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여전하다. 베이비룸의 존재 자체가 부모의 죄책감을 덜어주기 때문에 오히려 유기를 조장한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베이비박스나 베이비룸은 현재 미국 일본 유럽 국가 등 세계 곳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아기를 유기하면 안 되는 조항을 명시하고 있는 현행법과 피치 못할 상황에서 발생하는 출산의 현실이 충돌한다는 점을 세계 선진국들도 일찌감치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줄어든 입양 아동, 베이비박스로 온 아이들

베이비룸을 운영하는 주사랑공동체교회에 따르면 해당 교회와 경기 군포시 새가나안교회 등 두 곳에 설치된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기는 2011년 37명, 2012년 79명이었다. 입양특례법이 개정 시행된 이후인 2013년에는 252명, 2014년 280명으로 그 수가 크게 늘었다. 법 개정 후 출생신고가 의무화 됐고 입양 절차가 까다로워졌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입양특례법은 2011년 8월 4일 개정돼 2012년 8월부터 시행됐다. 출생신고 의무제를 통해 입양 아동이 친부모에 대해 알 권리 보장하고, 양부모 자격심사를 통해 입양을 허가제로 바꿔 입양아동의 권리와 복지를 보장·보호하는 것이다. 무분별한 입양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대두되고 있었고, 입양 아동이 성인이 돼 부모를 찾고 싶어도 친부모에 대한 기록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개정된 법에 따라 친부모인 산모가 직접 가족관계등록과 출생신고를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데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동은 보육기관에 맡겨질 수도, 입양될 수도 없다. 때문에 현실적으로 출생신고를 하고 아이를 양육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는 미성년자, 미혼자, 불법체류자, 성범죄 피해자 등의 아이들은 갈 곳이 없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통계를 보면 미혼모 자녀 입양자수는 2011년 1,452명이었던 것이 2012년 1,048명, 2013년 641명 등으로 급감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영아유기 발생건수는 2009년 52건에서 2010년 69건, 2011년 127건, 2012년 139건 등으로 차츰 증가하다 입양특례법이 개정된 이후인 2013년에는 225건으로 급증했다. 법 개정 후 2년 동안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두고 가며 ‘입양특례법으로 불가피한 상황에 놓였다’, ‘입양법이 바뀌어 할 수 없이 왔다’는 내용의 편지를 남기고 간 부모들이 230명을 넘었다.

조태승 부목사는 “입양특례법과 출생신고의무화의 취지를 인정한다”면서도 “완벽한 법은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법이 완벽해진다 해도 사각지대는 존재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 부목사는 “현행법은 아동의 알 권리만을 보장해주고 있는데 법원이나 당국 등이 판단해 부모에게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때는 부모의 익명출산권을 예외적으로 인정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해외 19개국에서 베이비박스가 합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일본, 말레이시아, 폴란드, 독일, 체코, 캐나다 설치되어 있는 베이비박스. 사진=위키피디아, 인터넷 커뮤니티

해외의 베이비박스와 익명출산권… 유아 유기 줄이려면

전 세계에서 베이비박스가 처음 생긴 것은 1198년,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에서였다. 중세시대에 원치 않는 임신으로 인해 강가에 아이를 익사시키는 사건이 많아지자 교회 외부에서 내부로 이어지는 통로를 만들어 아이의 생명을 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또 인도와 파키스탄 등에서는 여아가 태어나면 살해하는 오랜 풍습이 있어 베이비박스가 운영됐다.

현재는 2014년 기준 독일 99개, 체코 47개, 폴란드 45개 등 유럽 국가들이 활발하게 운영하고 있고 이밖에 미국, 말레이시아, 일본,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세계 19개국에서 베이비박스를 합법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특히 독일의 경우 출산과 육아 등 복지제도 덕분에 베이비박스에 들어오는 아이 수가 굉장히 적은 편이지만 단 한 명의 아이라도 거리에 유기되지 않게 하자는 취지에서 베이비박스를 없애지 않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저출산 문제가 심화되면서 익명출산제도를 적극 받아들여 모든 산부인과가 베이비박스 역할을 하고 있다. 산모가 익명으로 아이를 출산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 출산에서 입양까지의 모든 비용을 국가가 지원한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13일에는 새정치민주연합의 부좌현 의원이 의료기관 출생 통지 의무화하는 내용의 ‘가족관계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출생신고 누락이나 허위 출생신고를 막기 위해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병원 등의 의료기관에서 출생 통지를 하자는 것이다.

조태승 부목사는 “이 제도가 해외 여러 국가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고 정상적인 가정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을 위해서는 좋은 법”이라며 “하지만 익명출산권이 보장되지 않는 상태에서 이 법이 시행될 경우 지금도 병원에 가서 아이를 낳지 못해 탯줄을 그대로 달고 오거나 태반에 쌓인 채 오는 아이들이 있는데 미혼모들이 앞으로 더 병원에 가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물론 익명출산권 보장만이 영아 유기를 방지하는 절대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책임질 수 없는 아이를 임신하지 않도록 피임 등 현실적인 성교육이 이뤄져야 하고 혼자 힘으로 아이를 키우기로 결정한 미혼모에게 질책보다는 격려를 보낼 수 있도록 사회 인식의 전반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가 자신의 아이를 직접 키울 수 있도록 출산 및 육아에 대한 복지를 강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출생신고 의무화와 입양 허가제 등으로 친모가 스스로 아이를 키울 것을 압박하면서도 미혼모 지원 정책은 후퇴하고 있다. 2011년 7월 한부모가족지원법 개정으로 인해 전국 33개였던 미혼모자시설은 2015년 7월 이후 18개로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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